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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명록 Apr 25. 2023

타인의 암보다 내 감기가 더 아프다는 변명

수명록 壽命錄


나에게는 두 번의 죽음이 있었다.

대학 자취방 아랫집에 살던, 나를 좋아하고 따르던 동생이었다. 그 친구의 표현에 의하면 나를 성모마리아에 비유하기도 했었다. “언니 어디예요” 억양이 센 대구 사투리로 항상 언니를 찾았다. 법을 공부했지만 법을 싫어하고, 사람을 좋아했고, 함께 먹는 걸 좋아했다. 어느 날 그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다. 급성 백혈병 진단을 받았는데 무섭다고 기도해 달라고 전했다. 실감이 나지 않았고 기도하겠노라고 말했다. 나는 타인의 고통을 위로하는 방법을 몰랐다. 그 친구는 휴학을 했고 고향과 서울을 오가며 치료를 받으면서 간간이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학교에서 그 친구가 아프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학생회에서는 헌혈증을 모아 전달하기도 했다. 나에게는 그저 평범한 날이었고 오랜만에 그가 생각이 나서 전화를 걸었다.

“OO 전화 아니에요?”

“네, 저희 누나인데.. 지금 장례식장이에요.”


잘 지내는 걸로 알고 있었다. 그러고는 잊어버렸다.

그에게는 하루하루가 도무지 시간이 가지 않는 고통의 지옥이었을 순간이 나에겐 너무 빨리 지났을 뿐이었다. 인생에서 처음 경험하는 상실이었다. 대구로 내려가는 버스 안은 두려움만이 가득했다. 장례식장으로 들어가던 순간 밝은 목소리로 나를 받아줄 것만 같았던 그는 없고 울음만이 가득했다. 장례가 끝나고 고인의 짐을 정리하러 서울로 올라오신 그의 아버지를 만났다. 병원에서 자신이 너무 고통스러워 하나님께 빨리 데려가달라고 울부짖었다는 이야기, 그의 노트북에서 수업 과제로 영화 버킷리스트를 보고 적은 글에는 영화 속 버킷리스트는 비현실적이고 자신이라면 인생을 보다 진지하게 돌아보라고 전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의 마지막 과제는 마치 나에게 쓴 편지 같아서 지금까지 간직하고 있다.


수년이 지나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이따금씩 생각이 났다. 그 친구가 다다르지 못한 사회에 함께 했다면 어떤 모습이었을지 상상도 했다. 어머니께 어렵게 연락해 기일에 지인들과 함께 추모예배를 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어머니는 잠잠히 그리고 슬픔에 눌린 채로 그냥 잊어주면 좋겠다고 부탁하셨다. 새끼의 죽음이란 아무리 시간이 지났다고 한들 어미에게는 여전히 그 모습 그대로 남는 까닭이다. 타인의 암보다 내 감기가 더 아프다. 누군가의 고통이 나에게는 일상이고, 누군가의 슬픔이 나에게는 추억이다. 딸의 부재로 자신의 남은 삶을 사는 것만으로도 고통스러워 잊어달라는 마음을 감히 어떻게 헤아릴까. 그 잔인한 고통 앞에서 여전히 이기적이었던, 내 감기만 아파했던 내가 미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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