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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명록 May 10. 2023

가족의 외도를 대하는 자세

수명록 壽命錄

아버지는 아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만나고 있다.

고요하게 잠든 새벽 공기를 가로지르는 쨍한 고음의 전화기 벨소리가 집안을 깨웠다. 그때까지만 해도 모든 집에는 집전화기가 있던 시절이다. 잠귀가 밝은 요나는 가족 중에 가장 먼저 몸을 일으켰다. 잠이 덜 깬 상태로 이건 꿈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 동시에 수화기를 든다.


“.. 여보..세요?”

“당신 남편이 어떤 사람인 지 알아? 나랑 호텔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 네? 무슨..?”


너무 자연스러워 순간 아는 사람이라고 착각할 뻔했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거지 생각하는 찰나 뒤따라 일어난 엄마 미진에게 전화기를 건넸다. 자신의 남편의 애인일지도 모를 사람에게 덜컥 남편의 아내를 넘겼다. 벨소리만큼이나 큰 여자의 목소리가 수화기넘어까지 들리는 것만 같았다. 그 순간 아버지 태호는 자신의 전화임을 알았던 것처럼 수화기를 확 낚아채고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네가 나랑 안 놀아준다며? 지금 와서 딴소리야? “

“… 띠띠띠”


흥분하던 태호의 고함 뒤로 소화되지 않는 두려움이 도처에 가득했다. 겉으로는 평범하고 조용하던 한 가정이 자기만의 비밀을 서로에게 들켜버린 것처럼 흔들리고 있었다. 미진은 아무 말이 없다. 그런 사람이었다. 태호는 이미 침대로 돌아간 뒤였다. 미진에게 수화기를 건넨 그 순간을 요나는 항상 후회하고 있다. 모든 것이 어렴풋이 알아지던 때였다. 그 새벽의 벨소리가 지금도 요나의 귓가에 남아있다.


요나의 어린 시절은 안전하지 않았다.

집에 가면 엄마가 있을까, 오늘은 아무 일도 없을까, 야자가 끝날 때쯤이면 밤의 시간보다 더 어두운 생각들로 가득했다. 집으로 가는 긴 골목이 터널처럼 끝이 보이지 않았다. 어떤 두려움은 진실을 마주하지 않아도 피부처럼 알게 된다. 미진이 집에 없는 날에는 기꺼이 찾으러 다녔다. 요나와 미진은 어떤 날엔 친척 집에 가고 어떤 때는 교회에서 생활하기도 했다. 그저 미진이 요나의 눈앞에 있다는 것만이 마음의 위안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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