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명록 壽命錄
우리를 가장 아프게 하고 우리에게 가장 깊은 상처를 주는 감정들은 실상 터무니없는 것들이다. 오로지 불가능하다는 이유로 품게 되는, 불가능한 것들에 대한 갈망, 한 번도 존재하지 않았던 것들에 대한 그리움, 그렇게 될 수도 있었던 일에 대한 아쉬움, 누군가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되지 못한 데 대한 비탄, 이 세상의 존재 자체에 대한 불만 같은 것들 말이다. 이런 어중간한 의식은 우리 안에 쓰라린 풍경을 만들고 우리를 영원한 황혼녘으로 만든다. 그럴 때면 우리 자신이, 넓은 강둑 사이에서 강물이 검게 반짝이고 배가 지나가지 않는 강가의 갈대들만 서글프게 어두워져가는 황무지처럼 느껴진다. - ‘불안의 책’, 페루난두 페소아
존재할 수도, 존재하지 않을 수도 없는 고통의 시작은 어디였을까.
임신과 출생, 가정의 불화, 얼굴의 상처, 세상의 편견과 불편한 시선, 친구의 괴롭힘, 꿈의 상실, 보이지 않는 희망, 나아질 것 같지 않은 사회적 지위와 형편, 성폭력, 우울증과 공황장애 어느 것에서도 원인을 찾을 수가 없다.
매 순간이 고통의 시작이었고, 존재 자체가 고통이다. 존재는 사소하고 무기력한 기억들로 채워진다. 사고하지 않고 멍한 정신으로 스스로를 무존재하게 만들어야만 자유롭다고 느낀다. 그래야만 살아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