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명록
오늘은 내가 죽기로 한 날이다. 내년은 나에게 존재하지 않는 시간일 것이다. 요나는 머릿속으로 계획을 하고 시뮬레이션을 마쳤다. 일 년 전쯤부터 화장대 서랍 안에는 알약 한 뭉치가 있었다. 감기몸살로 내과를 들렀다가 생각지도 않게 처방을 받았고, 나는 의사에게 스트레스가 많다고 했을 뿐이다. 그때부터 내 머릿속 한편에는 그 하얀색 알약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우울증과 공황장애는 오랜 기간 요나를 괴롭혔다. 호흡기를 달고 있는 환자와 마찬가지로 이제는 삶에서 떼어놓을 수 없을 만큼 익숙하다. 마스크처럼 익숙한 만큼 불편하고 거추장스럽다. 어쩌면 기적처럼 하루아침에 깨끗이 나을 수도 있겠다는 상상을 하기도 했다. 한 해 두 해 시간이 갈수록 기적이란 낫기를 기대하는 나를 넘어뜨리기 위한 덫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결심하고 시행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언제까지 이렇게 많은 약을 먹어야 하나, 평생 이렇게 살아야 하는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살아있는 모든 순간이 고통이고 모든 기억은 슬픔이다. 요나는 지금까지의 인생을 후회 없이 살고 모든 일에 최선을 다했다. 오늘, 한 해의 마지막 날이자 새로운 해를 시작하기 바로 직전에 삶을 마무리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순서였다.
요나는 친구와 저녁을 먹고 콘서트를 보러 갔다.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도중에도 요나는 콘서트가 끝나고 마무리할 인생을 떠올렸다. 집에서 가장 가까운 편의점에서 소주 한 병을 사서 들어가야지 생각한다. 지난 십여 년간 요나의 곁에서 함께하고 요나를 이해하는 유일한 친구에게 그동안 고마웠다는 인사를 전했다. 콘서트의 화려한 조명이 꺼지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요나의 마음은 행복으로 가득 차 있었다.
모든 관계, 모든 시간, 모든 생각, 모든 마음은 오늘까지다. 아까 생각한 대로 집 앞 편의점에서 소주 한 병을 사서 어두운 골목을 지나 외로움 가득한 집으로 들어간다. 방을 한번 둘러보고 너저분하게 놓여있는 쓰레기를 치우고 옷 가지를 정리한다. 요나는 더 마음에 걸리는 것이 없는지 생각해 본다. 씻고 나와 침대를 등지고 방바닥에 앉는다. 잠든 기억도 없이 나는 사라진다. 그리고 누군가 나의 이름을 부르며 집 문을 세차게 두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