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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명록 May 19. 2023

고통의 의미 6

6

해결되지 않은 고통은 잊히지 않는다. 잊히기 힘든 말들, 기억에 박제되어 있는 순간들을 오래된 미제사건 파일에 담아 덮어둔다.


나를 기대하지 않고 나에게 실망을 표한 음성들, 누군가를 상처 주고 잔인한 사실을 확인시켜 준 어떤 새벽의 전화 벨소리도 수화기에 담아둔다.


시간이 지나고 사라진 것처럼 보였던 것들은 고통의 심연에서 소리를 낸다. 듣고 돌아서도 아무 말도 듣지 못한 사람처럼 멍하다.


과거가 현재를, 현재가 미래를 얽는 혼란을 정리하기 위해서는 잊어야 할 기억과 남겨야 할 기억을 구분해야 한다. 내가 만일 제대로 작동하고 있다면 아마도 나는 기분 좋게 앞으로 걷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만일 역기능적 오류 속에서 살고 있다면 우선 나를 버려야 할 말들로 가득 채운 뒤 한강으로 뛰어들게 될 것이다.


아주 조심스럽고 정교하게 소리를 다듬어 완성해 나간다. 그렇지 않으면 오랜 악취와 형체를 알 수 없는 고물들로 거리를 방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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