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수명록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수명록 May 22. 2023

어느날 호흡이 멈췄다

수명록

어느날 호흡이 멈췄다. 처음에는 회사 안에서만 쉬지 않던 숨은 어느새 출퇴근의 경계가 흐려진다. 퇴근길 빠르게 숨을 내쉬며 화가 나고 손이 떨리고 마음이 급해져 약봉지로 분노를 뜯어내는 것 같았다. 점심약의 효과는 겨우 서너 시간 정도이다.


겨우 집에 들어와 긴장을 풀고 숨을 쉬자 하는데 윗집에서는 청소기의 윙-그릉그릉-윙-슥슥 소리가 머리를 울리고, 옆집에선 애니메이션 티브이소리가 벽을 뚫고 나와 혼란한 감정들을 마구 뒤흔든다.


요나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약을 챙긴다. 나의 무의식은 잠이 덜 깬 상태에서도 내가 죽을 수 있다는 것을 의식한다. 약을 먹고 나서야 자면서 불안했던 내 영혼이 안정을 찾듯 새벽의 고요를 느낄 수 있다.


요즘은 커피를 갈아 내려마시며 쉬기도 하고 간식거리를 집어먹기도 한다. 저녁이 이렇게 시끄러운 이유는 모두가 낮에는 열심히 일하고 저녁에 집에 와서도 쉴 틈 없이 무언가를 해야 하는 고단한 일상 때문이다.


청소기를 돌리는 시간에 나의 시간, 나의 공간을 배려해주지 않는다고 투덜대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다른 소리들과 다른 온도와 다른 행동들이 그려진다. 끊임없이 움직이는 저들은 언제 고요를 누릴 수 있을까.  


약을 먹은 지 이삼십여분이 지났을까 조금 안정된 호흡으로 돌아오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나의 무의식은 내 생각과는 다르게 몸이 반응하고, 신경계가 처리하는 신호들은 서로 제각기 다른 패턴으로 살고 있다.


윗집 옆집처럼 내 주변 세계는 나를 사이에 두고 축제를 벌이는 것 같다. 그들의 축제 사이로 나는 고요를 찾아 깊이 파고든다.


호흡이 고통이 되는 일은 나의 통제권을 잃어버린다는 것을 뜻한다. 나는 불안하지 않다라고 하지만 내 온몸은 불안을 지고 굳어지고, 호흡기에서부터 온몸으로, 머리와 정신이 컨트롤타워를 찾지 못해 제멋대로 해답을 찾는다.

 

질문을 하고 답을 찾는 것은 본능적인 것에 가깝다. 왜 숨이 안 쉬어지는지, 왜 답답한지, 왜 고통스러운지, 왜 피곤한지 등등 수많은 질문들 속에서 답을 찾지 못했기 때문에 나는 불만족하고 불안하며 불신에 가득 차있다.


누군가가 내게 그건 무엇 때문이야 라고 말해준다면 나는 그 말을 믿을지도 모른다. 간절한 바람은 마음을 왜곡시키기 때문이다. 고통의 호흡을 가다듬으며 지쳐 스러진다. 새로운 내일이 새벽이 빨리 오기를 기다리며.

매거진의 이전글 그리고 눈을 떴을 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