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명록
어느날 호흡이 멈췄다. 처음에는 회사 안에서만 쉬지 않던 숨은 어느새 출퇴근의 경계가 흐려진다. 퇴근길 빠르게 숨을 내쉬며 화가 나고 손이 떨리고 마음이 급해져 약봉지로 분노를 뜯어내는 것 같았다. 점심약의 효과는 겨우 서너 시간 정도이다.
겨우 집에 들어와 긴장을 풀고 숨을 쉬자 하는데 윗집에서는 청소기의 윙-그릉그릉-윙-슥슥 소리가 머리를 울리고, 옆집에선 애니메이션 티브이소리가 벽을 뚫고 나와 혼란한 감정들을 마구 뒤흔든다.
요나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약을 챙긴다. 나의 무의식은 잠이 덜 깬 상태에서도 내가 죽을 수 있다는 것을 의식한다. 약을 먹고 나서야 자면서 불안했던 내 영혼이 안정을 찾듯 새벽의 고요를 느낄 수 있다.
요즘은 커피를 갈아 내려마시며 쉬기도 하고 간식거리를 집어먹기도 한다. 저녁이 이렇게 시끄러운 이유는 모두가 낮에는 열심히 일하고 저녁에 집에 와서도 쉴 틈 없이 무언가를 해야 하는 고단한 일상 때문이다.
청소기를 돌리는 시간에 나의 시간, 나의 공간을 배려해주지 않는다고 투덜대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다른 소리들과 다른 온도와 다른 행동들이 그려진다. 끊임없이 움직이는 저들은 언제 고요를 누릴 수 있을까.
약을 먹은 지 이삼십여분이 지났을까 조금 안정된 호흡으로 돌아오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나의 무의식은 내 생각과는 다르게 몸이 반응하고, 신경계가 처리하는 신호들은 서로 제각기 다른 패턴으로 살고 있다.
윗집 옆집처럼 내 주변 세계는 나를 사이에 두고 축제를 벌이는 것 같다. 그들의 축제 사이로 나는 고요를 찾아 깊이 파고든다.
호흡이 고통이 되는 일은 나의 통제권을 잃어버린다는 것을 뜻한다. 나는 불안하지 않다라고 하지만 내 온몸은 불안을 지고 굳어지고, 호흡기에서부터 온몸으로, 머리와 정신이 컨트롤타워를 찾지 못해 제멋대로 해답을 찾는다.
질문을 하고 답을 찾는 것은 본능적인 것에 가깝다. 왜 숨이 안 쉬어지는지, 왜 답답한지, 왜 고통스러운지, 왜 피곤한지 등등 수많은 질문들 속에서 답을 찾지 못했기 때문에 나는 불만족하고 불안하며 불신에 가득 차있다.
누군가가 내게 그건 무엇 때문이야 라고 말해준다면 나는 그 말을 믿을지도 모른다. 간절한 바람은 마음을 왜곡시키기 때문이다. 고통의 호흡을 가다듬으며 지쳐 스러진다. 새로운 내일이 새벽이 빨리 오기를 기다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