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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명록 May 30. 2023

어떤 책임은 이상보다 크다

요나는 성실하고 책임감이 뛰어난 사람이다. 그것이 나를 말하는 표현이자 그 외에는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생각했다. 누군가는 하기 싫을 어떤 것이라도 해야만 쓸모가 있고 필요가 있는 존재가 될 것이라 믿었다.


성인이 되었을 때 책임감은 나의 생각 속에 갇힌 나만의 방식이라는 걸 생각한다. 모든 사회 구성원에게 책임의 범주나 정의는 제각각이다. 자리마다 책임의 모양도 다르고 서로가 서로에게 요구하는 책임도 다르다.


인생을 살면서 좋은 선생을 만난 적이 없다. 내가 만난 부모, 선생, 선배, 상사 그들은 모두 연약하고 흔들렸고 불성실하고 무책임했다. 적어도 내가 보기에는 그랬다.


나이가 많아지고, 어른이 된다는 것이 성숙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시간에는 책임감이 저절로 성장하는 기능 따위 없다.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고, 사람들을 격려하며 이끌고, 비전과 방향을 제시하는 이상적인 리더를 모두가 꿈꾼다.


부모는 자신들의 삶을 살아내기에도 버겁고 가족관계는 악화일로를 치닫으며 흔들리고 무너졌다. 사회에서 만나는 선배들은 제 앞가림하기에 바쁘고 자신의 안위를 지키기에 안간힘을 썼다.


모든 사람은 장점과 약점이 있다. 그것이 사회적 지위가 올라가면서 발목을 잡는 요인이다. 지금 자신의 약점을 마주하지 않으면, 지금 실패의 경험과 패배의 쓴잔을 마시지 않으면 다음 단계로 올라갈 수가 없다.


내 약점은 소통하는 것과, 결단을 내리는 것에 있다. 가정 안팎에서의 사회적 관계와 교류에 취약한 당연한 결과다. 그간 삶에서 마주친 사람들에게선 반면교사 외엔 배울 점이 없었다.


당연한 것처럼 나에게도 ‘무책임하다’라는 꼬리표가 붙기 시작했다. 사회에서 지난 8년간 미친 듯이 일만 했고 내가 만난 상사들의 책임감은 자신의 성공, 욕망, 감정전달과 같은 받기에는 부담스러운 것들이 많았다.


바닥을 딛고 한 칸씩 천천히 올라설 때마다 그다음 칸에서 어떤 권한과 책임이 따르는지 미처 생각하지 않았다. 그것이 첫 번째 실패였고 두 번째 실패는 이상주의라는 탈을 쓴 무질서에 대한 방관이다.


모두가 평등하다는 이상주의는 질서와 규칙이 없는 조직이 아니다. 경험치에 비례한 각자의 위치 안에서 손발을 맞춰 움직여나가는 것이다. 나는 그것을 무시했고 결과적으로 조직은 무너졌다.


어떤 책임은 이상보다 크다. 강요된 유토피아에서 우리가 마주해야할 것은 권위와 위계의 필요였고, 무질서를 방관한 대가는 참담했다. 모든 것은 리더의 책임이고 나는 조직에서 분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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