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히 그럴 생각은 없었는데 자정이 넘어 도착한 뉴욕에서 한인 택시를 탔다. 보통 외국에 나가면 외국인보다 한국인을 조심하라는 게 공공연하게 드러난 까닭에 한인과 한인타운은 피해 다니려던 계획은 애초에 실패였다. 영어 실력도 그다지인 데다 늦은 시간 공항에 도착한 탓에 피할 여력도 없었다.
“여기 살 만한가요?”
“한국 보다는 낫죠. 공기도 맑고, 일자리도 많아요”
“이민자로 살면 힘들지 않나요?”
“여기는 이민자들이 모여서 생긴 도시라 차별이 별로 없어요.”
가볍게 건넨 질문에 대한 의외의 대답에 눈이 번쩍 뜨였다. 일반의 대도시에서 당연하게 느끼는 ‘삶은 팍팍할 것’이란 전제 앞에서 주춤했다. 살기 좋다는 말 자체가 무척이나 오랜만이라고 느꼈다. 무엇이 그리 나을까, 뉴욕의 밤공기만큼이나 낯설고 두려운 기분이 들었다.
올해 들어 언젠가부터 외국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 한 번도 한국이 아닌 곳에서의 삶을 생각해 본 적이 없었기에 생각 자체가 낯설다. 더 늦기 전에, 오랜 직장에서 나왔고 딱히 가정도 없는 자유분방한 삶이 내게 주어졌기 때문에 꿈꿀 수 있는 자유였다.
무너지는 이유는 실패나 시련 때문이 아니다. 그것이 없기 때문이다. 나는 갖은 실패와 시련에도 무너지지 않았다. 그러나 안락하고 편안한 삶에서 나는 주저앉고 말았다. 어떻게 해서든 이유와 목적을 찾아야만 살 수 있다. 그래서 외국에서 일을 해봐야겠다는 생각에 도달했다.
기사님의 대답으로 답은 명확해졌다. 이번 여행을 일종의 시험 삼아 연내에 잡(Job)을 찾을 것이다. 아직 살고 싶고 살아야 한다는 의지가 도달하기 전에 이유를 만들어보자고 나는 생각한다. 어둡고 황량하게 펼쳐진 고속도로를 멍하니 바라본다.
하필 한인들이 가장 많이 사는 동네에 숙소가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찜닭, 순대국, 미용실, 포차 익숙한 한국어 간판들이 끝도 없이 줄지어 있다. 또 하나는 뉴저지가 뉴욕에 있는 곳인줄 알았다. 기사님은 속도 모른채 “여기에 있으면 영어 쓸 일이 별로 없어요.” 하고 말한다. 이제와 어쩔 수 없음을 받아들여야 한다.
좁고 가파른 계단을 두 개층쯤 올라 방으로 들어온다. 이곳은 민박이지만 여느 가정집과 마찬가지 모습이다. 새벽 두 시가 되어서야 잠잘 곳에 도착했고 피로와 함께 배고픔도 찾아왔다. 주인집에서 컵라면과 밥을 주신다. 자다 깨서 정신이 없는 와중에도 꽤나 친절한 환대라고 생각했다. 허기는 금세 채워지고 이곳이 어디인지도 모른 채 곧바로 잠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