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시간을 걷다 페리를 타고 허드슨 강을 건너 뉴욕으로 왔다. 무슨 생각이었는지 내 몸이 서너 시간 정도는 거뜬히 걸을 수 있는 줄 알았다. 나중에는 허드슨 강이 지나치게 평화롭고 아름답다 못해 질리고야 말았다.
땡볕에 두 시간을 걷고 나서 땀에 절여서 어디라도 들어가지 않으면 안 되었다. Hot Bagel이라는 문구에 베이글 가게로 들어가 ginger lemon juice와 hot bagel을 흡입하고야 말았다. 누가 내 낯짝을 보진 않을까 따위의 두려움은 없었다.
또다시 걷는다. 고속도로를 달리는 차들이 나를 칠 기세로 달리는데 무섭기도 하고, 끝도 없는 강변의 고급 아파트를 보고 있자니 현기증이 나기도 했다. 한국의 강변과는 사뭇 다른 정제되지만 끝장나는 집들이 분명했다.
데드포인트를 찍고 쉬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을 때 마침 나타난 페리 선착장은 나의 구원이었다. 긴 걸음에 비해 아주 짧은 시간이었지만 물을 가르고 도시를 건너가는 희열이 있었다. 흡사 물 건너온 이민자의 모습 같기도 했다.
드디어 뉴욕인가,라는 기쁨도 잠시 다시 나타난 고속도로에 힘이 빠진다. 이내 멀리서 보이는 베슬 Vessel 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피곤하고 들뜬 마음에 급하게 길을 건너다가 자전거 사고가 날 뻔했고 고함소리가 들리기도 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올라가지 못하는데도 많은 사람들이 베슬을 배경으로 저마다 사진을 찍고 있었다. 베슬과 하늘을 한껏 올려다본다. 마치 구름사다리 같은 몽환적인 분위기 때문인지 베슬이 땅에 있는지 하늘에 있는지 모를 정도다.
처음 출발할 때는 리틀 아일랜드 Little Island를 목적지 삼아 걸었는데 막상 뉴욕에 오니 들뜬 분위기로 사람들이 가는 곳을 저절로 따라가게 된다. 베슬울 지나 타임스 스퀘어 Times Square로 향했다.
중심부로 갈수록 사람이 많아지는 걸 느낀다. 혼자가 아니라 거리가 다 함께 행진하듯 타임스 스퀘어로 몰려간다. 배고픔에 우연히 들른 곳에서 noodle을 흡입하곤 만족스러워 후식으로 수박도 챙겼다. 뉴욕은 지금 길거리 야시장 같은 게이 퍼레이드 Gay Pride Parade 가 한창이다.
스파이더맨이 내 앞을 지나가는데 봤더니 브로드웨이 Broadway였다. 이름 모를 인형이 다짜고짜 다가와 셀카를 찍 짜고 하더니 양옆에도 달라붙어 셋이 되었다. 그러고선 30달러를 뺏어갔다. 세상 무서운 것을 다시금 느낀다.
타임스 스퀘어 광장과 브로드웨이는 전 세계에서 몰려온 사람들로 물결치고 있다. 왜 이렇게까지 뉴욕이어야 하는지 아직은 모르겠지만 사람구경도 한몫하는 듯하다. 옹기종기 모이고 시위를 하기도 하고 그냥 앉아있기도 하다.
오늘에야 알게 된 일이지만 미국에는 원거리를 걸어다니는 사람이 별로 없다. 땅이 넓어서 인지, 차가 많아서 인지는 알 수 없지만. 어쩐지 땡볕에 사람이 너무 없더라 순간 납득하고선 웃었다. 차가 없는 사람은 어쩔 수 없이 걸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