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그렇게 걸었던 걸 생각하면 일어나지 못하는 게 당연하다. 오전 내내 잠을 자고선 겨우 몸을 일으켜 토스트를 먹는다. 오늘 C를 만나기로 한 게 아니라면 계속 방에 있고 싶었을 테지만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D의 소개로 그를 알게 되었고 인스타로 그의 작품을 보면서 강렬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글자보단 그림에 가깝고 붓글씨보다 날렵했다. 으레 한국의 캘리그래피는 메뉴판, 엽서 등의 상업화된 용도로만 알고 있던 터였다.
그는 뉴욕에서 활동하는 아티스트이자 캘리그라피스트로서도 명성을 쌓아가는 중이다. 그에게 배울 기회를 만난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 다른 세계의 삶을 동경하는 나에겐 더할 나위 없는 즐거움이다.
펜을 쥐는 방법부터 선을 위아래로 긋는 단순한 것부터 연습을 시작했다. 그리고 직접 펜을 만들면서 다양한 그림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경험한다. 이 작고 가벼운 펜으로 무엇이든 만들고 또 그리고 쓸 수 있다는 건 가능성을 의미한다. 과연 이 펜은 나를 어디로 데려가줄까.
오늘은 수업보단 워밍업에 가까운 시간이다. 뉴욕 생활과 신앙에 대한 이야기, 전업작가로서 생계와 사업에 대한 비전까지 솔직한 그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자리를 옮겨 타코와 맥주를 마시면서 이야기를 이어간다.
이민자로서, 예술가로서, 남편으로서, 아버지로서도 녹록지 않을 그의 삶이 애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들로 살아가려는 노력이 펜촉에 닿는 지면의 질감처럼 아프게 느껴졌다. 치열함은 삶을 표현하는 무기가 되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