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은 결코 나이를 먹지 않는다

by 안희정

나보다 나이가 많은 지인과 나이에 대해 대화를 하던 중이었다.


그녀가 말했다.

"나이 들면 눈치껏 젊은 사람들을 위해 자리를 비켜주어야 해. 직장에서도 젊은 사람들이 많아야 에너지가 넘치거든. "


얼마 전 그녀는 직장에서 그녀보다 나이가 많은 K로부터의 일방적인 지시로 상처받았다. 그 이유를 알기에 나는 무언가 대꾸하려다가 잠자코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나이가 들면 지혜와 관록이 쌓인다고 하지만 어떤 이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자신의 세계관에 갇혀 귀를 닫고 불통의 삶을 산다.


그런데 그런 불통의 방식이 과연 나이먹음으로 인해 발생한 걸까? 살짝 의문을 가져본다. 아니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만약 그것이 나이 탓이라면 나이 들어가는 모든 존재에 대한 서러움이 북받치기 때문이다.

어떤 이는 나이 들어감을 시들어 가는 꽃에 비유하고, 어떤 이는 라테와 함께 예전의 역사를 거들먹거리는 꼰대로 연상한다.

예나 지금이나 나는 나보다 나이 많은 사람들과의 대화에 어려움을 느낀다. 그들은 왠지 대화 속에 함께 있지 않고 대화 위에서 나를 내려다보며 파악하고, 진단하고, 평가를 할 것만 같다. 그래서 어쩌다 윗사람과 대화할 기회가 오면 주로 청자가 되었다. 가만히 있으면 중간은 가기 때문이다.

그런데 수줍고 내성적이었던 소녀가 어느덧 마흔이 훌쩍 넘어버렸다. 세월이 야속하여라. 언제 이렇게 시간이 흐른 것일까.

막상 남들이 보기에도 어른이라는 말이 전혀 어색하지 않은 나이가 되고 보니 별로 바뀐 게 없다. 여전히 인간관계로 상처받고, 불쑥불쑥 불안정한 감정이 올라오고, 미래에 대한 불안도 가시질 않는다.


지금은 세계적인 배우가 되신 윤여정 선생님(이란 호칭이 전혀 어색하지 않은 분이다)을 정말 좋아하게 된 건 오래전 보았던 한 TV프로 "꽃보다 누나"에서 한 인터뷰 때문이었다.

그때 질문자가 나이 들어보니 뭐가 달라졌나, 그런 식의 질문을 하자 그녀는 "60이 되어도 몰라요. 이게 내가 처음 살아보는 거잖아. 처음 살아보는 거기 때문에 아쉬울 수밖에 없고, 아플 수밖에 없고, 계획할 수가 없어."라고 답했다.


이 얼마나 솔직한 답변인가.

60이 되어도 70이 되어도 인생에 대해 다 알 수가 없다. 처음 그 나이를 겪어보기 때문에 몸은 쇠약해지고 노쇠할지언정 정신은 몽고점으로 푸릇푸릇한 아이처럼 여전히 세상에 대해 배워야 할 점 투성이다.

그런데 그런 내면의 민낯을 세상에 드러내기는 쉽지 않다. 나이 들수록 나를 향한 평판에 더 많이 신경 쓰게 되고 타인과의 관계로부터 적당한 거리를 두고 살아간다.

적당한 거리는 안전하다. 나에 대해 많이 드러내지 않을수록 나쁜 평가로부터 멀어질 수 있다.


그러나 가끔 나는 안전지대를 벗어나고 싶어진다.

타인의 평가에 갇힌 직장에서의 시간을 벗어나면 여태껏 해보지 않은 새로운 시도를 해보고 싶어진다. 낯선 경험은 내가 만든 세계에 영원히 갇힐 뻔한 위험으로부터 구출시킨다. 나를 모든 일에 서툴렀던 시절로 되돌린다. 그 기분은 썩 나쁘지 않다. 풋풋하고 싱그럽던 시절로 되돌아간 착각이 든다.


순간 젊음은 절대적인 것이 아닌 상대적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내가 반짝반짝 빛나는 스무 살을 부러워할 때 50대의 상사는 나의 젊음을, 70대의 엄마는 50대의 젊음을, 90을 바라보는 옆집 할머니는 엄마의 젊음을 못 견디게 부러워하며 말한다.

참 좋은 시절이라고.


그러니 지금 잡을 수 없는 시간을 아쉬워하며 아무것도 시도하지 않고 오늘의 젊음을 낭비하지 말자. 마음먹기에 따라 우리는 영원한 젊음을 유지할 수도 있다.


영혼은 결코 나이를 먹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