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여름날 아침, 여느 때처럼 출근을 위해 전기 스쿠터를 타려는데 1층에 매번 세워놓는 자리에 스쿠터가 보이지 않았다. 아뿔싸! 어제 퇴근할 때 갑자기 스쿠터 전원이 안 들어와서 하는 수 없이 직장에 놓고 왔었는데 깜빡 잊고 있었다. 뒤늦게 걸어서 출근하기 위해 부랴부랴 길을 나섰다.
집에서 직장까지의 거리는 도보로 35분가량.
시간이 빠듯하여 속도를 내며 걷기 시작했다.
영문모를 화를 퍼붓는 사람의 광기 어린 눈빛처럼 햇볕은 벌써 매서운 눈초리로 내 등을 쏘아보았다. 등이 조금씩 달구어지더니 따끔따끔하기까지 했다. 이마에 구슬땀이 또르르 얼굴을 타고 흘러내렸고, 겨드랑이도 땀이 차올라 옷이 축축하게 달라붙었다.
무거운 가방을 메고 있던 어깨는 여름 여신의 따가운 시선에 그만 기가 죽어 잔뜩 움츠러들었다. 숨 쉬는 공기마저 너무 습한 나머지 폐포까지 땀이 송골송글맺히는 느낌이었다.
뇌를 관통하는 신경시스템의 과열로 인해 짜증 수치는 순식간에 올라가고, 금방이라도 시스템 전원이 꺼질 듯 지끈거리는 편두통이 발생했다.
그 와중에 떨구어진 고개가 내 그림자를 발견했다.
기다랗게 늘어진 그림자는 까만 속내를 진하게 드리우고 바닥에 누운 채 질질 끌려다니며 시선 끝으로 보이는 건너편 빌딩 숲 사이로 금방이라도 빨려 들어갈 듯 쭈욱 당겨지고 있었다.
나는 수첩을 꺼내 글을 하나 썼다
출근길
아침 햇살 등에 지고
출근하는 길
가느다란 목도
삐뚜름히 기울어진 고개도
가방을 둘러멘 펑퍼짐한 엉덩이도
분명 너인데
새까만 속을 가진 너는
왜 그리도 슬퍼 보이는지
웬디가 꿰맸던 실밥을 풀어주면
기분이 좀 나아지려나
이봐 친구
기운 내라고
세상이 끝난 게 아니야
공허한 마음의 울림이 헛되이 공기 중으로 분산되었다.
눈을 통해 바라보는 모든 장면들조차 눈물로 만든 색안경을 낀 듯 뿌연 회색으로 뒤덮여서 보였다.
근래 들어 최악의 출근길이었다.
그런 상태로 일을 시작하니 업무가 즐거울 수 없었다.
매사 다 예민하게 받아들였고, 그런 마음은 뾰족하고 날카로운 단면을 가진 유리 조각이 되어 불쑥 불쑥 혀를 통해튀어나왔다. 내가 뱉은 유리 조각들은 상대뿐 아니라 내게도 상처를 남겼다. 종일 버거운 수레를 힘겹게 끌듯 직장에서의 힘들었던 하루를 끝냈다.
심란한 마음에 아무것도 하기 싫어 집으로 돌아와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괜히 옆에 앉아 유튜브를 보며 연신 웃고 있던 딸에게 언성을 높이고 온종일 유튜브만 보냐고 타박했다.
아이는 눈치를 보며 패드 전원을 껐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자니 속에서 화가 더 올라와 나는 벌떡 일어나 화장실로 달려갔다. 망가진 기분을 딸에게 쏟아내는 스스로가 못나 보여 얼른 얼굴에 찬물을 끼얹었다.
진정하자. 아이는 내 감정 쓰레기통이 아니다.
다시 화장실을 나와 헛헛한 마음에 아이 방 책상에 앉아서 핸드폰 화면을 켰다.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 여러 단톡방에 오늘 하늘에 무지개가 떴었다며 사진들이 연달아 올라와 있었다. 요정들의 마법으로만 만들 수 있을 것 같은 화면 속 아름다운 무지개들은 단번에 내 시선을 사로잡았다.
무지개가 깨달음을 들고 내 마음의 문을 두드렸다.
내가 온종일 지친 마음으로 고개를 숙이고 있었을 때 누군가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무지개를 발견했다.
내가 자신을 괴롭히는 동안 행운의 순간은 저 멀리 달아났다.
부끄러움과 후회가 물밀듯이 밀려들었다.
나는 내 마음을 다스리는 리더가 되겠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리더는커녕 부정적인 감정에주인의 자리를 내어주고 종일 복종하는 노예의모습만 보였다.
이 일을 계기로 이제부터는 고개를 푹 숙이고 땅이 꺼질 듯 한숨 쉬며 걷지도, 나를 둘러싼 현실이 힘들다고 불평하며 살지도 않겠다고 결심했다. 현실을 처량하게 만드는 건 단지 내 마음일 뿐이다.
내 마음을 바꾸면 구름 속에서 빠져나온 무지개를 발견하는 것처럼 현실 속에 감춰진 감동적인 순간을 맞이할 수도 있다.
하늘 보기 프로젝트
하늘을 올려다보며 행운을 잡겠다고 얘기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모두 안다.
입으로 아무리 결심해도 실천하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말만 하는 결심은 마음의 줄에 걸린 채로 흉물스럽게 말라비틀어지게 된다. 그렇게 말라붙은 자리는 털어내고 털어내도 후회가남아 지워지지 않는다.
습관으로 만들어야 한다.
습관으로 만드는 과정은 처음 한 달이 제일 어렵다.
궁리 끝에 인스타에 새벽 기상 타임 스탬프 사진의 테마를 '하늘'로 정하고 사진을 찍어서 매일 올리기로 했다.
그리하여시작된 하늘 보기 프로젝트는여전히 진행 중이다.
틈날 때마다 고개를 들고, 하늘을 올려다보고는 핸드폰을 양손에 잡고 팔을 쭈욱 뻗어 사진을 찍었다.
그런데 하늘을 볼 때마다 재채기가 나왔다.나는 유전적으로 광 반사 재채기(아츄 증후군이라고도 한다)가 있었다.
영미권에서는 재채기하는 사람을 보면 "God bless you! 신이 너를 축복해!"라고 한다.
그렇게 나는 신의 응원을 받는 존재가 되었다.
어떤 날은 둥둥 떠가는 구름을 잡으려는 듯 기지개를 켜기도 했다. 오그라들었던 마음도 다림질하듯 함께 펴졌다. 하루 중에 잠깐 쉼표를 챙길 수 있는 순간은 기분 좋은 덤이었다.
이 작은 행동이 무엇을 바꾸겠냐고 반문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에게 천기누설을 살짝 흘리고 싶어진다.
이렇게 생각해보자.
당신의 행동이 당신의 감정을 결정한다고.
그래도 못 믿겠다면, 지금 당장 턱을 한껏 위로 쳐들고 눈을 게슴츠레 뜨고 하늘을 쳐다보자.
그리고 입꼬리를 올려 미소를 만들어 보라.
나처럼 운 좋은 증후군을 가지고 있다면 목구멍을 막고 있던 근심덩어리가 재채기로 인해 멀리 튕겨져 나갈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