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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희정 Jan 20. 2024

읽어내리는 길마다 꽃길이길

온라인으로 알게 된 귀한 인연이 소포를 보냈다. 열어보니 예쁜 글씨가 써진 액자였다.


‘내딛는 길마다 꽃길이길.’


글자의 왼쪽에 붙어있던 보랏빛과 하늘빛이 감도는 드라이플라워는 소담히 피어난 채 글자와 다정한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실제로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내게 정성이 가득 담긴 손 글씨를 선물하는 이의 마음이 참 고마웠다. 직접 만나 한 공간에서 대화하면 상대의 살갗과 숨소리가 피부로 생생하게 느껴져 친밀도는 분수처럼 쭉 올라간다. 그러나 모든 경우가 그렇지는 않다. 어떤 인연은 꼭 보지 않아도 소중하다. 그녀가 바로 그런 예다. 그녀와 함께 썼던 시간의 밀도가 높았기 때문이다.


이 선물은 동시에 자신을 돌아보게 한다. 나는 이처럼 누군가에게 고운 마음을 나누고 있는가 하고. 내가 쓴 글로만 나를 아는 이들에게 나는 어떤 사람일까. 내 글을 통해 그들은 무엇을 얻어갈까. 글이란 어느 정도 정리된 생각이다. 글로 보이는 나의 모습은 실제보다 단정하다. 거짓은 아니지만, 보여주고 싶은 부분까지만 드러낸다. 마치 우리 집에 방문하는 친구를 위해 거실을 깨끗이 청소하며 너저분하게 널려있던 물건들을 가지런히 놓고, 일부는 한데 모아 안방 옷장이나 베란다 한쪽에 옮겨놓고 문을 닫는 식이다. 글쓰기에는 이런 정리 정돈이 어느 정도 필요하다고 믿는다.


감정을 여과 없이 쏟아내면 쓰는 이에게도 읽는 이에게도 결과적으로 좋지 않다. 한번은 몹시 슬펐던 날 응어리진 날것의 감정을 마구 글로 쏟아내고 주저 없이 인터넷에 올린 적이 있었다. 일순 후련해진 것도 잠시, 읽는 이의 마음마저 어둡게 만들었다는 죄책감이 일었다. 시간이 더 지나자, 누군가가 나를 어리석고 불안정한 사람이라 여길까 봐 두렵기도 했다. 며칠을 고민하다 결국 그 글을 삭제했다.


장황하고 어수선한 글은 쓰는 이에게는 수치심과 후회를 가져다주고, 읽는 이에게는 갑갑함과 지루함을 준다. 공감은커녕 거부감까지 주는 글은 읽고 나면 체기가 느껴지기도 한다. 나는 건강에도 좋고 맛도 좋은 글을 쓰고 싶다. 좋아하는 일이기에 한없이 욕심이 난다. 그 과정이 지겹고 좌절감을 줄 때도 있지만, 적당한 단어들이 눈앞에 떠오르면 그 이상의 보상은 없다.


 소화가 잘되는 글을 만들기 위해서 문장과 문장 사이에 연결성도 자주 신경쓴다. 글에는 적당한 흥미도 필수 요소이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건 선물을 전하는 사람처럼 진솔하고 정다운 의도이다. 적당한 재미와 전하려는 의도가 부드럽게 이어진 글은 마치 소고기와 배추, 깻잎을 가지런히 겹쳐서 꽃처럼 만든 밀푀유나베처럼 먹음직스러운 음식이 된다.


그런 글을 선보일 때는 가슴에 설렘이 펄펄 내린다. 흡사 이른 아침 가게 문을 여는 사장의 심정이 된다. 밤새 어둠에 담가져 냉기를 잔뜩 머금었던 공간을 불로 환하게 밝히고 테이블을 정리하며 손님 맞을 준비를 하듯 글을 올린다. 글에 한 스푼의 다정함을 넣어 가슴이 시린 사람에게 달콤한 온기를 내어주고 싶다. 매번 성공하진 않지만, 공감하고 마음이 따뜻해졌다는 답을 받으면 마냥 흐뭇해져 하루 매출을 많이 올린 사람처럼 싱글벙글해진다. 그야말로 꽃길의 한가운데 서 있는 기분이다. 아니 꽃길 위를 둥실둥실 떠다닐 수 있는 날개를 단것만 같다. 이런 날은 글을 계속 쓸 수 있는 이유를 한 움큼 손에 잡는 날이다.


오늘은 꽃길을 걸으라는 인연의 정다운 문장이 살포시 다가와 내 글에 내려앉았다. 마음을 훈훈하게 데워준 글보다 곰살궂은 그녀가 부디 꽃길처럼 아름다운 생의 길을 걸었으면 좋겠다. 내 글을 읽은 사람들 역시 그런 마음을 담아가면 소기의 목적은 달성한 것이다. 꼭 꽃길일 필요도 없다. 꽃 한 송이만큼의 향기만 맡을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누구나 가슴속에 피울 수 있는 꽃봉오리 하나쯤은 이미 심겨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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