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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희정 Feb 27. 2024

사랑은 모든 감정을 이기지 않는다

“엄마, 이 노래 좀 들어봐. 이번에 나온 아이유의 새 노래인데 너무 좋아. 나 오늘 계속 이것만 들었어.”

퇴근 후 잠깐의 여유를 부리려고 막 책을 펼쳐보던 참이었다. 음악을 듣던 딸이 다가오더니 다짜고짜 자기 귀에서 무선이어폰 한쪽을 뽑아서 내 귀에 찔러 넣었다.      


요즘 딸은 매일 이어폰을 끼고 산다. 난청이 생긴다고 적당히 들으라고 해 봤자 아무 소용이 없다. 그녀에게 찾아온 사춘기는 내게 여태까지와는 다른 인내심을 요구했다. 하나의 생명을 어엿한 인간으로 만드는 일은 최상위 수준의 마음 수양을 요구한다. 딸이 듣는 음악은 주로 여자 아이돌 노래인데, 그중 가장 좋아하는 아이돌은 ‘아이브’와 ‘르세라핌’(이 가물거리는 이름을 쓰기 위해 네이버 검색창을 사용했음을 고백한다)이다. 어렸을 때도 친구들이 듣던 대중가요보다는 음울하고 몽환적인 인디밴드의 음악을 더 좋아했던 나였다. 그런 내가 이제 와 새삼 아이돌의 음악을 즐길 리가 없다. 그래도 이번 노래는 나도 좋아하는 가수 아이유의 신곡이라 꽤 들을 만했다. 그녀의 청아한 목소리는 마흔 넘은 아줌마의 마음도 충분히 흔들 수 있다.


한창 듣고 있는데 딸이 불쑥 물었다.

“엄마. 이 노래 제목이 Love wins all이야. 가사 중간에도 그 말이 나와. 그런데 이 말이 무슨 뜻이야? ”

“사랑은 모든 걸 이긴다는 뜻이야.”

단순한 영어인데 그 정도도 몰랐냐고 잔소리했더니 딸은 알았는데 확인한 것뿐이라고 응수했다.      


Love wins all.     


딸이 떠난 자리에 그 문장이 계속 맴돌았다. 문득 내게 머문 사랑은 무엇인지 생각했다.


세상에 나와 처음 받은 사랑은 부모에게서 왔다. 한결같이 받았던 사랑은 내겐 익숙함이었다. 부모는 항상 주는 사람이었다. 사랑을 늘 가지고 있었기에 소중한 줄 몰랐다. 마치 하늘에는 구름이 떠 있고, 땅에는 꽃과 나무가 자생하는 현상처럼 그냥 당연했다. 사랑을 사랑인 줄 모르고 자랐다.     


이십 대에 했던 남녀 간의 사랑은 배신의 아픔으로 남아있다. 첫사랑의 열병은 그를 내 세상의 전부로 왜곡하게 했다. 사랑은 서툴렀고, 불안정했으며, 아팠다. 그가 친한 동생과 바람나서 떠난 뒤 가슴에 남은 상처가 너무 깊어 다시는 예전처럼 살 수 없을 줄 알았다. 내 마음은 내 것이 아니었고, 그의 것도 아니었다. 주인 없는 사랑이 오직 집착과 미련이란 감정에 오랫동안 매몰되어 허덕거렸다. 그 뒤로도 꽤 오랫동안 사랑을 믿지 못했다.      


영원히 혼자 살고 싶었는데, 인생은 원래 내 맘대로 되는 게 아니더라. 서른 넘어 만난 인연에는 마음 전부를 주지 않았다. 나와 가족을 위해 돈을 버는 게 우선이었고, 힘든 인생을 함께할 믿음직한 동지가 필요했다. 사랑도 있었지만, 언제든지 변할 수 있는 사랑보다는 믿음이 컸기에 결혼까지 할 수 있었다. 나는 그걸 익은 사랑이라 불렀다.      


그리고 마침내, 또 다른 세계가 들어왔다.


딸을, 낳았다. 부모가 되어서야 부모의 마음을 알 수 있다는 말은 동서고금을 막론한 진리가 틀림없다. 나를 닮은 얼굴, 손가락, 발가락, 고불거리는 머리카락 한 올까지 어디 하나 예쁘지 않은 데가 없었다. 딸은 내게 사랑은 받기보다 주는 기쁨이 크다는 사실을 알게 해 주었다. 내 새끼가 너무 소중해서 잃어버릴까 봐 겁이 났다. 아이가 자라는 모습은 세상 제일의 행복인 동시에 걱정이 되었다. 남에게 미운 감정이 생겨나, 화가 나고 원망하다가도 집에 돌아와 해맑게 웃는 아이의 얼굴을 보면 흉한 감정의 파도가 잔잔한 물결로 바뀌었다.   

   

부처가 아니더라도 자식이 있는 사람은 누군가를 오래 미워하지 못한다. 아니 최소한 전보다는 미워하는 기간이 짧아진다고 믿는다. 적어도 내겐 그랬다. 누군가가 싫다가도 그 역시 부모에게는 귀한 자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도 고슴도치처럼 날카롭던 사람이 아이를 키우면서 부드러워지는 경우를 우리는 흔하게 목격하지 않는가.


인간은 평생 여러 감정과 함께 산다. 픽사의 장편 애니메이션 <인사이드 아웃>에서는 인간의 다섯 가지 감정인 기쁨(joy), 슬픔(sadness), 분노(anger), 혐오(disgust), 두려움(fear)이 나온다. 영화의 주인공 소녀 라일리가 아빠의 사업으로 인해 갑자기 정든 학교와 친구를 떠나야 했던 것처럼 인생에는 뜻하지 않은 일이 계속 찾아오게 마련이다. 각각의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 다양한 감정이 일어나는 건 응당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좋은 일은 순간이라 기쁨은 언제나 삶을 스쳐 지나간다. 영원히 머리를 들고 올려 봐야 할 것 같던 부모와도 시간이 흐르면 눈높이가 일치하다가 고개를 숙이고 내려봐야 할 시간이 온다(슬픔). 부당한 일을 당해도 소리 내 말할 수 없는 경우는 허다하다(분노). 같은 공간에 있기도 싫은 사람과 온종일 얼굴 맞대고 지내야 월급이란 대가가 나온다(혐오). 가진 게 늘어날수록 불안감에 휩싸인다(두려움). 감정을 느껴야 벗어날 방법도 생각할 수 있다. 모든 감정의 혼돈을 경험하면 시련에도 면역력이 생긴다. 추억은 상처로 만들어진 아름다움이다.     


돌기에 물이 소용돌이치며 흐르듯 모든 감정은 멈추지 않고 끝없이 교류한다. 이 모든 감정의 소용돌이를 담을 거대한 마음 상자가 필요하다면 나는 거기에 ‘사랑’을 놓아야 한다고 확신한다. 아무리 힘든 일에도 사랑을 간직하고 사는 사람들이 늘어난다면 이 세상도 조금은 더 살만해질 테니까.     


사랑은 모든 감정을 이기지 않는다.

대신 모든 감정이 스스로 이길 수 있도록 안아줄 뿐이다.

사랑의 위대함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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