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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희정 Feb 25. 2024

작가와 글 잘 쓰는 사람의 차이

“기업이 기사를 의뢰하는 이유에는 사실 다른 의도가 숨어있어. 더는 인터넷에 기사 몇 개 올라온다고 해서 유명해지거나 하진 않거든. 대신 관련 키워드를 검색했을 때 그 기업에 관한 좋은 기사를 보면 사람들은 기사에 나온 기업을 믿을만한 곳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 기업이 노리는 건 바로 그거야. 그런가 하면 어떤 기사는 아무리 큰 기업이라고 해도  하루아침에 타격을 주거나, 또는 망하게도 할 수 있어. 글이 가진 힘은 생각보다 매우 강해. 때론 사람을 찌를 수 있는 날카로운 칼보다도 무서운 무기가 되기도 한다고.”


회식 자리였다. 한때 지역 신문사에서 기자로 근무하셨던 이사님께서 그 시절의 일화를 꺼내며 글이 가진 힘에 관해 언급하셨다. 신문 기사를 향한 대중의 일반적인 인식이나, 정치적 목적을 가진 책이 출판되자마자 빛의 속도로 베스트셀러 상위 목록을 차지하는 현실이 떠올랐다. 절로 고개가 끄덕여지는 대목이었다.


얼마 전, 마약 사건에 휘말린 한 남자 배우가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처음 사건이 세상에 드러났을 때, TV만 켜면 카메라 플래시 세례와 함께 경찰서로 들어가는 배우의 모습이 무한 반복 재생이 설정된 영상처럼 흘러나왔다. 채널을 돌려도 사정은 비슷했다. 남 일에 뭐 저리 관심이 많은 건지. 혼잣말하며 TV를 꺼버렸다. 그래도 소용없었다. 손안의 인터넷에 사는 오늘날 세상은 보기 싫은 일을 보지 않을 수 있는 자유를 빼앗아 갔다. 흥미 위주의 기사는 몸에 붙은 그림자처럼 언제나 손끝에 매달려 있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어느새 그의 은밀한 사생활 깊은 부분까지 들여다보고 있었다. 결국 그 배우는 다신 돌아오지 못할 선택을 했다. 사실 선택이란 말은 이 상황에 부적합한 단어이다. 그의 잘잘못을 떠나 언론의 선동적인 기사는 한 인간을 가차 없이 죽음으로 밀어버리기에 충분했기 때문이다. 그가 죽자 언론은 재빨리 태세를 전환해 이번에는 수사 기관의 과도한 조사과정이 문제였다는 기사를 일제히 쏟아냈다.


나는 공격적이거나 비난의 의도를 가진 글을 되도록 피하려고 한다. 그런 식의 글은 자극적이고 재미있다. 기분이 나빠지면서도 한편으론 다음에 벌어질 일이 궁금해서 또 찾아보고 싶어진다. 그럴듯한 논리로 포장되어 있어 자기도 모르는 새에 일부 설득당하기도 한다. 마치 벌레를 퇴치하기 위해 켜놓은 UV 램프로 무심결에 끌려 들어가는 모기가 된 기분이 든다.      


어떤 일이라도 꾸준히 하다 보면 숙련도가 올라가기 마련이다. 글도 마찬가지다. 글 쓰는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필력이란 기술을 의미하는 경우가 많다. 세상에는 기술 좋은 사람이 가득하다. 단지 좋은 기술을 가진 모든 이들을 장인이라 부르지는 않는다. 장인이란 현란한 기술을 쓸 뿐만 아니라 심혈을 기울여 자신만의 작품을 만드는 사람을 말한다. 심혈이란 심장의 피, 즉 마음을 일컫는다. 글에서도 필력보다 중요한 건 본질이라고 생각한다. 핵심적인 차이 하나가 기술자와 장인을 가르듯이, 글에서도 본질의 차이가 단순히 잘 쓰는 사람과 작가의 경계선을 만든다.      


읽는 사람을 위해 비단길을 깔아놓듯 좋은 의도를 바탕으로 쓴 글을 읽고 싶어 하는 근거를 여기에서 찾는다. 기술자의 글에 순간적으로 감탄하며 끌려갈 수는 있어도 그런 글은 머지않아 가슴속에서 사라진다. 내 마음에 오랫동안 머무는 글은 겨우내 얼어붙었던 눈을 녹아내는 봄볕 같은 글이다. 그런 글을 쓰는 사람은 기술자가 아닌 진정한 작가라 불릴만하다. 마음을 저미는 칼이 아닌 심장이 저리도록 뭉클한 '혼'을 담은 글이 오늘따라 그립다.      


나도 글 잘 쓰는 사람보다 작가가 되고 싶다.      



#라이트라이팅 #라라크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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