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이라는 숫자의 역기능

by 안희정

사람들은 흔히 하나 보다 둘이 더 좋다고들 한다.


가끔은 혼자 있는 시간도 좋지만, 그 시간이 길어지면 외롭고 우울해지며, 만사가 귀찮고 때론 불편하기까지 하다.


그러나 일단 둘이 되면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는 속담처럼 서로 의지할 수 있고, 음식을 먹으러 갈 때도 고민이 되는 두 가지 메뉴를 한 가지씩 시킬 수 있다. 물론 짬짜면의 탄생과 치킨집의 프라이드와 양념 반반 메뉴는 수많은 결정 장애인들에게 혁명을 안겨주었으나(사실 이 부분에서조차 이상하게 모든 반반 메뉴는 맛이 별로 없다고 생각되는 건 나만의 착각일까?) 여전히 많은 분야에서 우리는 혼자일 때, 욕심과 한계 사이에서 결정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


아무튼 하나 보다 둘일 때 우리는 주로 균형과 조화, 화합 등 긍정적인 이미지를 떠올린다.

나 역시 어릴 적 가장 좋아하는 숫자가 뭐냐고 물으면 그런 이미지를 그리며 2라고 대답했던 기억이 있다.


그러나 이렇게 완벽해 보이는 둘이란 숫자가 주는 순기능만큼의 역기능이 있었으니 그건 바로 '비교'이다.


며칠 전 직장에서 함께 일하는 이와의 대화 중 나이가 비슷한 여직원 두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대화는 자연스레 둘 중 누가 더 나은지에 대한 주제로 이어졌다.


"물론 둘 다 괜찮은데, 저는 걔가 더 낫더라고요. 표정도 좋고 말하는 것도 그렇고, 태도도 더 나아서 훨씬 마음이 가요."


그 말을 들으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만약 그녀가 옆에 있는 사람과 비교를 당하지 않았더라면 더 자신감 있게 직장생활을 이어가고 동료와 상사로부터 애정과 사랑을 더 많이 받을 수 있었을까.


그러나, 설사 타인으로부터의 비교를 받지 않는다고 해도 우리는 여전히 비교의 사슬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사실 옆에 있는 사람과 제일 비교를 많이 하는 사람은 그 누구보다도 바로 나 자신이기 때문이다.


비교하는 상대에 비해 우위에 있다면 우월감을 가질 수 있겠지만 열위에 있다면 끊임없이 자신을 책망하고 깎아내리게 된다. (그리고 물론 우리는 우위보다 열위에 처했을 때를 훨씬 강력하게 받아들이며 오래도록 간직한다)


대학 시절, 내게도 절친이 있었으니 우리는 꽤 죽이 잘 맞아 낮이고 밤이고 자주 붙어 다녔었다. 그녀는 내성적이고 반사회적이었던 나와는 달리 눈부시게 밝고 싹싹하며, 사교적인 성격으로 학교 다니는 내내 남자 친구가 있었고, 교수님들의 총애 역시 한 몸에 받았었다.

나는 그런 그녀를 보며 한 번씩 열등감을 느끼고는 했었는데 그런 못난 내 감정에 쐐기를 박은 사건이 있었으니 그건 바로 대학 졸업 전 원하는 직장에 이력서를 내기 위해 담당 교수님의 추천서를 받으러 교수님을 찾아갔을 때였다.

교수님은 내가 가고 싶어 하는 곳이 나의 이미지(?)와 맞지 않다며 어울리는 다른 곳에 추천해줄 테니 그쪽으로 이력서를 넣으라고 하셨다.

교수님의 눈 밖에 나기 싫었던 나는 하는 수 없이 추천받은 곳에 응시했으나 서류 전형에서 바로 탈락하고 말았다.

그런데 나중에 교수님이 내가 가고 싶어 했던 곳으로 그 친구에게 추천서를 써주셨다는 것은 제삼자를 통해서 알게 되었다.

심지어 그 친구는 처음에는 거기에 가려는 마음도 없었는데 교수님의 적극적인 추천으로 결국 그곳에 취업했다.


나는 그 일로 친구나 교수님을 원망한 적은 없었다.

그 대신 그녀에 비해서 무엇이 부족했었는지에 대해 끊임없는 회한에 빠져들었었다.


세월이 흘러 그때 가슴속의 상처는 완전히 아물고 희미한 흉터가 되어 기억이란 옷장 구석 한편에 자리 잡고 있지만 지금도 나보다 한두 발 앞서간 특정한 누군가와의 격차를 헤아리며 자신을 작고 초라하게 만드는 못난 버릇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 와 돌이켜보면 그럴 때마다 나를 힘들게 했던 마음이 과연 둘이라는 숫자에서 시작된 걸까 다시 생각해보고 싶어 진다.


조금만 깊이 고려해보면 숫자에는 잘못이 없다.

둘 중 하나는 맞고 하나는 틀렸다거나 한쪽이 더 낫고 다른 쪽은 못난 것이 아닌 다름의 문제일 뿐이다.


즉 친구는 취업하고 나는 못 했다고 내가 그녀보다 열등한 존재라는 공식은 성립하지 않는다.


비록 지금 이 순간에도 타인이 던지는 비교의 시선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겠지만 나만이라도 타인과의 비교를 멈추고 그 시간에 자신을 점검해보고 때론 관대한 마음으로 돌본다면 적어도 어제보다는 더 발전할 수 있지는 않을까.


한계라는 상자에 들어가 비교의 못을 박아 그 속에 옴짝달싹 못 하며 자신의 영혼을 가두고 고문하기보다 도전과 새로운 경험을 바탕으로 비교 불가, 대체 불가의 유일한 나를 만들자.


나는 이제 당당하게 말할 수 있다.

나는 그냥 나고

너는 나의 경쟁자가 아니고

우리는 모두 고유한 가치를 지닌 소중한 존재이다.


오늘도 비교에서 벗어나 자신의 가치를 높이는 누군가를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