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헬창의 마음 다스림을 위한 명상법

헬창 : 헬스 + x창 을 조합하여 헬스에 미친 사람들을 가리키는 축약어

by 안희정

나는 헬창이다

(라고 말하기에는 몸이 여전히 웅장한 대웅전이다).


헬스, 즉 보디빌딩이라는 운동을 꽤 좋아한다(그러나 이 말 역시 헬스를 잘한다는 의미는 절대 아니다. 좋아하는 일이 반드시 잘하는 일이 될 수는 없지 않은가. 그래서 몸이 헬창의 전제조건이라고 한다면 나는 한발 후퇴해서 반 헬창이라고 수정해서 명명하겠다).


결혼 전, 5년 동안 꾸준히 한 수영 덕분에 체력은 꽤 괜찮은 편이었으나 임신으로 멈춰진 운동은 아이가 세상 밖으로 나오면서 더 이상 나와는 관련지을 수 없는 행위가 되어 버렸다.

그리고, 노산으로 노쇠해진 몸은 일과 육아로 점점 더 나빠지기만 했다.

평생 살이 찌지 않으리라 자신했었는데 역시 영원한 건 없었다. 임신하면서 찐 살은 별로 먹은 것도 없는 것 같은데 내 곁을 떠날 줄을 몰랐다.

언젠가 다시 운동해야지 그렇게 마음속 다짐만 하길 여러 차례였지만, 나를 둘러싼 현실과 시간 속에서 운동을 향한 다짐은 늘 가슴으로부터 떠올라왔다 입속에서 공허한 소용돌이만 만들고 다시 가라앉았다.


그러다, 결국 건강이 나빠졌다.

건강 검진 결과 콜레스테롤 수치가 올라가고 지방간 소견이 나왔다.

나름 건강한 생활 습관을 유지한다고 자신했었기 때문에 그 결과는 내게 굉장한 충격이었다.


마침 그 해에 우리 딸이 초등학교에 들어가 이제는 제법 대화가 가능한 초등학생이 되어 나는 최대한 엄마의 비위를 맞추며 조심스럽게 부탁했다.


"엄마, 내 건강 검진 결과에 지방간이 나왔어.. 몸도 맨날 무겁고 아프고.. 나 운동 다시 시작하면 안 될까? 수영 다시 하고 싶어."


뭣이 중한데, 딸내미가 건강이 나빠졌다는데.

엄마는 그렇게 내가 수영을 다니도록 우리 딸을 몇 시간 더 봐주기로 하셨다(참고로 나는 엄마랑 한집에서 살며 엄마 찬스를 쓸 수 있는 행운을 가졌다. 그러나 엄마 찬스를 계속 남발하는 자, 결국 화를 입으리).


그렇게 다시 시작한 수영, 아주 오랜만에 수영장의 청량한 락스 내음 가득 품은 물에 들어간 나는 물 만난 고기처럼 신나게.. 했으면 좋았으련만 몸이 정말 예전 같지 않았다.

하긴 수영 그만둔 지가 우리 딸 나이만큼이니 예전과 똑같으면 오히려 이상한 거다.


그래도, 좋았다.

수영을 다시 시작하며 몸도 생활도 조금씩 활기를 찾았다.


그런데 수영을 다시 시작한 지 1년 만에 전 세계를 덮친 그 바이러스, 코로나가 터졌다.

수영장은 물론 거의 모든 운동할 수 있는 장소들이 문을 닫았다.


그러나 나는 여기에서 멈출 수 없었다.

어떻게 다시 시작한 운동인데 멈출 수 있겠는가.

다시 무기력하게 일과 육아에만 파묻혀 살 수는 없었다.


혹자도 말하지 않던가.

내가 아니 엄마가 행복해야 가족이 행복하다고.

나는 그렇게 다른 운동을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운명처럼 발견한 헬. 스. 장.


코로나 격리 단계 상승으로 거의 전멸하다시피 한 운동 세계에서 몇 안 남은 생존 공간. 헬스의 '헬' 자도 몰랐던 나는 그렇게 헬스의 세계로 입문했다.


막상 입문하고 보니 이 세계는 레벨에 따라 철저히 영역이 나뉘어 있었다.


나 같은 헬린이(주:헬스 어린이)는 주로 스트레칭 룸, 러닝머신, 사이클에 서식했다.

중상급 자들은 보기에도 무시무시한 여러 가지 기구 존과 프리웨이트 존에서 한 번씩 괴성을 지르며 활동했다.

그리고 헬스장이 처음 생겼을 때부터 다녔을 것 같은 터줏대감 어르신 종족들은 에어로빅, 요가를 비롯한 각종 그룹 운동을 위한 GX룸에서 생활하며 한 번씩 돌돌이라고 불리는 전동 롤러와 허리 벨트 마사지 기구로 마실을 나왔다.


처음 일 년 동안, 나는 나만의 루틴을 만들어 운동했다.

스쿼트는 50 횟수를 시작으로 조금씩 늘려가며 20개씩 10세트, 총 200회를 매일 실시했다.

그리고 플랭크나 버핏 테스트 등의 운동을 조금씩 늘려나갔다.

그렇게 1년을 하다가 조금 더 발전하고 싶어 PT를 10회 끊고 간단한 기구 사용법과 기본 웨이트 운동, 그리고 올바른 자세를 배웠다.

더 하고 싶었지만, PT비용이 만만치 않아 다시 혼자서 운동했다.

매일 헬스장을 드나들었더니 낯설었던 공간은 그사이 내 삶의 일부가 되었고 트레이너의 손에 이끌려 입성한 프리웨이트 존은 더 이상 헬스 거인들의 성지가 아니었다.

이제 어디선가 괴성이 들리면 바벨에 원판이 몇 개인지 덤덤하게 힐끔거리며 확인할 뿐이었다.

그렇게 그 속에 조금씩 물들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 프리웨이트 존에서 나의 구세주, 그녀를 만났다.

헬스 7년 차에 PT(최소) 5년 차, 보디 프로필 사진만 총 4회, 준전문가인 그녀는 나보다 2살 위의 화려한 싱글로 헬스장의 인싸였다.

워낙 밝고 활달한 성격이라 매일 프리웨이트 정글 음습한 곳에서 혼자 운동하던 나를 발견하고는 고맙게도 먼저 말을 걸어주었고, 우리는 그렇게 친해졌다.

그녀는 많은 운동을 알려주었고, 내 자세를 교정해주었으며, 내가 정신이 혼미해지려고 할 때마다 가감 없는 독설로 내 뒤통수를 갈겼다.



그녀의 도움으로 지난 1년간 나는 꽤 많이 발전했다.

여전히 그녀에게 비하면 턱없이 부족한 실력이지만 그래도 처음 병아리 시절에 비하면 조금은 자랐다고 말할 수 있겠다.


그러나 대부분의 시간에는 혼자서 운동했다.

헬스는 사실 철저히 혼자만의 싸움이다.

이 세상에 가장 가기 싫은 길은 헬스장으로 가는 길이며(평일은 물론이고 주말에도 이 길이 너무 좋아서 날아서도 갈 수 있을 것 같다면 당신은 이미 헬창), 쇠질(?)을 할 때마다 속으로 수천 번 마음의 외침을 듣는다.

"더는 못해. 그만하고 싶다."

그러나 그 외침을 이겨내고 오늘의 루틴을 끝낸 자는 진정한 승리자이다.


나는 지금도 헬스장에서 땀샘을 터트려가며 도망가고 싶은 순간마다 스스로 말한다.


"세상에 쉬운 일은 없다. 그러니 그냥 하자."


그러고 보면 나는 헬스를 하며 단순히 몸만 단련한 게 아니라 마음 강화 훈련을 함께 한 듯하다.

운동을 할수록 내 안의 끈기라는 녀석도 함께 성장했음을 나는 머리가 아닌 몸으로 느낀다.

상념을 버리고 땀 흘린 자만이 가질 수 있는 상쾌함은 단지 도파민의 영향만은 아닐 것이다.

그것은 바로 오늘도 해냈다는 작은 성취감이다.


누군가 명상은 하고 싶은데 여러 잡념의 방해로 잘 않된다면 운동도 최고의 명상 중 하나가 될 수 있다고 권유하고 싶다.


이 순간 나와 내가 하는 행위에만 집중하고, 하기 싫어도 하고, 정말 못할 것 같을 땐 못할 것처럼 또 하면 된다.


삶은 흡사 헬스와 같다.

근 성장을 이루기 위해서는 근육의 파괴와 회복의 순환을 견뎌내야 한다.

인고의 시간을 견디면 절대 못 할 것 같았던 스쿼트도 어느새 몇백 개를 해도 끄떡없는 날이 온다.

그러면 그때, 거기서 머무는 것이 아닌 다른 운동으로 바꿔 근육에 새로운 자극을 주어야 한다.

그래야, 한 근육만 불균형적으로 발달하지 않고 고르게 발달할 수 있다.


세상에 쉬운 일은 없다.

그러나 모든 어려운 일도 근 성장을 시키듯 조금씩 꾸준히 하면 된다.

오늘 실패하면 내일 다시 시작하면 된다.

실패는 근육 파괴처럼 내일의 성공을 위해서 꼭 필요하다.


어차피 도망가지 못할 바에 그냥 웃으며 해버리자.


ps. 오늘도 근 손실을 염려하며 헬스장으로 향하는 천만(?) 헬창인들 파이팅.


한 줄 요약: 삶은 헬스와 같다. 근 성장을 위한 인고의 시간을 견디듯 오늘 성장의 시간을 이겨낸다면 당신은 인생의 승리자가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