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안희정 Jul 07. 2024

무계획 여행을 가는 마음 자세

라라크루 화요갑분글감

● 라라크루 화요갑분글감(2024.6.25)

✔️ 갖고 싶은 취미

✔️배우고 싶은 일

✔️해보고 싶은 허튼짓(?)


어릴 때부터 딱히 하고 싶은 일이 없었다. 종일 만화책이나 보고 쉴 때는 라면이나 끓여 먹는 것도 소원으로 쳐준다면 딱 그 정도라고 하겠다. 한마디로 놀고먹는 게 꿈이었다. 그래도 매일 만화책만 보고 살 수는 없으니 어떻게 하면 잘 먹고 잘 놀 수 있을까 고민해 본 적은 있었다. 이왕이면 전에 안 가본 곳에서 놀고, 안 먹어본 음식을 먹으면 더 재밌겠다고 생각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처음으로 세계 일주해보고 싶은 꿈이 생겼다. 딱 거기까지였다. 꿈을 꾼 사실만 기억하고 정작 무엇을 꾸었는지는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는 꿈처럼 어릴 적 소망은 그렇게 희미한 흔적으로만 남았다.


실제 첫 해외여행은 28살이 되어서야 이루어졌다. 지금은 호주에서 가정주부로 사는 친구네 집에 놀러 갔을 때였다. 그 당시 이미 해외여행을 많이 다니던 친구가 몇 달 전 일본을 다녀온 일화를 꺼냈다. 친구가 일본에서 겪었던 낯선 문화를 얘기할 때 두 눈을 반짝이며 들었다. 부러워만 하고 행동할 용기는 없었던 날 눈치챘던 걸까? 곧 친구가 같이 여행을 가자고 제안했다. 패키지여행은 예약하기에 어렵지 않으니 친구가 적당한 상품을 알아보겠다고 말했다. 공기펌프로 확 커진 풍선처럼 꿈이 다시 부풀어 올랐다. 그 자리에서 곧바로 승낙했다.


3박 5일의 필리핀 세부 여행은 그렇게 가게 되었다. 그때 스킨스쿠버 투어를 하며 봤던 화려한 색의 산호초와 생전 처음 보는 신기한 물고기 떼는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이제는 환경오염으로 동남아시아 어느 나라를 가도 그 정도 화려한 산호초 섬은 좀처럼 보기 힘들어졌기에 더욱 소중한 추억이 되었다) 처음 먹어본 음식과 야시장, 아름다운 바다를 매일 감상하며 행복감에 취했다.


패키지여행이었기에 함께 일정을 소화하는 사람들과 첫날 저녁 호텔 수영장 벤치에 모여 맥주를 마셨다. 그들 중에는 50대 중반쯤 되어 보이는 부부도 있었다. 그들이 우리 중 가장 나이가 많았기에 자연스럽게 일행의 대표 역할을 담당했다. 여행 중 불편한 점이 있으면 우리를 위해 가이드에게 이런저런 요구를 하기도 했다. 유치원을 운영한다는 그들의 얼굴에는 여유가 넘쳐흘렀다. 그들은 보며 나도 50대가 되면 휴양지에서 평화롭게 인생을 즐길 수 있을까 생각했다. 매일 병원에서 파김치가 되도록 일만 하던 시기였기에 그들의 모습은 마치 죽어라 뛰어도 영원히 닿을 수 없는 결승선처럼 보였다. 꼭 우승자가 되지 않고 참가자만 되어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조금씩 돈을 모아 최저가 패키지여행이라도 꼭 다시 하겠다고 스스로 다짐했다.    

  

그때뿐이었다. 김밥 한 줄 사는 일조차 망설이던 내가 하루아침에 변할 리가 없었다. 결국 두 번째 여행지는 결혼식 후 신혼여행으로 떠난 태국이 되었다. 남편은 그때 태어나서 처음으로 해외여행을 갔다. 화려했던 신혼여행 후 남편은 해외여행의 맛을 제대로 알아버렸다. 이후 계획형 인간인 남편 덕분에 우리는 지금까지도 일 년에 한 번은 해외여행을 가고 있다.


해보고 싶은 허튼짓(?)을 말하는데 사설이 길었다. 내가 별안간 옛 추억을 길게 푸는 이유는 갑자기 미국으로 혼자 여행 갈 기회를 잡다는 데에 있다. 얼마 전 내가 일하는 병원에서 의사 한 명이 개인 사정으로 돌연 그만두게 되었다. 바로 의사 구인 공고를 냈지만, 우리와 인연이 될 의사를 쉽게 찾지 못했다. 사정이 이렇게 되자 직원들에게 휴가를 적극적으로 권유하는 분위가 되었다.


고민 끝에 나도 몇 주 전 9일의 휴가를 신청했다. 남편은 갑자기 7월에 긴 연차를 내기는 어렵다고 이번 기회에 잘 놀고 오라고 말해주었다. 미국에 있는 친구에게 연락해 사정을 설명하고 같이 여행 가자고 졸라댔다. 다행히 친구도 시간이 허락한다고 대답했다. 무작정 미국행 비행기 티켓을 끊었다. 정밀한 계획은 없다. 다음 주 목요일 밤에 떠나는 비행기에 몸을 싣고 뉴욕 공항에 내리면 친구가 차를 끌고 마중 나오기로 했다.


친구와 둘이 나이아가라 폭포 가보기로 했다. 나이아가라 폭포는 캐나다 쪽이 더 멋지다는 친구의 말에 캐나다 국경도 통과해 볼 예정이다. 어제 호텔을 알아보기로 한 친구와 통화했는데 아직도 호텔을 예약하지 않았다고 한다. 마흔 중반의 아줌마에게 이보다 더 설레는 허튼짓이 또 있을까 싶다. 이국땅에서 얼마나 고생하며 다닐지는 모르겠지만, 무작정 찾아오는 재미있는 우연도 많이 만나기를 바란다.          



#라이트라이팅#라라크루#화요갑분글감

작가의 이전글 행복을 위한 불행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