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여행 일기 - 오랜 친구와의 만남
1st day
충동적으로 가게 된 미국 여행. 그 시작은 직장에서 의사 한 명이 개인 사정으로 갑자기 그만두게 되면서 시작되었다. 병원에서는 즉시 의사 구인·구직 사이트에 구인 공고를 올렸다. 한 달이 넘도록 새 의사를 구하지 못하자 병원을 방문하는 환자가 썰물처럼 줄어들었다. 상황이 바로 좋아지긴 어렵겠다고 판단한 병원은 차선책으로 직원들에게 휴가를 적극적으로 권장했다. 그 말을 듣고 어쩌면 휴가야말로 번아웃이 길게 이어지는 요즘 내 상태에서 탈출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삶과 상관없는 곳으로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었다. 남편에게 상의했더니 동남아로 가는 가족여행을 짜보겠다고 말했다. 나는 그것도 좋다고 고개를 끄덕거렸다. 며칠 동안 여행 상품을 알아보던 남편의 의욕에 제동이 걸렸다. 회사 사정으로 휴가를 내기 어렵게 되었기 때문이다. 남편은 흔치 않은 기회인데 혼자라도 가고 싶으면 가라고 말해 주었다. 가족도 없이 떠나는 여행이 신선한 도전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아무런 계획도 없이 덜컥 휴가 신청부터 했다.
여름휴가라니…. 마지막으로 여름휴가를 간 게 언제인지도 잘 기억나지 않는다. 내가 일하는 검진센터는 1~2월이 비수기라 우리 가족은 매번 겨울철에 맞춰서 휴가를 갔었다. 휴가 계획은 언제나 남편이 전부 도맡아 했다. 의지할 사람 하나 없이 막상 여행하려니 사막에 혼자 떨어져서 갈 길을 찾는 것처럼 막막했다. 궁리 끝에 친구인 셀린에게 전화했다. 셀린은 미국 메릴랜드에 사는 십년지기 내 친구이다. 온라인 친구로 시작한 우리는 힘들 때마다 서로를 위로하고 응원하며 국경과 거리, 언어까지 초월한 우정을 쌓아갔다. (사람과 사람이 진실한 관계를 만드는 데에 언어 장벽은 생각보다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손짓, 발짓을 동원한 내 엉터리 영어 실력은 여기에 명백한 증거가 된다)
5년 전에는 마침내 내가 먼저 미국을 방문해 둘이 함께 자동차여행을 했었고, 3년쯤 전에는 셀린이 나를 만나러 한국에 오기도 했었다. 셀린은 내 사정을 듣더니 일단 자기네 집으로 놀러 오라고 했다. 셀린도 시간이 된다고 하니 기쁜 마음으로 곧바로 짐을 쌌다. 떠나기 며칠 전까지도 어디로 놀러 갈지를 정확히 정하지 못하다가 셀린의 제안으로 캐나다 국경을 넘어 함께 나이아가라 폭포를 보러 가기로 했다. (나이아가라 폭포는 미국 폭포와 캐나다 폭포가 있는데 우리가 인터넷으로 많이 보았던 경치는 캐나다로 가야 제대로 볼 수 있다고 한다) 일단 목적지가 정해지자 모든 일이 우리가 가는 폭포급으로 빠르게 진행되었다. 떠나기 이틀 전, 셀린은 캐나다 나이아가라 근처에 있는 호텔을 예약했다.
13시간의 비행 후 한밤중에 뉴어크 리버티 국제공항에 내렸다. 첫 번째 방문했을 때도 입국 심사대를 통과했을 때 심사관이 무슨 목적으로 왔느냐. 얼마나 머물 거냐. 숙소는 어디냐. 등의 질문을 퍼부었던 기억이 있다. 그때 나는 큰 잘못을 저질러 교무실로 불려 와 선생님께 혼나는 사람처럼 얼어붙어 간신히 대답했었다. 한 번 경험했던 일이었기에 이번에는 좀 더 자연스럽게 대답할 수 있으리라 예상했다. 전혀 놀랍지 않겠지만, 이번에도 역시나 회사에 면접 보러 온 신입 사원처럼 바짝 얼어붙어서 묻는 말에 겨우 대답했다. 그런 내가 애처로워 보였는지 심사관은 머지않아 나를 풀어주었다.
곧바로 짐을 찾고 핸드폰으로 이심을 켜고 셀린에게 인터넷 통화를 시도했다. 셀린은 공항 가운데에 에스컬레이터가 있으니 그걸 타고 내려오면 자기가 보일 거라고 말했다. 낯선 나라에 떨어진 나는 전쟁 통에 헤어진 엄마를 찾는 심정으로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에스컬레이터를 찾았다. 천천히 내려가는 에스컬레이터 끝에 밝은 얼굴로 나를 향해 서 있는 셀린을 발견했다. 에스컬레이터에서 내리자마자 짐을 내팽개치고 셀린을 꼭 껴안았다. 서로의 안부를 묻고 다시 한번 진한 포옹을 나눴다. 감동의 만남을 끝내고 셀린과 공항을 나왔다. 길을 건너 셀린이 차를 주차해 놓은 주차장에 가서 짐을 욱여넣었다. 이미 현지 시각으로 밤 11시가 넘었기에 우리는 예약했던 공항 근처 호텔로 갔다. 장거리 비행으로 지친 내 몸은 곧바로 깊은 잠에 빠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