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고프다 흐느끼는 뱃속 소리에 기상했다. 셀린은 여전히 자고 있었다. 어제 장거리 운전으로 아직 기운이 다 빠진 상태이리라. 지성인의 면모(?)를 갖춘 난 피곤한 셀린을 깨우는 대신 조용히 일어나 가방을 열었다. 한국에서 가져온 과자를 꺼냈다. (셀린에게 줄 한국 과자를 사면서 내 것까지 샀던 나의 생존본능에 뿌듯한 마음으로) 핸드폰을 보며 과자 한 봉지를 다 먹었다. 그래도 셀린이 일어나지 않자 침대 밖을 살금살금 빠져나와 세수하고 고대기로 앞머리도 쫙쫙 펴고 조용히 화장까지 마쳤다. 옷을 갈아입는데 드디어 셀린이 깨어났다. 마치 집에 돌아온 주인을 반기듯 눈을 반짝거리며 셀린에게 찰싹 달라붙어 밥 먹으러 나가자고 졸랐다.
셀린은 캐나다에 왔으니 캐나다 맥도날드에 가고 싶다고 말했다. 관광지의 바가지요금에 이미 놀란 이후라 나도 두말없이 좋다고 했다. (환율이 1달러당 1,400원에 육박했기에 돈 쓰는 두려움도 한몫했었음을 고백한다) 나갈 채비를 마치고 차로 가까운 맥도날드에 갔다. 메뉴판에 음식 사진이 같이 보였기에 그나마 가장 몸에 좋아(?) 보이는 아보카도 크림 치킨랩(Creamy Avocado Ranch McWrap)과 감자튀김, 그리고 콜라를 시켰다. 셀린은 햄버거, 푸틴(Poutine : 갓 튀긴 감자튀김 위에 치즈 커드와 뜨거운 그레이비소스를 얹어 먹는 캐나다의 음식이다. 푸틴을 처음으로 만들어 먹기 시작한 곳은 퀘벡 지역이며 캐나다를 대표하는 음식 중 하나로 꼽힌다. 출처-네이버 지식백과), 치킨너깃과 다이어트 콜라를 시켰다.
셀린이 먹으며 연신 굿! 굿! 을 연발하여 난 치킨랩을 먹다가 내팽개치고 한 입만 신공을 펼쳤다. 우선 푸틴을 먹어보았다. 쫀득한 치즈는 맛있었지만, 감자튀김에 있던 갈색의 소스는 조금 맹맹한 느낌이었다. 그 사이 셀린은 치킨너깃을 소스에 찍어 먹었다. 셀린이 말하길, 이 치킨너깃 소스는 세시원(Szechuan)이란 이름의 소스인데 미국인에게 정말 인기가 있는데 정작 미국 맥도날드에서는 더 이상 나오지 않는다고 했다. 오죽하면 이 소스를 캐나다에서 사 와서 비싼 값에 되파는 사람들까지 있다고도 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농담인 줄 알았다. 나중에 셀린이 사람들이 소스를 되파는 인터넷 사이트까지 보여주고 나서야 황당한 사실을 믿게 되었다) 그 말에 얼른 너깃을 하나 집어 들고 소스에 찍어 먹었다. 치킨너깃 자체는 내가 아는 그 맛이었다. 너깃의 소스는…. 내겐 그저 달고 묽은 불고기 양념 맛 같았다. 마치 소문난 맛집인 줄 알고 들어갔는데 알고 보니 그 옆집에 들어갔을 때처럼 열광해야 할 포인트를 찾지 못했다. 내가 그러거나 말거나, 셀린은 소스 팩이 하얀 바닥을 드러낼 때까지 너깃을 찍고 또 찍어 먹으며 정말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캐나다 맥도날드 세시원 소스
맥도날드를 나와 우리는 본격적으로 나이아가라 폭포를 향해 차를 몰았다. 이미 오후 세 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이었다. 폭포 근처로 갈수록 거리는 많은 사람으로 북적거렸다. 나이아가라 공원 근처를 두 바퀴나 돌았지만, 주차할 곳을 찾지 못했다. 도로에는 나이아가라 폭포 공원을 계속 맴도는 버스가 보였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호텔로 돌아가 차를 놓고 저 버스를 타고 다시 오자고 결론을 내렸다. 방향을 틀고 돌아가는 순간, 근처에 있는 카지노를 지나쳤다. 카지노 주차장에는 공간이 많이 보였다. 셀린이 시험 삼아 카지노 주차장에 주차해 보자고 했다. 은근히 떨려서 주차 후 카지노 손님인 척하고 카지노로 들어갔다가 화장실만 쓰고 바로 나왔다. 폭포로 가는 길가는 테마파크가 조성되어 있었다. 식당이며 카페, 유령의 집, 미로의 집, 거꾸로 된 집, 대관람차 등이 화려한 모습으로 길가에 쭉 들어서 있었다. 그 모든 유혹(?)을 뿌리치고 곧장 폭포로 걸어갔다.
드디어 폭포가 한눈에 보이는 지점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내려다본 폭포는 말문이 막히는 장관이었다. 우리는 몇 분 동안 물끄러미 시원한 경치를 감상했다. 잠시 후 고개를 돌려보니 폭포 바로 아래를 지나갈 수 있는 크루즈 투어 매표소가 있었다. 저 배를 꼭 타보자고 셀린을 보챘다. 매표소 앞으로 다가가니 직원이 QR 코드가 있는 푯말을 가리키며 인터넷으로 표를 예매해야 한다고 안내했다. 셀린이 핸드폰으로 스캔을 시작했다. 아무리 시도해도 승차권 예매가 되지 않았다. 인터넷이 느려졌고, 결제창까지 다다라서는 알 수 없는 에러로 멈춰버렸다. 내 핸드폰은 인터넷이 더 느려서 사이트 접근조차 어려웠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동시에 수많은 사람이 사이트에 방문하니 사이트가 다운되어서 그런 것 같다) 뙤약볕 아래에서 옷이 다 달라붙도록 땀을 줄줄 흘렸다. 다 포기하고 가고 싶었지만, 여기까지 온 노력이 아까웠다. 나는 셀린을 어르고 달래며 한 번만 더 시도해보자고 설득했다.
무려 15번의 시도 끝에 예매에 성공했다. 우리는 줄을 서서 폭포 쪽으로 내려가는 급경사에 놓인 철도를 타고 내려갔다. (사방이 투명 플라스틱으로 되어있는 철도를 나중에 검색해보았는데 강삭철도 (Funicular)라는 생소한 이름이었다) 배에 오르기 전 배 직원들이 모든 승객에게 붉은색 일회용 우비를 나눠주며 말했다. “즐거운 샤워 하세요! Enjoy your shower!” 갑판이 붉은 사람들의 물결로 가득해지자 배가 곧장 출발했다. 첫 번째 폭포와 (특히) 두 번째 폭포를 지나가며 정말 샤워하듯 물을 맞았다. 살면서 이렇게 벅찬 감정으로 물을 바라본 일이 또 있었을까.
자연의 거대한 아름다움 앞에 인간은 한없이 작아진다. 평소에 내가 겪는 감정의 소용돌이는 웅장한 폭포가 뿜어내는 물안개 한 방울보다 사소하다. 길어야 앞으로 40~50년. 나라는 보잘것없는 인간은 언젠가 이 세상에서 사라지겠지만, 폭포는 변함없이 위대한 존재 자체로 인간들에게 가르침과 감동을 주겠지. 문득 엄마가 불편해진 무릎에 보호대를 차고서라도 주말이면 산으로 떠나는 이유를 알 것 같다. 우리는 유람선 관광을 선택하길 정말 잘했다고 입을 모아 얘기했다. 단 20분의 즐거움이었지만 여기까지 온 고생이 말끔히 씻어나간 기분이었다. 어쩌면 모든 여행이 이렇지 않을까 싶다. 여행 대부분은 고생길이지만 찰나의 기쁨이 그 모든 고생을 가치 있는 순간으로 만드니 말이다.
돌아오는 길에 우리는 아이홉(IHOP, The International House of Pancakes. 아침 식사에 특화된 미국의 식당 체인점이다. 북아메리카, 남아메리카, 중동, 동남아시아, 오세아니아에도 지점이 있으며, 그 수는 1,650개에 이른다. 출처-위키백과)이라는 식당에 들러 저녁을 먹었다. 둘 다 스테이크를 시켰는데 너무 질기고 맛이 없었다. 전형적인 미국인인 셀린은 바로 종업원을 불러 항의했다. 종업원은 여기가 다들 간단한 아침을 먹으러 오는 곳이라 그렇다며 스테이크를 취소하고 다른 메뉴로 주겠다고 말했다. 셀린은 팬케이크로 다시 주문했다. 종업원이 내게도 물었는데, 누가 봐도 한국인인 나는 먹던 스테이크가 아까워 괜찮다고 말하고 고무줄보다 질긴 스테이크를 꾸역꾸역 끝까지 먹었다.
저녁을 다 먹고 호텔에 들어오니 이미 늦은 밤이었다. 어제 생활 편의 시설 사용료(amenities fee)에 분노했던 우린 애초 호텔 수영장에 들어갈 계획이었으나, 이미 수영장 이용 시간이 끝나버렸다. 복수 계획(?)이 틀어지자 큰 아쉬움을 느끼며 잠이 들었다. 때론 어리석은 인간의 사소한 감정은 자연이 만든 폭포보다 더 강력하게 인간의 마음을 지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