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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희정 Nov 12. 2022

인생의 균형 잡기

오늘도 퇴근 후 헬스장에서 운동하고 집으로 가려고 전기 스쿠터에 몸을 실었다. 요 며칠 이런저런 일로 일주일 정도 운동을 못했더니 영 몸이 무거웠다. 그래도 꾸역꾸역 버티며 운동을 마치고 샤워를 끝냈다. 헬스장을 나왔더니 시간은 어느새 7시 2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나는 스쿠터에 앉아 호주머니에서 무선 이어폰을 꺼내 귀에 꽂고는 요즘 한창 빠져있는 오디오북 ‘불편한 편의점’을 듣기 시작했다. 책은 읽어야만 하는 거라는 편견에 사로잡혀 꽤 오랫동안 오디오북에 대해 거부감이 있었는데 요즘처럼 소설을 읽을 여유조차 없을 때 이렇게 다른 일을 하면서 오디오북을 듣는 재미가 꽤 쏠쏠하다.      


물론 여전히 정보전달서는 눈으로 읽어야 머리에 더 잘 들어온다는 생각은 변함없지만 가벼운 소설을 읽을 때나, 책 읽을 시간이 없을 때, 눈이 침침할 때는 오디오북이 적절한 대안이 될 수 있겠다.

      

소설 속 이야기는 거의 마지막을 달리고 있었다. 나는 마치 드라마 속 절정의 장면을 보듯 주인공의 독백을 들으며 소설 속 장면을 상상했다. 하늘에는 보름달이 휘영청 밝게 떠 있었고, 자전거 길의 가로등만이 규칙적으로 나를 지나쳤다. 가로등이 비추는 은근한 불빛을 지날 때마다 아늑한 기운이 감돌아 내 몰입에 깊이를 더해주었다.      


그런데 그때, 갑자기 어두운 시야 속에서 알 수 없는 작은 물체가 내 이마를 때렸다. 나는 그것이 벌레임을 직감했다. 순간적으로 소름이 쫙 끼쳤다. 운전으로 바쁜 손을 이마로 가져갈 수 없었다. 나는 나도 모르게 고개를 좌우로 세차게 흔들었다.      


그와 동시에 나는 스쿠터와 함께 그대로 옆으로 쓰러졌다. 쓰러지며 경적 버튼이 눌러진 듯 스쿠터는 외마디 비명을 삐익하고 질렀다. 나는 아픔보다 창피함이 먼저 올라와 재빨리 주위를 돌아보았다. 어슴푸레한 도로 옆 자전거 길에서 쓰러진 나를 목격한 건 왼쪽 가로등과 오른쪽 돌담뿐이었다.      


소설 속 주인공 ‘독고’는 내 아픔엔 아랑곳없이 기차를 고 한강철교를 지나며 담담하게 독백을 계속 날리고 있었다. 나는 바로 정신을 수습하고 천천히 몸을 일으켜 입고 있던 옷을 탈탈 털었다. 손바닥이 쓸려 까슬까슬한 느낌이 났고 살짝 쓰라렸다. 넘어지며 부딪힌 듯 왼쪽 무릎도 시큰거렸다. 무릎을 수술해준 의사가 평생 무릎을 아끼며 살라고 했었는데 하필이면 왼쪽 무릎이라니.

      

한 발짝 떨어진 곳에 핸드폰이 내팽개쳐져 있었다. 나는 절뚝거리며 걸어가 핸드폰을 주웠다. 다행히 핸드폰은 케이스만 살짝 긁혔을 뿐 깨진 곳 없이 멀쩡했다. 나는 야속하게 제 말을 이어가는 오디오북을 껐다. 스쿠터를 확인해보니 안장은 날아갔고, 시동키 박스가 깨져서 덜렁거렸지만, 다행히 전원은 잘 들어왔다. 떨어져 나간 안장을 들어 방석처럼 스쿠터 의자 위에 얹고는 다시 출발해 간신히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오자마자 남편에게 스쿠터를 타고 오다가 넘어졌다고 말했다. 남편은 어디 다친 데는 없냐고 물었고, 나는 약간의 타박상 외엔 크게 다친 곳은 없다고 대답했다. 그가 어떻게 하다가 다쳤냐고 자세히 묻길래 나는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운전하면서 뭔가를 듣는 행위가 위험하다는 것 정도는 알기에 눈치껏 오디오북을 듣고 있었다는 부분은 제외했다)  

    

얘기를 다 들은 그는 나지막이 말했다. “원래 두발이 달린 자전거나 오토바이 같은 건 탈 때 머리로 중심을 잡는 거야. 그건데 당신이 머리를 그렇게 흔들어댔으니 당연히 균형을 잃었던 거고. 이제 알았으니 다음부터는 명심하고 중심을 잘 잡으라고.”      


참나, 가뜩이나 다친 것도 책임을 물을 곳이 없어 억울한데 일장 연설을 듣고 있자니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그냥 일진이 안 좋은 날인가 보다 하고 조용히 넘어가자고 혼잣말하며 방으로 들어가 옷을 갈아입는데 남편의 말을 천천히 곱씹을수록 이거야말로 명언이 아닌가.

     

만약 내 중심이 흔들려서 쓰러졌다는 말이 맞는다 중심을 잘 잡으면 쓰러지지 않을 수 있다는 말이 된다. 삶이란 울퉁불퉁한 길에서 두발자전거를 타고 가는 것과 같다. 어떤 사람은 좀 더 편한 스쿠터를 탈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균형을 잘 잡으며 가야 한다는 건 크게 다르지 않다.

      

어차피 인생길이란 많이 불안정한 상태와 덜 불안정한 상태의 반복이다. 많은 사람이 평탄한 삶을 꿈꾸지만 그런 삶도 관심의 돋보기로 조금만 가까이 들여다보면 허상이란 걸 알 수 있다. 그렇게 보면 내가 알 수 없는 큰 불안감과 작은 불안감의 굴레 속에 사는 건 불안정한 인생길에 있는 한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

      

그렇다고 미리 희망을 버릴 필요는 없다. 아무리 구불거리고 울퉁불퉁한 길이라고 해도 그 속에서 중심만 잘 잡으면 된다. 그리고 그 중심은 나에 대한 믿음, 그런데도 인생길을 잘 갈 수 있다는 확신이다. 그것만 확실히 잡는다면 나는 어떤 시련이 닥쳐도 가벼운 장애물을 넘듯 넘어설 수 있다. 그 과정에 설사 상처받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손의 상처와 다리의 멍 자국이 낫듯이 정신적인 회복탄력성으로 이겨낼 수 있다.

      

내일도 스쿠터를 타고 출근해야겠다. 그까짓 타박상은 내 앞길을 막을 수 없을 것이며, 스쿠터 역시 전원만 잘 들어오면 이동하는 데는 크게 문제가 없을 것이다.


그나저나 이번 주 주말에는 스쿠터를 고치러 가야겠구나...


한 줄 요약 : 중심만 잘 잡으면 쓰러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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