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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희정 Nov 14. 2022

멍의 치유에 관한 엉뚱 철학

왼쪽에 큰 동그라미 하나, 오른쪽에 그보다 작은 동그라미 두 개...      


뭘 세고 있냐고? 며칠 전 스쿠터를 타다 넘어진 날 생긴 양쪽 허벅지 멍 개수이다. (양쪽이 다 멍든 이유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코흘리개 꼬마도 아닌데 정말 오랜만에 다리에 자줏빛과 시퍼런 빛이 울긋불긋 올라온 걸 보면 내 다리에도 가을 단풍이 떨어졌나 보다.   

   

그래도 무릎이 크게 안 다친 게 어디냐. 무릎이 다쳤다면 운동을 쉬었을 테고, 운동을 못하면 바로 살이 찔 테고, 살이 찌면 건강이 다시 나빠질 테고, 건강이 나빠지면 마음이 우울해질 것이다. 무릎을 다쳤다는 상상만으로도 금세 끔찍한 확증편향이 일어나니 이 정도로 다친 것만으로도 갑자기 감사가 넘쳐흐른다.      


게다가 넘어졌다고 말했지만, 너무 멀쩡해서 가족들에게 증명할 길이 없었는데 다음날 검붉게 물든 다리 덕분에 확실한 증거를 보여줄 수 있었고, 살짝 아픈 척하니 가족들이 괜찮냐며 관심까지 주었으니 이것이야말로 일타쌍피 효과다. 그런 마음으로 다리를 보니 더 이상 멍 자국이 그리 속상하지 않았다. 오히려 조금씩 색이 옅어지는 멍이 아쉬워 자꾸만 다리를 보게 되었다.


그렇게 3일 전부터, 나의 멍 자국 관찰이 시작되었다. 처음 금방이라도 피가 튀어나올 듯 검붉게 진했던 색은 치열한 전투를 하며 점점 영토를 넓히듯 색이 확장되었고, 동시에 농도는 조금씩 옅어지고 있었다.

     

그런데 사흘째가 되자 왼쪽 다리에 흥미로운 현상이 관찰되었다. 오른쪽의 작은 원은 전체적으로 색이 흐려졌는데, 왼쪽 가장 큰 원은 균등하게 낫는 게 아니라 한가운데부터 다시 하얀 피부색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모양이 그렇게 변하자 이번에는 어릴 적 배웠던 태양계의 행성인 토성 주위를 둘러싼 아름다운 고리처럼 신비롭게 보였다. 나의 다리는 이제 은하계의 행성도 품었구나.


전체적으로 조금씩 낫는 게 아니라 가운데부터 낫는 게 참 희한했다. 그렇지만 멍 자체는 더 넓게 퍼져서 언뜻 보면 처음 멍이 생긴 날보다 오히려 더 많이 다친 것처럼 보였다. 그런 다리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멍이 낫는 과정과 삶을 변화시키는 과정이 참 비슷한 면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내 인생을 바꾸고 싶다면 제일 먼저 할 일은 인생의 중심인 내가 먼저 변해야 한다. 그리고 그 시작은 나의 색, 즉 성향을 바꾸는 일이다. 현실에 안주하고 변화를 싫어하는 성향을 보다 개방적이고, 진취적이며, 도전적으로 변화시켜야 한다.


그러나 내가 당장 성향을 바꾸겠다고 마음먹고 자신에게 선언한다고 해도 곧바로 내 현실이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 여전히 나의 선언은 소용없는 허공의 메아리 같으며 나의 오늘은 침울한 절망으로 둘러싸여 있고, 미래는 영원히 암울할 것만 같다. 타고난 성향을 바꾸는 건 불가능하고 설사 시도하더라도 계란으로 바위를 치듯 여전히 무모하고, 힘들고, 덧없어 보인다.

      

탈피의 과정은 하루 또는 한 달 만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몇 달이 걸릴 수도 있고, 몇 년이 걸릴 수도 있다. 때로 어떤 변화는 오히려 사태를 악화시키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자아 변화의 과정을 해낸다면 결국 멍 자국의 색이 가운데부터 엷어지듯 희망 없는 삶도 나에게서 조금씩 멀어질 수 있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나를 능동적으로 발전하는 사람으로 만드는 건 나를 치유하는 과정과도 같다. 그러니 영혼의 등불을 켜자.  나를 중심으로 주변 사람들까지 밝혀주는 빛이 되자. 가족, 친구, 동료에게 밝은 기운을 퍼트리자.


내 주변의 영혼들의 치유 과정에도 도움을 준다면 결국 그것이야말로 내 인생을 더욱 발전시키는 길이다. 설사 그 과정에서 나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변화의 의지 없이 한결같이 자신의 현실만을 원망하며 불평불만을 말하는 사람이 있더라도 죄책감을 느낄 필요는 없다.


결국 변화는 스스로 해야 하는 거니까...


한 줄 요약 : 나부터 변해야 삶이 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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