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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희정 Nov 06. 2022

가방은 사랑을 타고.

내게 새 가방이 생겼다.


이야기는 이러하다. 나는 물건에 돈 쓰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특히 가방이나 옷 같은 생활용품을 사는 걸 아까워한다. 사실 친구들 사이에선 예전부터 꽤 유명한 짠순이로 통했다. 돈을 전혀 안 쓰는 것은 아니지만 한 친구의 말대로 평생을 소처럼 일만 해온 내가 힘들게 번 돈을 일상생활에 쓰는 물건과 바꾸는 게 아깝게 느껴졌다.


그래서 몇 달 전 해어진 가방을 대신할 새 가방이 필요한 상황이 오자 인터넷으로 2만 5천 원짜리 저렴한 인조가죽 가방을 구입해서 들고 다녔는데 얼마 전 그 가방끈이 끊어져 버렸다. 싼 게 비지떡이라더니 옛말 하나 그른 게 없다. 몇만 원 아껴보려다가 버려야 할 환경 쓰레기만 하나 더 늘렸다.


그게 시작이었다. 인터넷 쇼핑몰을 떠돌며 정처 없이 가방을 찾아 떠난 게. 사람의 마음이란 참 변덕스럽다. 처음 저렴한 가방을 찾기 시작하다가 30~40만 원짜리 브랜드 가방을 보고, 어느새 프라다 가방을 보고 있던 나를 발견한 건 가방을 검색하기 시작하고 일주일이 지난 시점이었다. 그러나 내 월급과 맞먹는 그런 비싼 가방을 쉽게 살 수는 없었다.


이번에는 당근 마켓을 구경하기 시작했다. 마치 무언가에 중독된 사람처럼 눈뜬 후 시간 날 때마다 가방 구경을 하다가 마침내 당근에서 2개의 가방을 점찍었다. 오랜 시간 투자한 만큼 신중하게 결정하고 싶어 2개의 가방 링크를 친구들 단톡방과 내 동생들에게 전송하고 의견을 물었다. 그러자 친구들은 둘 중 하나를 골라달라는 내 물음에는 응답하지 않고 이번에는 제발 그냥 새 가방을 하나 사자고 말했다.


그날부터 다음 날까지 이틀 동안이나 단톡방 최대의 이슈는 내 새 가방을 찾아주기였다. 친구들은 나 대신 인터넷으로 가방을 찾아보고 선거 유세하듯 자신들이 선택한 가방에 대한 설명과 함께 후보를 보여주었다. 나의 평소 취향을 고려하여 비싼 명품은 피하고 주로 중저가의 가방을 보여주었다. 나는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선택하기를 머뭇거렸다.


그러자 마침내 부산에 사는 한 친구가 말했다. "정말 중고를 살 거면 차라리 내가 예전에 쓰던 가방을 줄까? 네가 좋아하는 큰 사이즈에 편하게 맬 수 있는 쇼퍼백이야." 나는 곧바로 고맙다고 말하고 택배로 보내달라고 부탁했다. 다른 친구들은 이틀 동안 자신들의 노력이 수포가 되자 허망해했지만 나는 더 이상 가방에 신경을 쓸 필요가 없게 되어 신이 났다.


그리고 얼마 후 택배로 그 가방을 받았다. 나는 가방을 친구에게서 득템 했다고 직장 사람들과 동생들에게도 보여주며 자랑했다. 비록 쓰던 가방이지만 기꺼이 내게 보내 준 친구의 마음이 참 고마웠다.


그로부터 며칠이 지난 어느 날 퇴근 무렵 막냇동생이 우리 집에 왔다며 전화했다. "언니 오늘은 퇴근하자마자 집에 곧장 와. 나 할 말이 있어." 나는 동생에게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닌지 걱정스러운 마음에 서둘러 집으로 돌아왔다. 동생은 그런 나를 보자마자 커다란 상자를 하나 내밀며 뜯어보라고 했다.


상자 속에는 비닐에 쌓여있는 가방이 있었다. 텍이 그대로 붙어있는 새 가방이었다. "언니가 하도 가방을 안 사서 내가 언니 주려고 하나 샀어." 나는 동생의 갑작스러운 선물을 받고 쑥스러워서 뭐 이런 걸 돈 주고 샀냐고 핀잔하듯 말했다. 동생은 그런 내 말은 귓등으로 들으며 내가 들고 다니는 가방의 물건을 전부 꺼내 자신이 선물한 새 가방으로 옮겨 넣으며 말했다.


"내가 이렇게 해야 언니가 가방을 쓸 테니까."


그렇게 나는 새 가방을 식구로 맞이했다. 지금 내 옆에 있는 가방 속에는 처음 동생이 넣어둔 내 물건들이 그대로 위치를 고수하며 옹기종기 모여있다. 가방 하나로 나는 친구의 우정과 가족의 사랑을 한꺼번에 받아 누구도 부럽지 않은 사람이 되었다. 그냥 예쁘거나 비싸서 산 물건이 아닌 이런 물건이야말로 내게 진정 값지고 귀한 가치가 있다. 이런 물건에는 향기로운 사람 냄새가 난다.


시간은 또 흘러 며칠이 지났다. 낮에 일하고 있는데 단톡방에 내게 가방을 보내줬던 친구가 홈쇼핑에서 빨간색 숄더백이 나왔는데 살까 말까 고민이 된다며 사진을 올렸다. 어딘가 매우 낯익어 보이는 가방이었다. 나는 가방을 확대해 자세히 보았다. 옛날에 엄마와 백화점에 갔을 때 나이 들면 때와 장소에 따라 작은 가방도 하다 필요하다는 엄마의 말에 솔깃해서 샀었지만 한 번도 안 쓴 내 빨간색 숄더백과 거의 비슷한 색과 모양이었다.


나는 망설임 없이 친구에게 내게 비슷한 것이 있으니 택배로 보내주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 옷장 안쪽에서 숄더백을 꺼냈다. 가방은 버클에 붙어있던 비닐도 다 떼지 않은 상태였다. 예쁜 가방인데 주인을 잘못 만난 것뿐이다. 이제 너를 정말로 소중하게 생각해줄 사람에게 보내주겠다고 생각하며 뽁뽁이로 둘둘 감싸고 상자에 넣어 곧장 편의점에 가서 택배로 부쳤다.


사흘 뒤 가방을 받은 친구는 그 가방을 메고 외출했다며 사진을 찍어 보여주며 말했다. "아깝지 않아? ㅋㅋ" 나는 한껏 흐뭇해져 친구에게 주는 건데 뭐가 아깝냐고 답했다. 그 친구도 나처럼 그 가방으로 잠시나마 호의를 느끼기를, 그래서 가방을 들 때마다 기분 좋게 미소 지을 수 있기를 바랐다.


한 줄 요약 : 가방은 사랑을 타고와서 내 품에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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