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안희정 Nov 06. 2022

양육이란 양쪽의 성장이다.

기나긴 하루였다. 몸도 마음도 오늘따라 유난히 지쳐 있었다. 목이 살짝 붓고, 몸도 무거운 상태로 계속 일했다. 예전에는 몸살 기운이 살짝만 있어도 타이레놀로 널리 알려진 해열진통제인 아세트아미노펜을 먹었었다. 부작용이 거의 없고 효과가 빨랐기 때문이다. 그러던 내가 약을 잘 먹지 않게 된 데는 특별한 계기가 있었다.


출산 후 갑자기 불은 살을 빼기 위해 무리하게 운동하다가 왼쪽 무릎을 다쳤고, 곧 좋아지리라는 어리석은 기대로 6개월간 타이레놀을 먹으며 버텼다. 나중에는 무릎이 심하게 부어서 주사기로 무릎에 물을 빼고, 스테로이드 주사를 맞을 정도로 증상이 심해졌다. 그러던 어느 날 운동 중 무릎 안에 뭔가 퍽하고 끊어지는 느낌이 있어 병원에서 CT 검사를 받았다. 결과는 전방 십자인대 파열이었다. 결국 인대를 다시 연결하는 수술을 받았다. (이런 걸 보면 나는 무던함을 넘어 미련한 면이 있다는 걸 인정한다)


그 이후 진통제를 먹는 것이 꺼려지기 시작했다. 진통제만 먹다가 또다시 병을 크게 키우고 싶지 않았다. 그러던 중 몇 년 전 읽은 책 '오래도록 젊음을 유지하고 건강하게 죽는 법'에서 우리가 흔히 먹는 항염증제조차 소장과 대장의 점막층을 손상해 다시 염증을 유발한다는 글을 보고 단순 진통제나 비스테로이드성 항염증제뿐만 아니라 무슨 약이 든 일단 먹고 보는 버릇을 없앴다.


대신 나는 아프면 최대한 휴식하려고 한다. 특히 오늘같이 힘든 날 제일 효과적인 치료제는 사랑하는 아이를 껴안고 빨리 자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녁을 대충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딸에게 샤워하라고 말하며 화장실로 밀어 넣은 후 자려고 준비했다. 그리고 소파에 앉아 핸드폰을 보는데 몇 분 지나지 않아 딸이 다 씻었다고 나를 불렀다. 나는 축축하게 젖은 딸의 머리를 드라이기로 말려주었다. 머리가 많이 자라 이제는 허리까지 내려올 참이었다. 딸에게 너무 기니까 조금만 자르자고 했지만 절대 싫다고 요지부동이었다.


요즘 따라 딸은 싫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1. 나 : "저녁 먹기 전에 씻어"

    딸 : "싫어. 이따가 할 거야"

2. 나 : "영어 숙제 미리 하자."  

    딸 : "싫어, 일요일에 할 거야."

3. 나 : "이 책 재밌을 것 같은데 한 번 봐봐."

    딸 : "싫어. 재미없어 보여."

4. 나 : "우리 심심한데, 요 앞에 산책하러 나가자."

    딸 : "싫어.  나가."


대부분의 대화가 이러하니, 이대로 계속 가다가는 딸의 사춘기에 옮아 나도 반항기 넘치는 사십춘기를 다시 앓을 지경이다. 그래도 지금처럼 머리를 말려달라고 보챌 때는 여전히 영락없는 철부지 같아 보였다. 내 눈에는 앞으로도 영원히 아이로 보이겠지..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며 머리를 보송보송하게 말려주었다.


방으로 들어가 아이 몸에 로션을 발라주고 옷장에서 새 내복을 꺼내 입으라고 건네주었다. 시계는 이제 겨우 8시 45분을 가리키고 있었지만 이미 반쯤 감긴 눈꺼풀은 대한민국 역도 사상 최고의 기록을 세운 메달리스트 장미란이 와도 못 들어 올릴 정도였다. 바로 딸에게 오늘은 엄마가 좀 피곤하니 일찍 자자고 말했다. 딸은 예상대로 처음에는 싫다고 말했지만 내 단호한 말투와 금방이라도 폭발할 듯한 짜증스러운 표정을 살피더니 곧 체념하고 내 옆에 누웠다.


평소처럼 팔베개해주려고 팔을 쭈욱 뻗으며 이쪽으로 오라고 했는데 딸이 대답했다. "싫어. 오늘은 팔베개 안 하고 혼자 잘 야." 그 말에 순간 가슴이 휑뎅그렁 해졌다. 곧게 뻗은 팔은 접혔고 서운함은 확 펼쳐졌다.


나 : "그래? 그럼 이제 방에서 혼자 잘 수도 있겠네?"

딸 : "아니 그건 싫어. 완전히 혼자 자는 건 무서워. 그냥 이렇게 옆에서 혼자 잘 야."


언제까지나 엄마만 찾을 것 같았던 아이가 처음으로 내 팔베개를 거부하고 늘 인형처럼 안고 자던 베개를 머리에 베었다. 갑자기 아이가 훌쩍 자란 것처럼 보였다. 아니다. 아이는 계속 성장하고 있었는데 미처 발견하지 못했거나 무의식적으로 외면하고 살았을 수도 있다. 싫다는 말을 자주 하는 것 역시 자신만의 생각이 자라고 있다는 뜻이다.


양육의 궁극적인 목적은 자식을 혼자 설 수 있는 독립체로 만드는 일이라는 말을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는데 그렇다면 엄마의 품을 벗어나 혼자서 베개를 베고 자기 시작한 딸은 지극히 잘 성장하고 있는 것이리라. 그런 과정에서 엄마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언제가 모든 일을 스스로 할 수 있을 때까지 옆에서 믿음으로 지켜보는 일이겠지.


그러니 너무 허전해할 필요도, 섭섭해할 필요도 없다. 오히려 잘 자라고 있는 딸을 대견한 눈으로 바라봐야 한다. 그렇게 하지 못한다면 훗날 딸이 자라서 실제 독립할 시기가 찾아왔을 때 빈 둥지 증후군에 빠져 헤어나오기 힘들어질 테니까. 지금부터라도 조금씩 마음의 준비를 해야겠다. 오늘은 한 뼘만큼의 공간이지만 점점 더 벌어질 거리를 가늠하니 마음 한구석이 다시 저려온다.


양육이란 말은 어쩌면 단순히 아이를 기르는 것만이 아닌 양쪽을 다 키우는 것, 즉 아이와 부모를 같이 성장시킨다는 뜻은 아닐까. 부모가 아이의 거울이라면 거울이 빛을 반사해 앞에 선 물체를 비추듯 부모와 아이는 서로를 비추는 존재라는 말 역시 성립된다. 그렇다면 아이의 성장 속도에 맞춰서 나도 성숙한 엄마가 되어가야겠다. 아이가 나의 분신이 아닌 독립된 영혼임을 인지하고 인정하고 수용하는 일, 나 역시 아이만 바라보는 정신적 의존을 넘어서 내 삶을 돌보는 일, 그것이 부모로서 나의 소임이다. 각자의 홀로서기 과정이 절대 쉽지만은 않겠지만 그래도 우리는 한 뼘만큼의 마음의 거리에서 누구보다 서로를 사랑하고 응원할 것이다.


혼자서 자겠다던 딸은 금세 새근새근 잠들어 내 품을 다시 파고들었다. 나는 그런 딸의 얼굴 그윽한 눈으로 한동안 바라보다 그대로 잠이 들었다.  


한 줄 요약 : 양육이란 부모와 아이 양쪽을 성장시키는 것, 아이를 기르듯 자신도 성장시키자.
작가의 이전글 깜빡거리며 눈감는 시간의 중요성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