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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희정 Oct 30. 2022

깜빡거리며 눈감는 시간의 중요성

또 시작이었다.

정확히 언제부터였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종종 눈이 뻑뻑하고 따가워 눈물이 났다. 시도 때도 없이 올라오는 증상이 불편하기 그지없어 괜한 짜증과 설움이 올라왔다. 일하는 중간, 양파를 썰고 있을 때처럼 눈이 쓰라려 혹시 먼지라도 들어갔나 싶어 휴지로 눈을 눌러 닦았다. 처음 이 증상이 시작했을 때만 해도 어쩌다 한 번씩 그랬는데 조금씩 심해지더니 요즘은 매일 그랬다. 어떨 때는 형광등 불빛이 뿌옇게 번져 보이는 증상도 겹쳤다. 요즘 일이 바쁜 시기라 모니터 보는 시간이 늘어난 데다 글을 쓴답시고 개인적으로도 핸드폰과 컴퓨터를 보는 시간까지 늘어난 탓인 것 같았다. 당장 눈의 피로도를 줄이기 위해 인터넷으로 블루라이트 차단 안경을 검색해서 하나 구입했다.


나는 원래 시력이 좋다. 어렸을 때는 시력이 양쪽 다 1.5, 1.5를 가뿐히 넘었으며, 지금도 1.0~1.2 정도는 된다. 평생 안경 쓸 일이 없을 줄 알았는데 현대 문명의 혜택이 주는 폐해를 그대로 받아 팔자에도 없는 안경을 쓰게 되었다. 시력이 좋은 사람은 막연한 호기심과 안경이 주는 똑똑한 이미지가 부러워 한두 번쯤은 안경을 쓰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나도 어릴 적 철없이 그런 소원을 빌었던 적이 있었는데 30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그 염원이 이루어졌다. 문제는 더 이상 내가 그걸 원치 않는다는 거지만.   


안경을 쓰고 출근했더니 원래부터 눈이 나빴냐고 묻는 사람부터 이제 노안이 온 거라고 덕담(?)을 해주는 사람까지 직장에서 높은 관심을 한 몸에 받았다. 나는 괜히 으쓱해져 안경을 손으로 연신 추켜올리며 일했다. 그런데 오전 내내 안경을 쓰고 일했는데도 눈이 또 따가워졌다. 바로 좋아지긴 힘들겠다고 생각하며 잠시 눈을 감고 흐르는 눈물을 닦았다.


퇴근 후 집에 들어와서도 계속 안경을 쓰고 있었더니 남편이 들어와 그 모습을 보고 웬 안경이냐고 물었다. 나는 요 며칠간 내 눈에 벌어졌던 증상을 설명했다. 그러자 그가 말했다. "그거 안구건조증이네. 화면 보는 시간이 늘어나서 눈에 무리가 온 거야. 그럴 때는 인공눈물을 좀 떨어뜨려 봐. 아, 그리고 핸드폰이든 모니터든 집중해서 오래 볼 때 눈을 많이 안 깜빡거리면 그럴 수 있어. 계속되면 그냥 아프다고만 하지 말고 안과에 좀 가보라고."


안구건조증이라니... 듣고 보니 그럴듯했다. 다음 날 안경 너머로 모니터를 볼 때마다 의식적으로 한 번씩 눈을 깜빡거리기 시작했다. 세상에나... 이번에는 효과가 바로 나타났다. 눈 따가움 증상과 피로도가 훨씬 좋아졌다. 블루라이트 차단 안경도 도움이 되었겠지만 정말 남편의 말대로 내가 집중하는 동안 눈을 안 깜빡거린 것임이 증명된 것이다. 너무나 단순한 해결 방법에 잠시 어이가 없었다.


우리가 실제로 부딪치는 대부분의 문제 역시 이럴 것이다. 해결의 실마리는 미처 생각지 못했던 작은 곳에서 잡을 수도 있다. 문제를 크게 만들어 과대하게 포장하는 것도, 그 앞에서 좌절하는 것도 언제나 자신이다. 타인의 문제에 대해서 객관적인 조언을 해줄 수 있는 사람조차 자신의 문제에 대해서는 그러지 못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그건 바로 문제와 너무 가까이 붙어 있거나 문제에 들어가 있어 남에 대해 조언한 것처럼 객관화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럴 때는 잠시라도 문제와 정신적인 거리를 만들어보는 게 좋겠다. 노래를 부를 때 1절과 2절 사이의 간주 구간이 있듯이, 긴 문장을 몰아서 읽는 게 아니라 쉼표를 찍어 잠깐의 숨을 돌리듯이, 무언가를 몰두해서 볼 때 눈을 보호하기 위해 정기적으로 눈을 깜빡이듯이, 그렇게 때론 찰나의 멈춤이 필요하다. 오죽하면 우리가 스트레스를 피하고자 실천하는 명상에서조차 그 첫걸음이 호흡하며 자신의 호흡을 인지하는 것이겠는가. 이 역시 숨 고르기를 하며 이 순간 살아있음을 느끼고 마음을 고요하게 가다듬으라는 말처럼 들린다.


어찌 보면 요즘처럼 일 속에 파묻혀 사는 시기에 내게 가장 필요한 일이 바로 이 잠깐의 숨돌림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당장 휴가를 낼 수도 없고, 일하기 싫다고 아무런 계획도 없이 충동적으로 퇴사를 할 수도 없으니 지금의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은 스트레스가 극한에 달하기 전 잠깐씩 휴식하고 점점 커지는 초조와 불안을 잘 누그러뜨리는 일이다.


그렇게 되면 졸졸 흐르는 맑은 시냇물에 가만히 발을 담그고 있을 때 발에 덕지덕지 붙어있던 모래가 깨끗이 씻겨 내려가듯 내 불안정한 마음도 조금씩 떠나가겠지. 힘들다는 생각에 갇혀 우울해하기보다 그저 잠깐의 이 더 필요했음을 나는 지금도 일부러 눈을 깜빡거리고 모니터를 바라보며 생각한다.


한 줄 요약 : 힘들 때는 잠깐 멈추고 한숨을 돌리며 휴식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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