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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희정 Nov 21. 2022

단짝이 없는 아이. 문제일까?(2)

조카는 사실 어린이집 시절부터 소문난 개구쟁이였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말했다.

"물론 욕을 하는 건 매우 나쁜 행동이지. 그런데 혹시 그 아이가 욕을 하기 전 네가 먼저 장난을 친 건 아니었니? 그렇다면 그 친구만의 잘못이라고 할 수는 없어. 친구의 마음이 상할 정도로 심한 장난을 쳐서는 안 돼. 그래도 여전히 욕은 잘못된 행동이야. 그러니까 만약 친구가 욕을 한다면 그 친구에게 분명하게 그런 말은 안 좋은 거라고 하고 선생님께도 얘기해. 알았지? 너에게 함부로 욕을 하는 애와 꼭 친구 할 필요는 없어. 같은 교실이나 같은 학교에 있다고 다 친구가 될 수는 없거든. 진짜 친구는 한두 명만 있어도 충분해 "


조카는 네라고 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내내 옆에서 같이 듣고 있던 딸은 "엄마 그런데 이거 우리끼리의 비밀이니까. 아무한테도 말하지 마. 이모한테도. 약속해야 해.”라고 말했다. 나는 알았다고 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쨌든 동생에게는 비밀을 지켰다) 늘 말썽만 피울 줄 아는 녀석이라고 생각했는데 1년 전 일이 여전히 기억날 정도로 상처받은 조카를 보며 마음이 심란했다. 하긴 어른들조차 끊임없이 인간관계로 고통받는데 하물며 이제 막 나무에서 자라난 여리디 여린 새순 같은 9살 소년의 마음에 생긴 상처가 쉽게 치유될 수는 없을 것이다.  


게다가 그 시절에는 학교만이 내 세계의 전부이고, 친구는 학교라는 공간에서 전부 같은 존재가 아닌가. 나는 제대로 된 조언을 해주지 못한 것 같아 방을 나왔다가 다시 들어가서 조카에게 혹시 또 말하고 싶은 비밀이 있으면 언제든지 내게 전화하라고 말했다. 몇 시간 후 동생과 조카는 집으로 돌아갔고, 나는 그날 밤 조카 걱정을 하며 잠이 들었다.


다음 날 문득 딸은 조카의 일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궁금해졌다. 거실에서 TV를 보고 있던 딸에게 다가가 어제 내가 방에 들어가기 전 조카에게 뭐라고 했는지 물었다.

“아, 나는 그랬어. 만약 친구가 너한테 욕을 했으면 너도 똑같이 욕해. 그리고 선생님께 가서 말해. 그러면 친구랑 네가 둘 다 혼날 수는 있겠지만 적어도 사이다처럼 시원해지기는 할 거야라고 했는데?”

기막히게 개운한 해결책을 제시한 딸의 답에 나는 그만 웃고 말았다. 딸이라면 적어도 다른 아이에게 상처받을까 봐 할 말을 못 하지는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아이들이 살아갈 나날 중에는 친구라는 이름으로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이 무수히 많을 것이다. 그리고 그중에는 허울만 친구인 가짜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런 이들은 나를 진심으로 위하는 사람이 아니다. 혼자가 싫어 그런 사람과 친구가 된다면 남는 건 상처뿐이다.


학교는 일종의 파일럿 프로그램과 같다. 그 안에는 모든 미숙한 시도와 서툰 감정의 교류가 일어난다. 일련의 경험은 성인이 되기 전 자아정체성 확립을 위한 좋은 예행연습이 된다. 그리고 나에게 해를 끼치는 사람, 거리를 두어야 할 사람을 구별할 수 있는 판단력을 형성시키는 데도 일조한다. 실패로부터 성공을 배울 수 있듯이 가짜 친구와의 나쁜 경험은 진실로 나를 이해하고, 신경 써주고, 믿어주며, 사랑하는 친구가 어떤 존재인지 배울 수 있게 한다. 학교에서 경험을 바탕으로 아이는 훗날 성인이 된 후에 자신의 인생을 위해 어떤 사람과 더 많은 시간을 나누며 살아야 하는지를 알게 된다.


나는 내 딸과 조카가 언젠가 자신을 소중하게 생각해 줄 진짜 친구를 만들기 바란다. 그리고 자신 역시 친구를 존중할 줄 아는 괜찮은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둘은 이미 그 과정을 밟는 중이다. 그때까지는 반 친구들과 두루두루 잘 지내면 된다. 나는 더 이상 딸에게 단짝이 없다고 성급하게 무언가를 시도하지 않으려고 한다. 좋은 친구는 스스로 만드는 거다. 그러려면 먼저 좋은 친구가 되어야겠지만.


한 줄 요약 : 단짝이 없어도 괜찮다. 때가 되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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