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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희정 Nov 25. 2022

동네 마트의 VIP 고객이 된 사연

몇 주 전 무선 이어폰을 잃어버렸다가 다음날 동네 마트에서 찾았던 일이 있었다. 그때 계산대에서 흘린 내 이어폰을 잘 보관해 준 계산원 덕택에 나는 무사히 이어폰을 찾을 수 있었다. 이후 나는 그녀에게 보답하고 싶다는 마음을 줄곧 품고 있었다. 그 마음에 응답하고자 얼마 전 퇴근길에 빵집에 들러 빵을 사면서 그녀에게 줄 작은 조각 케이크 하나를 같이 샀다.


어떻게 케이크를 전달할지 즐겁게 상상하며 마트에 들렀는데, 아뿔싸... 그날따라 그녀가 계산대에서 보이지 않았다. 간단하게 장을 보고 나오며 다른 계산원에게 그녀에 해 물으니 상을 당해 오늘은 쉰다고 말했다. 순간 대신 전해 달라고 부탁할까 하다가 장례는 보통 최소 3일이 걸리니 다음날도 출근할 것 같지 않아 아쉬운 마음과 함께 케이크를 그대로 가지고 집으로 돌아왔다. 딸은 그런 내 속도 모르고 오늘은 웬일로 케이크까지 사 왔냐며 좋아했다.


그리고 또 한 주가 흘렀다. 그날도 마트에 장을 볼 일이 있어 퇴근길에 들렀더니 이번에는 그녀가 자기 계산대 자리에서 하고 있었다. 나는 그녀를 스쳐 지나가 마트 안으로 들어가며 생각했다. ‘오는 길에 뭐라도 하나 사 올걸. 아니야 벌써 여러 날이 지났는데 제 와서 새삼 뭘 주는 게 늦은 것 같아. 그래도 보답하고 싶은데... 아, 그러고 보니... 이곳은 마트니까 여기서 하나 골라서 주면 되겠다. 그런데 여기 일하는 사람에게 마트 물건을 주는 게 너무 성의 없어 보이는 건 아닐까? 그렇지만 이대로 지나가면 두고두고 후회될 것 같아.’


그렇게 나 자신과 대화하며 마트 내부를 빙빙 돌아다녔다. 몇 분 후 나는 음료 진열대에서 1리터짜리 오렌지주스를 하나 골랐다. 예쁜 케이크에 비하면 아주 볼품없고 초라해 보여 잠시 망설였지만 그래도 오늘은 그냥 이대로 넘어가고 싶지 않았다. 곧이어 집에 가져갈 고기며 두부 등 나머지 식재료를 바구니에 같이 담고 계산대로 갔다. 오늘따라 계산대 앞에는  사람이나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평소 계산대에는  사람이 계산을 보는데 그녀 혼자 일하고 있는 걸로 미루어 오늘은 다른 계산원이 쉬는 날인듯했다.


이윽고 내 차례가 되어 나는 간단한 인사를 하며 물건을 계산대 위에 올렸고, 그녀는 물건을 하나씩 들어 바코드를 찍은 후 내게 가격을 말해주었다. 나는 접이식 장바구니를 펼쳐 주스와 그 외 것들을 하나씩 넣고 카드를 꺼내 그녀에게 건넸다. 그러자 그녀가 먼저 나를 알아보며 말했다. “아, 그때 이어폰 잃어버렸던 분이시네요. 맞지요?” 그녀가 나를 기억해주니 더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때는 고마웠다고 다시 한번 인사를 했다.


계산을 끝내고 내 뒤에 있던 사람이 계산을 마칠 때까지 나는 잠시 멀뚱거리고 서서 기다렸다. 그리고 장바구니에서 오렌지주스를 다시 꺼내서 어색한 손으로 그녀에게 내밀며 말했다. “저... 이거 지난번에 이어폰 찾아주셔서... 감사했습니다... 드리고 싶어서 샀어요...” 얼굴은 달아오르고 말은 부자연스럽게 흘러나왔다. 오렌지주스를 내려다보는 그녀의 눈썹이 위로 치켜 올라가고 눈은 크게 확장되었다.


그녀가. 활짝 웃으며 말했다. “어머 이런 걸다. 고맙습니다. 잘 마실게요. 정말 감사합니다.” 나는 너무 쑥스러워서 고개를 한 번 더 꾸벅 숙이고 그 자리를 도망치듯 떠났다. 누군가로부터 마음이 담긴 감사 인사를 받는 건 사소한 좋은 행동 하나로 큰 상을 받는 기분과 같다. 수줍지만 기쁜, 평소에는 친하지 않았던 두 감정이 함께 만나서 춤을 춘다. 나는 망설임을 딛고 그녀를 위해 작은 선의의 행동을 한  자신에게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누군가에게 친절을 베풀 때마다 내가 조금 더 좋은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타인에게 친절해야 하는 진짜 이유가 아닐까 싶다. 내가 베푼 친절이 다 나에게 돌아오는 것은 아니지만 그 행위 자체만으로도 자신에게 충분한 보상이 된다. 아울러 누군가에게 친절을 받았을 때도 감사한 마음이 샘솟아 나 역시 다른 누군가에게 친절해지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이것이야말로 호혜적 관계를 넓힐 방법이라고 할 수 있겠다.


다만 한 가지 잊어선 안 될 점은 친절을 베풀 때 대가를 바라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단지 친절을 베푼 행위 자체와 그로 인해 발생하는 기분 좋은 감정만을 보상으로 생각해야지 내가 이렇게 해주었으니 상대는 반드시 나를 고마워해야 한다던가, 상대에게 실적인 보상을 바란다면 아무것도 받지 않았을 때의 실망은 곧 좌절감으로 발전된다. 요컨대 친절은 결과를 기대하지 않고 해야 하는 행위여야 한다. 좋은 결과가 나오면 좋고, 그렇지 않더라도 자신이 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었다고 생각하며 만족하자.


그날 이후 나는 마트에서 물건을 사고 계산할 때마다 그녀의 눈부신 함박웃음을 선물 받는다. 어제는 그녀에게 이런 말을 들었다. “오셨어요? 포인트 적립할 핸드폰 번호 불러주세요. 아. 안희정 님. 제가 이름을 잘 못 외워서 자꾸 까먹네요. 다음에 오실 때는 꼭 이름을 외울게요. ㅎㅎ” 나는 손사래를 치며 굳이 외우지 않으셔도 된다고 말했다. 그녀는 그런 내게 또 와달라는 말로 화답했다.


이렇게 나는 마트에 갈 때마다 최고의 미소를 선물 받는 VIP 고객이 되었다.


한 줄 요약 : 남에게 친절을 베풀자. 그러면 더 행복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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