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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희정 Feb 12. 2023

행복한 매개자

얼마 전 친구 A의 딸이 미국에 있는 한 대학에서 합격통지를 받았다. 그간에 고3 딸을 둔 A의 근심을 들어왔던 터라(자식이 공부를 잘하든 못하든 부모의 근심은 사라질 날이 없으며, 더군다나 영특한 아이를 가진 부모의 복에는 무거운 책임이 따른다) 장학금까지 받기로 하며 대학에 붙었다는 A의 딸 소식에 나는 진심으로 축하 인사를 건넸다.    

  

그로부터 며칠 뒤, A는 딸이 대학에 입학하는 8월 전까지 아르바이트로 아이들을 가르치는 영어 과외를 해보고 싶어 한다며 요즘 과외 시세를 물었다. 정말이지 공부도 잘하는 데다 성정도 나무랄 데가 없는 아이다. 자신의 힘으로 돈을 벌어보려는 친구 딸의 마음이 기특하여 무엇이든 도와주고 싶었다. 그러나 나는 이미 우리 딸을 학교 근처 아파트에 있는 영어 공부방에 보내며 공부시키고 있었기에 그룹으로 하는 공부방 시세 정도만 알려주었고, 일대일 과외는 잘 모르겠다고 답했다.      


그날 저녁 대학 친구 B가 초등학교 5학년이 되는 조카가 영어 학원에서 학원 선생님의 권유로 갑자기 한 단계 높은 등급의 반으로 월반하게 되었다며 이에 따라 딸이 새로운 반에 적응을 못 할까 봐 자기 동생이 실력 있고 괜찮은 과외 선생님을 찾는데 혹시 아는 사람이 있느냐고 물었다. 나는 즉시 A의 딸을 떠올렸다. A와 B에게 양쪽 상황을 대략 설명하고 흥미가 있는지 의사를 물었다. 곧 두 사람 다 흔쾌히 좋다고 답장을 보냈다. 나는 바로 B에게 A의 연락처를 주었고 다음 날 두 사람은 통화를 했다.      


나중에 들어보니 당사자들끼리 줌 화상회의 앱을 통해 간단한 형식의 인터뷰를 진행했고 그 결과 둘 다 만족하여 곧바로 과외를 시작하기로 했다고 한다. (게다가 아이의 엄마는 밝고 재미있게 대화를 이끌어갔던 영어 선생님이 마음에 쏙 들어 다른 엄마에게도 추천하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친구 A는 좋은 과외 선생님을 소개해줘서 고맙다고 말하며 '중매 세 번이면 천국 간다'는 말도 있다는데 너 역시 그에 못지않은 좋은 일을 한 거라며 내 노고를 치하했다. 잠시 뒤 통화한 B라는 친구는 딸이 인터뷰한 초등학생 아이가 엄청 귀엽고 영어도 잘해서 대화하기 수월했다며 덕분에 금방 아르바이트를 시작하게 되었다고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소개팅이나 중매를 해주는 사람의 행복감이 바로 이런 걸까. 친구 A의 말대로 나는 양쪽의 감사 인사를 받으며 천국까지는 아니더라도 잠시 천국의 손잡이를 잡은 사람처럼 신이 나서 히죽히죽 웃었다.      


꼭 중매처럼 큰 공은 아니더라도 사람과 사람을 연결해 준 뒤 좋은 결과가 있었을 때 우리의 마음은 뿌듯해진다. 일상 속의 매개자에게 가장 큰 보답은 물질적인 보상이 아닌 타인의 행복을 보는 낙이다. 원래 기쁨의 순간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운 흥분이 신경세포를 통해 순식간에 전도되어 흐뭇한 마음이 발생하지만, 그 행복이 나로 인해 발생한 경우에는 보람과 희열이란 감정까지 겹쳐 배 이상 확대된다. 타인의 행복이 나를 행복하게 만든다면 그런 행동을 마다할 이유가 없다. 이런 행복감의 기저에는 내가 누군가의 삶에 기여하는 사람이 되었다는 쾌락이 깔려있다.       


더 나아가 나는 좋은 사회를 만드는 데 공헌한 사람도 된다. 사회에 필요한 사람이 되는 길은 자선단체에서 자원봉사를 하거나 불우이웃을 위해 기부하는 일처럼 누구에게나 존경받는 행위가 될 수도 있지만 내가 오늘 만난 사람에게 기분 좋은 말을 건네며 인사하는 행동도 그 요건을 충분히 충족한다. 많은 자산가가 재산을 늘릴 수 있었던 성공 요인은 자신의 삶을 부유하게 만들려는 욕심보다 어떻게 하면 타인의 삶을 보다 풍성하고 윤택하게 만드는 데 도움이 될는지 연구한 데에 있다.     


친구 조카에게 과외 선생님 한 명 소개한 일이 잘 풀린 것만으로도 오늘의 행복지수가 상승했다. 막연히 뭔가 좋은 일을 해야지 하고 생각만 하고 기다리지 말자. 작더라도 타인을 행복하게 하고 나 역시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일을 끊임없이 찾아내며 살자. 내일은 또 어떤 식으로 자신을 행복하게 만들 수 있을지 기대하며 살자.


한 줄 요약 : A야, B야, 나 잘했지?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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