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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희정 Feb 19. 2023

삶의 지푸라기

“길을 걸었지 누군가 옆에 있다고 느꼈을 때 나는 알아버렸네.

이미 그대 떠난 후라는 걸.

나는 혼자 걷고 있던 거지.

갑자기 바람이 차가워지네~.”      


들을 때마다 왠지 모를 짠함에 안아주고 싶던 장범준의 노랫가락이 오늘따라 칭얼거리는 귀여운 아이의 곡조처럼 느껴지는 아침이었다. 나는 노래 '회상'을 들으며 가사처럼 길을 걷고 출근하고 있었다. 허허벌판에 듬성듬성 난 잡초처럼 간간이 보이는 사람들은 오늘이 남들은 다 쉬는 토요일임을 한 번 더 상기시켜 주었다.

      

뭐 어때. 돈 욕심이 한창이던 갓 사회로 입문했던 시절에는 낮과 밤 주말 안 가리고 돈 버는 게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했었는데 토요일까지 출근한다고 불평하며 남과 비교하는 지금의 나는 어쩌면 반찬이 맛없다고 불평하며 뱉어내려는 철없는 어른 아이가 된 걸지도 모르겠다.


상쾌한 아침에 듣는 구슬픈 넋두리에 나는 잠시 위화감을 느꼈다. 떠나버린 연인을 회상하며 자책하는 이에게 겨울의 칼바람은 얼굴을 찌르고 가슴을 할퀴겠지만, 술 먹고 새벽 1시에 들어와 드르렁드르렁 코 골며 자는 남편에게 똑같이 세상모르고 자는 아이를 맡겨놓고 출근하는 아줌마에게 겨울바람은 조금씩 다가오는 봄의 싱그러운 숨을 한껏 들이마시는 순간이었다.   

   

가사에서처럼 묘한 기척을 알아챈 건 바로 그때였다. 나는 전방 1시 방향에서 까치 한 마리를 발견했다. 까치는 길가에 늘어선 한 가게 울타리에 달려있던 화분에 올라탄 채 부리로 화분에 붙어있던 지푸라기를 물어뜯고 있었다. 물고 있던 양이 이미 양볼에 가득하여 금방이라도 토할 것 같은 데도 녀석은 말 그대로 지푸라기 하나라도 더 물어가려고 초집중하고 있었다.      


나는 천천히 다가가며 녀석을 관찰했다. 녀석이 어찌나 지푸라기를 뜯는 데 몰입했던지 내가 손만 뻗으면 닿을 수 있을 만큼 가까운 거리에서 옆을 스쳐 지나가는데도 녀석은 내게 관심조차 주지 않았다. 꽤 열심히 구나. 어디에다가 집이라도 만들 요량일까? 흔하지 않은 풍경에 잠시 마음을 빼앗겼던 나는 어느새 까치를 등지고 다시 발걸음을 재촉했다. 동시에 내 머릿속에서는 방금 헤어진 까치의 삶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까치는 인근 아파트 단지 내에 있던 한 나무로 날아가 물고 온 지푸라기로 마지막 빈틈을 메우며 신혼집 짓기를 마무리했다. 얼핏 엉성해 보이는 집이었으나 마른 나뭇가지 사이사이에 채워진 지푸라기로 만들어진 둥지는 비바람에도 끄떡없을 만큼 튼튼했다. 밤에도 쉴 수 있는 안식처가 생기고 얼마 지나지 않아 부부 새는 떡두꺼비 무늬의 새알을 낳았다. 옹기종기 모여있던 사랑스러운 알을 어미 새는 온 마음을 다해 품었다. 인고의 여러 날이 지나자 알은 깨지고 세상에는 새 생명이 탄생했다.      


부모 새는 그날부터 제 몸이 부서져라 부지런히 먹이를 잡아서 날라다 주었다. 어떤 날에는 제 삶이 왜 이리 고달픈지 한탄하는 마음이 올라왔다. 그러나 배고픔으로 쩍 벌어진 새끼의 조그마한 부리 구멍은 부모 새의 눈에 채워도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거대한 구덩이처럼 보였다. 두려움과 걱정으로 뚫린 구멍은 탄식의 한숨이 미쳐 마음 밖으로 빠져나갈 틈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정신없는 하루가 차곡차곡 쌓여서 세월이라는 이름의 작품이 완성되었다. 무럭무럭 자란 새끼들은 하나둘씩 허공을 향해 힘차게 날아올라서 떠나갔다. 창공을 가르는 새끼들의 활짝 펼쳐진 날개와 꽁지를 하염없이 쳐다보는 부모 새의 눈에는 기대와 걱정이 뒤섞였다.

      

드디어 마지막 새끼 한 마리만 남았다. 이 녀석은 어릴 적부터 병약해 늘 먹이 경쟁에서 뒤처져 볼품없이 작게 컸다. 그래도 여태껏 살아남아 준 것만으로도 대견함이 넘친다. 어미 새가 말했다. “조금 더 있다가 떠나도 돼. 엄마랑 같이 살고 싶으면 그래도 돼.” 그 말을 옆에서 듣고 있던 아비 새는 그렇게 의존적으로 키워서는 안 된다는 눈빛을 못마땅한 듯 보냈다.       


내내 대가리를 조아리고 날개를 움츠리던 새끼가 말했다. “엄마, 나 부족한 거 알아요. 엄마랑 계속 같이 살면 내 부족한 부분을 엄마가 채워주리라는 것도 알아요. 그런데 그렇게 살면 나는 내가 아닌 엄마의 일부가 되어버려요. 그러니 떠날래요. 완벽하지 않아도 부족한 모양 그 자체로 하나의 완성이라고 생각하며 저는 제힘으로 살게요.”      


어미 새는 더 이상 아기가 아닌 새끼 새의 말을 눈물을 그렁그렁 달면서 들었다. 잠시 후 어미새는 작은 몸속에 원대한 마음을 가진 새끼 새의 부리를 날개로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잔잔히 말했다. “날개가 작아도 나는 데는 문제가 없으니까 두렵다고 한 곳에만 있지 말고 매일 아침 일어나면 날아오르렴. 먹이를 잡는 데 실패했다고 의기소침해지지 말고 먹이를 잡을 때까지 절대 포기하지 말아라. 매나 부엉이처럼 큰 새를 보면 덤비려 하기보다 일단 몸을 숨기고 지나가길 기다려. 지푸라기를 우습게 보지 마라. 나는 지푸라기를 한 올씩 모아서 너희를 비바람으로부터 지켜냈다.”      


어미 새의 말이 전부 끝나자 새끼의 날개가 비장하게 펼쳐졌다. 푸득푸득 푸드덕... 몇 번의 어색한 날갯짓 후에 망설임 없는 힘찬 도약이 시작되었다. 처음 공중에서 이리저리 비틀대던 것도 잠시, 새끼 새는 얼마 못 가 저 멀리 하나의 점이 되어 사라졌다.

      

이제 모두 떠났다. 어미 새와 아비 새는 자신의 빈 둥지를 내려다보았다. 세월이란 작품은 한 여름밤의 아이스크림 케이크처럼 다 먹기도 전에 바닥으로 줄줄 녹아서 흘러내렸고 빈 둥지의 듬성듬성 빈 곳에는 바람이 숭숭 들어왔다. 아비 새가 말했다.      


“여보, 지푸라기나 집으러 갑시다.”      


한 줄 요약 : 누구에게나 삶의 지푸라기를 잡는 일은 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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