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안희정 Feb 12. 2023

남편은 남의 편이 아니다.

“엄마, 내가 아빠한테 엄마의 장점이 뭐냐고 물어봤는데 뭐라고 대답한 줄 알아? 엄마의 장점은 돈 버는 거래.”      


평일 저녁 거실, 나는 바닥에 앉아서 빨래를 개고 딸은 옆에서 TV를 보고 있었다. TV 속 드라마에 열중하던 딸이 갑자기 뭔가 생각난 듯 피식 웃더니 내게 한 말이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곧바로 마음이 틀어졌다. 웃으며 말하는 딸에게 정색하며 화를 낼 순 없었다. 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 말했다.   


“그건 엄마가 그만큼 능력이 있다는 뜻이야. 너도 엄마처럼 능력 있는 여자가 되렴.” 일단 위기는 모면했으나 그 말이 목구멍에 걸린 듯 계속 껄끄러웠다. 돈을 버는 게 장점이라니 내가 그렇게 장점이 없는 사람인가? (게다가 이 문장에서는 ‘잘’ 버는 이라는 핵심 단어가 빠졌다. 이 한 단어의 부재는 내게 묘한 열등감까지 안겨 주었다) 마음에 담아둔 말은 얼마 못 가 쏟아지고 말았다.      


그날 밤늦게 퇴근해 온 남편을 붙잡고 딸과의 대화를 전했다. 그러자 남편은 대수롭지 않은 듯 “응. 내가 그랬는데? 왜 당신은 그걸 기분 나빠하지? 돈 번다는 건 칭찬으로 한 말이야.” 당당하게 말하는 남편에게 나는 최대한 화를 누르며 평온한 말투로 말했다. “그래, 물론 돈 버는 것도 얼마든지 장점이 될 수 있지. 그런데 그 말은 돈 버는 것 외에는 내가 특별히 잘하는 게 없다는 말로 들려. 사람이 가진 장점이라는 게 보통은 노래를 잘한다든지, 얼굴이 예쁘다든지, 아니면 마음이 착하다지 무언가 그 사람이 가진 고유한 특성으로부터 나오는 건데 돈 버는 일은 내가 그만두면 언제든지 사라질 수 있는 장점이잖아?” 나는 여전히 이해를 못 하겠다는 듯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 남편과 더 이상 언쟁하고 싶지 않아서 거기까지 말하고 입을 다물었다.   


나는 왜 그렇게 기분이 나빴던 걸까?      


모든 말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겉으로 드러나는 의사 전달과 그 말이 내포하는 진짜 의미다. 이 두 가지가 일치하는 경우에는 이른바 대화에 큰 말썽이 없다. 그러나 이 두 가지가 불일치하는 경우도 꽤 많이 발생하며 그중 상대의 말속에 감춰진 의미를 나에 대한 공격으로 받아들이게 되면 갈등을 초래하고 나아가 관계가 악화하는 상황으로 치닫기도 한다. 이때 받은 마음의 상처는 후에 관계가 복구되더라도 한참 동안 나와 상대 사이에 머무른다.


특히 여자들의 언어에서 이러한 현상은 매우 흔한 일이다. 책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는 남녀 관계의 성경으로 불리며 오랫동안 전 세계 사람들에게 공감과 사랑을 받았다. 직설적인 언어를 사용하는 남자와 은유적인 언어를 사용하는 여자와의 대화는 다른 별에서 온 존재끼리의 대화처럼 소통하기 힘들 때가 있다.      


나는 혼자 살지 않고 타인과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사회적 동물이고 전형적인 여성적 사고(?)를 하는 사람이다. 나의 뇌는 암호를 해석하는 컴퓨터처럼 아이라는 파이프를 통해 입력된 남편의 말에 숨겨진 뜻을 돈 버는 일 외엔 잘하는 게 없다는 비아냥거림으로 해석했다. 관심과 사랑의 언어를 기대했던 나는 그로 인해 큰 실망감을 느꼈다. 그러나 매번 갈등을 야기했던 이전의 대화처럼 남편은 별 뜻 없이 내가 가진 기술적이고 기능적인 면을 칭찬으로 말했다. 다른 세상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끼리의 명백한 소통 불능이다.


일단 서로 간에 오해로 인해 대립이 야기되면 마찰이 생긴다. 큰불은 언제나 작은 불씨에서 시작된다. 작은 마찰은 곧 큰 충돌로 이어진다. 그러니 의사 표현을 하는 입장에서는 지금 자기 입에서 나오는 말이 상대의 관점에서 혹시 왜곡될 수 있는 이야기는 아닌지 먼저 헤아려봐야 한다. 또한 말을 할 때의 표정과 제스처도 비호감을 주는 쪽으로 하지 않는지 경계해야 할 일이다. 책 ‘마음을 훔치는 기술 캣치’의 저자 바네사 반 에드워즈는 한쪽 입꼬리를 올리고 고개를 끄덕이는 행위는 경멸이 담긴 억지웃음으로, 콧등에 주름이 잡히고 윗입술은 위로 들리며 두 뺨이 올라가는 표정에는 혐오가 담겨있다고 설명했다. 괜한 오해를 받고 싶지 않다면 작은 표정 변화까지 신경 쓰자.      


의사 전달을 받는 입장에서는 상대의 말을 불필요하게 확대해석하거나 지나치게 반문하지 말아야겠다. 우리의 화를 불러일으키는 많은 말은 대부분 상대가 아닌 그 말로 온갖 시나리오를 쓴 나에게서 나온다. 남의 말에 너무 휘둘리지 않고 웃으며 되받아치는 여유를 기르고 나에게 좀 더 집중하는 삶을 살자. 나는 돈을 번다는 타칭 나의 장점을 자칭 자주적이고 독립적으로 경제력을 갖춘 사람으로 자화자찬하기로 했다. 문장 중간 빠져서 아쉬워했던 ‘잘’은 내가 앞으로 보완하고 개선해야 할 자기 요구로 결론지었다.

한 줄 요약 : 나를 기분 나쁘게 하는 남편의 말을 남의 편 말로 인식하지 말고 남의 나라말로 생각하고 적당히 넘기자.
작가의 이전글 토끼와 거북이가 경기할 필요 없는 경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