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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희정 Feb 05. 2023

토끼와 거북이가 경기할 필요 없는 경주

막냇동생의 아들인 조카는 올해로 초등학교 3학년이 된다. 조카의 얼굴을 보면 그 나이대 남자아이 특유의 장난기가 눈가에 한가득 끼어있다. 우리 집에 놀러 올 때면 재잘재잘 쉬지 않고 말도 대단히 잘한다. 천사 같은 얼굴로 손가락 발가락을 귀엽게 꼬물거리던 게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자기 의사를 정확하게 밝힐 수 있게 되었다. 그 모습이 기특해서 빼곡한 숱으로 너털거리는 머리칼을 사랑스럽게 쓰다듬어주고 싶을 때가 많다. 그런 조카와 며칠 전 대화를 했을 때다.      


“이모, 토끼와 거북이 이야기 알죠? 근데 신기한 건요. 실제로도 토끼와 거북이를 경주시켜 보면 거북이가 이겨요.”      


‘토끼와 거북이’는 재능은 출중하나 게으른 사람보다 재능이 없더라도 꾸준히 노력하는 사람이 이긴다는 교훈을 주는 유명한 이솝우화이다. 원제가 산토끼와 육지거북 (Hare and Tortoise)인 걸로 보아 여기서 나오는 거북은 지상 동물로 분류된 육지 거북일 확률이 높다. (원래 영어엔 Tortoise라는 단어만 있었다가 나중에 거북을 분리하는 용어가 필요하여 해당 단어들이 더 만들어졌다고 하니 바다거북일 가능성도 제기된다) 육지거북이든 바다거북이든 느린 건 매한가지다. 그런데 실제 실험에서도 깡충깡충 빠르게 뛰는 토끼를 엉금엉금 걸어가는 거북이가 이긴다니 매우 흥미로웠다. 나는 그 까닭이 궁금해서 조카에게 자세히 되물었다. 그러자 조카가 대답했다.      


“유튜브에서 봤어요. 실제로 거북이랑 토끼 경주를 시켰는데 거북이는 느려도 쭈욱 갔어요. 그런데 토끼는 왔다가 다시 돌아갔다가 또 이쪽으로 갔다가 저쪽으로 가면서 결국 지더라고요. 신기하죠!”     


토끼가 땅에서 날쌔게 뛸 수 있는 천부적 재능을 지녔다는 데에 이의를 거는 사람은 없다. 그에 반해 발이 둥글고 뭉뚝한 육지거북에게 땅에서의 움직임은 느리고 힘겹다. (바다거북의 경우는 발이 물갈퀴로 이루어져 더욱 힘들다. 이것은 땅에서 걷기 좋게 생긴 우리의 두 발이 수영할 때는 지느러미가 있는 물고기에 비해 느릴 수밖에 없는 이유와 맥락을 같이 한다) 그렇다면 당연히 민첩한 토끼가 승리해야 하는데 왜 거북이 승리했을까?     


애당초 두 동물은 경주를 벌인 적이 없었다. 그들은 단지 인간이 만든 경기장이라는 틀에서 마주쳤을 뿐 서로에게 아무런 경쟁의식이 없었다. 날렵한 초식 동물인 토끼는 생존 본능에 의해 주변을 탐색하고 위험을 감지하느라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예민하고 민감하며 주변 사물에 대해 호기심도 넘치는 토끼다. 그동안 거북은 낯선 땅에서 빨리 벗어나고 싶은 생각에 불굴의 의지로 직진한다. (바다거북이었다면 원래 터전인 바다를 향해 가려고 한 걸까?) 뚜렷한 목표 의식을 갖추고 끈질기게 한 방향으로 나가는 모습이다.      


이 둘 중 어느 동물도 더 빨리 결승점에 닿아 이겨야 하는 시합을 자기 삶과 연관 짓지 않는다. 다양한 탐색과 경험을 추구하는 토끼는 예술가 유형이다. 한 가지 일을 끈질기게 하는 거북이는 전문직 유형이다. 이 둘은 서로를 이기려고 의식하지 않고 자신의 길을 사방팔방으로 뛰어서 또는 묵묵히 걸어서 간다. 그들에겐 다만 각자의 삶이 있을 뿐이다. 토끼는 빠르다고 거북이의 길을 방해하지 않는다. 거북이의 느린 삶을 함부로 규정하거나 비하하지도 않는다. 이런 그들을 다시 묶어서 경주시킨다고 해도 결과는 마찬가지다.      


우리도 토끼와 거북이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다. 사회가 부추기는 경쟁에 끌려다니며 살 필요는 없다. 여러 가지 일을 시도하며 헤매는 시간도 나름의 세상을 사는 방식이다. 남들 눈에 시간을 낭비하며 정처 없이 배회하는 것처럼 보여도 그동안 사회에서 소외된 부분을 제대로 볼 기회를 잡을 수도 있다. 진정한 창의성은 언제나 남들이 놓치는 곳에서 찾는 법이다. 게다가 이런 사람은 새로운 환경에 적응력이 매우 높다. 그런가 하면 처음에는 미숙하더라도 실수하며 배우고 꾸준히 한 분야의 일을 하는 사람은 결국 모두로부터 인정받게 된다. 이런 사람은 매사 쉽게 포기하지 않고, 정신적인 맷집이 강해서 힘든 일을 겪어도 감정의 동요가 작다.


그저 각자의 성향에 맞는 삶을 찾아 살면서 나와 다르다고 배척하거나 짓밟으려 하지 말자. 서로가 가진 다양성을 인정하고 나아가 타인의 삶도 지지해 주자. 나는 외길을 걷는 거북이를 응원하는 토끼가 되거나, 다양한 영감을 찾아다니는 토끼의 삶을 격려하는 거북이가 되고 싶다. 그리고 조화롭게 공존하며 다른 길을 걷는 사람을 존중하듯 내 삶 역시 존중받으며 살고 싶다.      


한 줄 요약 : 토끼와 거북이처럼 타인의 삶과 경쟁하지 말고 존중하고 응원하며 조화롭게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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