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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희정 Jun 27. 2023

나의 투고 일기

* 권수호, 김호섭 작가님께 이 글을 바칩니다.*   


  

2023년 4월 25일 오후 3시 46분. 나는 떨리는 마음을 부여잡고 모니터를 노려보았다. 맞춤법은 맞는지, 띄어쓰기가 틀린 곳은 없는지를 재차 확인했다. 이메일 안에 첨부파일 2개가 잘 들어있는지까지 점검한 후 마우스로 화면 왼쪽 위 ‘보내기’라는 글자를 클릭했다. 첫 투고였다.      


2022년 6월 3일 글쓰기 모임인 ‘라이트라이팅: 라라크루’시작한 이래 11개월이 흐른 시점이었다. 처음 막연히 글 쓰고 싶다는 열망에 모임에 들어갔다. 모임 규칙에 따라 안 쓰던 머리를 쥐어뜯으며 매주 2 꼭지의 글을 썼다. 하는 만큼 얻는다는 신념으로 라라크루의 다른 작가들의 글도 열심히 읽었다. 그사이 뿌옇던 마음은 점점 선명해져 책을 내고 싶다는 확고한 결심으로 변해있었다.  

    

시간과 함께 쌓인 글들이 어느새 A4 분량으로 150장을 훌쩍 넘겼다. 그러나 지난 글들을 보면 한숨이 나왔다. 어떤 글은 너무 유치해 보였고, 어떤 글은 지루했다. 내 안의 내가 말했다. 이런 글을 누가 읽겠어. 책을 내기에는 여전히 턱없이 부족해 보였다. 망설임이 내 앞을 가로막았다. 그러던 중 모임의 리더인 권수호 작가가 말했다.  

    

“원고가 쌓였으면 일단 퇴고 작업을 하세요.”      


계시를 받은 기분이었다. 그래, 언제까지나 미룰 순 없어. 충분치 않아도 일단 시작해 보자. 그때가 3월 초였다. 두 달 동안 새 글도 거의 안 쓰고 오직 퇴고에만 매달렸다. 결과가 보장되지 않는 일이었다. 내가 쓴 글을 소리 내 읽고 목구멍에 걸린 듯한 느낌이 들면 고치고 또 읽었다. 기획서를 만들고 목차도 짰다. 프롤로그도 썼다. 그 와중에도 쓴 글을 계속 보고 또 고치는 무한 반복에 매달렸다. 감정이 하루에도 수십 차례 오르락내리락 롤러코스터를 탔다. 속이 울렁거리고 두통이 찾아왔다. 수시로 찾아오는 현타에 맞아 여기저기 멍이 들었다. 심신이 매우 불안정했다.


그래도 멈추지는 않았다.      


퇴고를 마친 후 일러스트레이터인 모니끄(인스타 아이디) 작가에게 투고용 책 표지를 그려줄 수 있는지를 물었다. 그녀는 작년 1월부터 시작한 새벽 기상 챌린지로 인연이 된 인친 중 한 사람이었다. 1년 전 그녀는 농담으로 내가 만약 책을 내게 되면 책 표지를 그려주겠다고 했었다. 나는 웃으면서 책을 내기도 전에 일러스트레이터를 먼저 가졌으니, 세상을 가졌다고 말했다. 그녀에게 대부분의 출판사는 책 표지 디자인까지 하기에 설사 투고에 성공하더라도 그 그림을 쓸 수 있을지 약속할 수 없다. 그래도 투고용 표지 그림을 그려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 1초의 망설임도 없이 그녀가 대답했다.    

  

“아. 해야지. 해야지! 해야지요!”      


그렇게 투고용 표지까지 완성되었다. 그녀의 소개로 표지의 제목은 캘리그래피를 하는 도미닉(인스타 아이디) 작가가 써주었다.     


주말에 집에 있고 싶다고 고집 피우는 딸에게 만화책과 슬라임을 사주겠다고 유혹해서 사당역 영풍문고로 갔다. 딸이 만화책과 슬라임을 고르는 동안 에세이 코너로 가서 닥치는 대로 책을 들추며 출판사 이메일 주소를 휴대전화로 촬영했다. 그걸 토대로 출판사 목록을 만들었다. 처음 20여 곳에 투고했다. 이후 이삼일에 걸쳐 20여 곳에 추가로 투고했다.  

    

결과는,


그중 1/3은 메일조차 열어보지 않았고 반 기획이나 자비출판을 권유한 곳이 몇 군데 있었다. 거절의 메일을 보낸 출판사도 있었으며 거절 메일보다 더 마음을 무너트리는 무응답으로 의사를 밝힌 출판사도 있었다. 계속 투고를 해야 할지 고민이 되었다. 지인인 권세연 작가에게 투고 기획서를 보여주며 조언을 구했다. 그녀가 말했다.   

   

“출간계획서를 작성하면서 제일 먼저 할 일은 최근 3년 이내 출간된 경쟁도서를 분석해야 하고, 경쟁도서와 차별점을 찾아서 적어야 해요. 그 작업을 해야 이 책이 시장에서 강, 약점이 뭔지 그 요인을 구체적으로 찾아낼 수 있어요.”      


그녀의 말을 듣고 이대로 투고를 계속하는 건 안 되겠다는 판단이 섰다. 그렇게 투고를 중단했다. 나의 부탁으로 원고를 다 읽어주고 여러 조언을 해주었던 이세정 작가는 전자책을 내 볼 생각은 없냐고 했다. (그녀는 라라 크루 모임 1기 때 알게 되어 지금은 마음을 기댈 수 있는 든든한 친구가 되었다) 나는 대답했다.      


“아직 투고를 포기하지 않았어요. 다시 도전해보려고 해요. 실패도…. 멋지게 하고 싶거든요.”     


제목을 바꾸기 위해 일주일을 고민했다. 권수호 작가에게 매일 수십 개의 제목을 보내며 그를 괴롭혔다. 그의 대답은 단호했다.      


“건질 게 없어요. 다시 생각하세요.”      


일주일째 되는 날 겨우 제목을 정했다. 바로 다음 문제가 발생했다. 제목이 바뀌자 기획서 및 프롤로그, 표지까지 새 제목에 맞게 전면 수정해야 했다. 새 글을 안 쓴 지가 오래된 탓에 머릿속이 하얬다. 거의 마른빨래에 물을 쥐어짜듯이 생각을 짜내며 프롤로그와 기획서를 수정했다. 지난번에 쓰지 않았던 에필로그도 덧붙였다. 경쟁도서로 짐작되는 에세이를 검색해서 그중 네 권을 읽었다. 그 후 기획서에 경쟁도서 비교분석 부분을 추가했다.      


모니끄 일러스트레이터에게 다시 연락해서 그간의 일을 얘기하고 새 제목에 맞는 그림을 의뢰했다. 그녀는 이번에도 기꺼이 해주겠다며 새 제목에 어울릴 만한 그림을 구상하고 총 4점의 그림을 그려주었다. 단지 투고용 표지인데 정성을 다해주는 그녀에게 정말 고맙고 미안했다. 사례하고 싶어 카톡으로 선물을 보냈다.  

    

“선물은 성공하시면 받을게요.”

    

그녀는 곧바로 선물 받기를 취소했다.


모든 준비가 끝났다. 2023년 6월 15일, 2차 투고를 시작했다. 다음날 한 출판사에서 연락이 왔다. 그다음 주 월요일로 미팅 날짜를 잡았다. 퇴근 후 만나기로 한 장소로 가서 출판사 대표를 만났다. 그는 1쇄에 한해서 인세가 없는 조건을 걸었다. 출판 시장이 어렵고 내가 무명이라는 게 이유였다. 그와 만남을 끝내고 권수호 작가에게 어떻게 했으면 좋겠냐고 물었다. 그가 말했다.     

 

“인세는…. 받읍시다.”      


매일 오는 출판사들의 거절 메일을 볼 때마다 심장이 쪼그라들었다. 나는 다시 땅을 보고 걸었다.      


다 그만두고 싶었다.

그러나 그만두고 싶지 않았다.      


어차피 이렇게 된 거 계약하고 싶었던 출판사에 재도전해보자고 생각했다. 이미 1차 투고 때 실패했던 출판사였다. 2023년 6월 22일 아침, 나는 진심을 담아 메일을 써서 보냈다. 두 달 전에 투고했었고, 답을 받지 못했기에 그 의미가 무엇인지 잘 알고 있다. 그래도 재도전해보고 싶어 원고를 수정했으니 다시 한번 검토해 달라고 썼다.      


그날 저녁 이세정 작가를 만나기로 했다. 그녀는 요즘의 나를 많이 걱정했다. 내 상태를 아는 사람에게 위로받고 싶었다. 먼저 도착해서 전철역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낯선 번호로 전화가 왔다.  

    

“안녕하세요. 00 출판사 000 대표입니다. 통화 가능하신가요? 제가 막 퇴근하려던 참이었는데 작가님의 메일을 열었습니다. 두 달 전에 저희 출판사에 원고를 보내셨다고 하는데 에세이 분야는 다른 직원이 보기에 제가 그때는 작가님의 원고를 보지는 못했어요. 지금 보내주신 기획서와 원고를 봤는데 마음에 드네요. 계약하고 싶습니다.”      


목요일 저녁 전철역은 많은 사람으로 혼잡했고 그들이 만든 소음은 무시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모든 시끄러운 소리가 일시에 멈췄다. 휴대전화의 말소리도 점점 멀어졌다. 계속 생각나는 노래의 후렴구처럼 오직 한 마디만 반복적으로 들렸다.     

 

“계약하고 싶습니다.”      


뭐라고 대답했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주책맞게 우느라 감사하다는 표현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그렇게 출판사와 계약했다.      


9개월의 글쓰기.

2개월의 퇴고와 투고.

다시 2개월의 수정 작업.

재투고.

그 모든 불확실한 과정을 거치며 끊임없이 자신과 싸웠지만, 한 번도 혼자였던 적이 없었다.


라라 크루에서 만난 영혼의 단짝들, Bestlifeexplorers 북클럽, 랜선 새벽 도서관에서 알게 된 소모임(나르샤) 사람들, 조이앤피스 친목 방, 대학 동기들. 모든 인생의 은인들이 나를 여기까지 끌어주었다.


이제 출판까지 또 해야 할 일이 많다. 그걸 생각하면 또 다른 걱정이 나를 덮친다. 내일은 또 어떤 장애물이 나타날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한 가지는 명확히 말할 수 있다.   

   

나는 절대로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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