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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희정 May 28. 2023

파이프 꿈

영화 라라랜드를 보고.

*오늘의 이야기는 영화 라라랜드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으니, 영화의 결말을 알고 싶지 않으시다면 그냥 넘겨주시기를 바랍니다.*     


부처님 오신 날과 일요일, 대체 공휴일까지 합해 총 3일간의 휴일이다. 아침부터 머릿속에서는 미뤄왔던 일과 해야 할 일, 그리고 하고 싶은 일이 소용돌이쳐 생각을 뒤죽박죽으로 섞어놓았다. 소용돌이를 잠재우려고 생각을 감쌌더니 뭔가를 해보기도 전에 이미 지쳐버려 아무것도 하기 싫어졌다.


그래, 이럴 때는 가만히 있는 게 최고야. 나는 애써(?) 소파에 몸을 붙이고 멍하니 있었다. 눈동자는 흔들림 없는 시야가 어색한 듯 이리저리 혼자 바삐 움직였다. TV 장식장 위에 있던 어항을 주시하다가 어지럽게 널려진 물건들이 가득한 탁자로 시선을 옮겼다. 치우기 귀찮다. 혼돈의 미를 감상하자. 아, 가만히만 있는 것도 힘들구나. 몇 분 견디지 못하고 리모컨으로 TV 채널을 이리저리 돌렸다. 가만있자…. 그러고 보니 마지막으로 본 영화가 언제였던가. 기억조차 가물거린다.      


그래 오늘은 영화 보는 날로 정하자.

그렇게 넷플릭스를 열고 영화 ‘라라랜드’를 발견했다.      


2016년 개봉 당시 대단한 화제를 몰고 왔으며 2017 골든글로브 뮤지컬 코미디 주연상과 음악상까지 휩쓸었다던 이 뮤지컬 영화를 7년 가까이 지난 이제(라도) 보았다. 영화는커녕 TV는 오직 아이의 만화를 위해서 틀어대던 시절을 견뎠더니 (그건 딸이 더는 TV를 보지 않는 게 아니라 태블릿 PC로 유튜브를 즐기기 시작했다는 의미지만) 이런 호사를 다시 누릴 수 있는 날이 찾아오는구나. 나는 방에서 유튜브를 즐기는 딸을 확인하고 본격적으로 혼자 영화를 보기 시작했다.     

 

영화는 12세 관람가라는 등급에 걸맞게 자극적이지는 않았지만, 탄탄한 스토리와 음악의 힘으로 굉장한 몰입감을 주었다. 그런데 이 예쁘고 사랑스러운 영화를 보는 내내 눈물이 뺨을 토닥거렸다. 그야말로 내 과몰입 성향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다.      


배우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오디션을 보는 배우 지망생 미아와 정통 재즈 음악을 고집하며 자신만의 재즈바를 여는 게 꿈인 재즈 피아니스트 세바스찬. 연인인 이 둘의 삶은 오늘도 쉽지 않다. 매번 오디션에서 탈락하던 미아는 세바스찬의 권유로 직접 대본을 쓰고 사비를 털어 극장까지 대관하며 1인극을 강행했으나 결과는 대실패로 막을 내린다. 그녀는 좌절감을 이기지 못하고 고향 집으로 내려가 버리고 홀로 집에 남은 세바스찬은 배역 감독으로부터 전화를 받는다. 감독은 미아의 연극을 매우 흥미롭게 보았으며 배역 오디션에 와주길 원한다는 말을 그녀에게 전해달라고 한다. 그 길로 세바스찬은 미아의 고향 집을 찾아가 미아에게 소식을 전하며 오디션을 보라고 한다. 그러나 미아의 대답에 세바스찬만이 아닌 내 가슴 또한 무너져 내렸다.   

  

“There’s people sitting in the waiting room, and they’re like me but prettier and better at the…. Because maybe I'm not good enough!”

“Maybe I’m one of those people that has always wanted to do it, but it’s like a pipe dream.”

“(오디션) 대기실에 기다리는 사람들은 나와 같은 처지지만, 나보다 더 예쁘고 실력도 더 낫고…. 난 아마 충분하지 않나 봐.”

“나도 그런 사람 중 하나인가 봐. 하고자 하는 열정만 가득 갖고 이루지 못할 꿈 꾸는 사람들. 헛꿈을 꾸는 사람들 말이야.”     


Pipe dream

(아편 파이프에서 파생된 단어로 아편이 피우는 사람들이 겪는 망상 같은 헛꿈이라는 의미이다)     


그녀는 장장 6년을 꿈을 쫓아다니며 살았는데도 아무것도 이룬 것이 없자 자신의 꿈을 헛된 망상으로 치부한다. 그 말을 들으며 한동안 인터넷에서 떠돌던 말이 떠올랐다.      


‘애매한 재능은 잔인하다.’      


사람들이 재능을 발견하는 과정은 비슷하다. 처음 뭔가 시도했는데 주변으로부터 칭찬받는다. 칭찬받으니 그 일이 재미있고 더 잘하고 싶어 진다. 멈추지 않고 계속한다. 본격적으로 그 분야에 들어간다. 거기에는 나보다 잘하고 더 재능 있는 사람들이 널렸다. 그들은 모두 거인 같다. 거인의 마을에 이사 온 난쟁이가 된 기분이 든다. 그만하고 싶은 마음이 수시로 올라온다. 그런데도 막상 다른 걸 해보려니 그것 또한 막막하다. 이런 생각에 이게 맞는지 확신은 없지만 계속한다. 어느새 꿈과 좌절을 오가다가 결국 포기하거나 현실과 타협하며 적당한 양다리를 걸친다.      


이런 무한궤도에서 탈출하려면? 영화는 이에 대한 대답으로 포기하지 말고 열정을 쏟아부으라는 메시지를 던진다(는 건 순전히 나만의 해석이다). 미아는 결국 오디션을 보았고 합격했다. 파리에 진행될 4개월간의 촬영으로 그들은 기약 없는 헤어짐을 한다. 세바스찬 역시 그의 꿈을 위한 인생길을 달려야 했다. 그는 그냥 흘러가는 대로 가보자는 말을 한다. 그리고 두 사람은 열심히 각자의 꿈을 향해 달린다. 세월이 지나 그들은 사랑을 희생한 대가로 둘 다 꿈을 이루었다. 유명한 배우가 된 미아는 남편과 우연히 들른 재즈바가 세바스찬의 바임을 눈치채고 그의 연주를 듣는다. 그들은 서로 아련한 눈빛을 교환한다. 연주는 끝나고 미아와 그녀의 남편은 그곳을 떠난다. 그리고 성공한 각자의 인생을 산다. 환상적 해피엔딩보다 멋진 실재적 해피엔딩이다. 


꿈에 미쳐서 내 전부를 투자하면 성공할 확률이 올라간다. 성공이 클수록 인생의 나머지 부분은 희생당한다. 사랑까지도 포함해서. 단지 영화의 이야기로 치부하기엔 현실과 기막히게 맞닿아있다. 나는 그들처럼 꿈을 위해 내 전부를 바칠 수 있을까. 솔직히 자신이 없다. 그러기엔 내가 가진 책임이 무겁게 발목을 잡는다. 내 아이가 없이 사는 삶을 상상조차 할 수 없으며, 꿈을 위해 모든 걸 버리기엔 은행 대출금의 액수가 너무 거대하다. 이쯤에서 답이 나오는구나. 나는 확실치 않은 일에 나를 제물로 바칠 수 없다. (아직은...)     

 

만약 내 꿈이 헛꿈이고 꿈의 성공이 파이프 속 연기와 같다면 그저 지금 꾸는 꿈을 즐기리라.     


내일은 울더라도 내가 좋아서 글을 쓰고 있으니 약간의 재능은 꽤 도움이 된다. 생각보다 글이 잘 안 써질 때는 취미라는 말로 자신을 다독이며 조금 쉬었다가 다시 쓰면 된다. 그러다 보면 또 누가 아는가. 덕후가 성공하는 세상이니 나도 언젠가는 그리될지. ㅎㅎ


그럼 그때는 그렇게 말해야지. 난 그저 좋아서 즐겼을 뿐이라고.


한 줄 요약 : 그래도 나는 꿈꾸고 사는 게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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