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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윤 Apr 20. 2019

결혼 3년 차, 교사 6년 차

부장 교사 되다


 때는 바야흐로 2017년 겨울이었다. 당시 우리 부부는(아니면 나 혼자만의 생각이었을지도 모른다.) 2018년 중반 즈음에 임신을 해서 2019년 황금돼지띠에 아기를 낳으면 좋겠다고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계획을 수정해야 할 기로에 놓이게 되었다. 관리자분들의 부장교사 제안 덕분(?)이었다. 갓 발급된 따끈따끈한 1급 정교사 자격증이 미처 식지 않았을 때임에도 불구하고, 나를 믿고 막중한 자리를 제안해주신 것에 대해 감사한 마음이 들었지만 한편으로는 불안한 마음이 엄습했다.


 나는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되었다. 제안을 거절하고 나의 계획대로 갈 것인가, 아니면 수락을 하고 자녀 계획을 뒤로 미룰 것인가로 말이다. 고민에 휩싸였다. 이 사람 저 사람 자문을 구하기 시작했다. 어른들은 이왕 제안해 주셨으니 해보라고 말씀해주셨다. 남편 역시 하고 싶은 대로 하라는 뜻을 내비쳤다. 물론 우리 나이에 과한 막중한 일을 어떻게 맡냐며 그 제안을 반대한 동료들도 있었지만 나는 '젊을 때 일하지 언제 일하겠어.'라는 생각이 들어 도전해보기로 했다.


 

선택의 기로에 섰다.

29살, 부장교사가 되다


 나 이상으로 훨씬 더 능력 있는 분들이 많으실 테지만 정말 어쩌다 보니 29살에 부장교사가 되었다. 그러나 역시 예상했던 것처럼 호락호락한 일은 아니었다. 결국 나는 교육과정을 연구하고 계획하는 데 온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마침 교육과정이 바뀌는 해라 이전의 교육과정을 모두 갈아엎어야 했기에 더 정신없이 몰두했다. 2018년 새 학기가 시작되기 전에 교육과정을 완성해야 학교 전체 교육과정이 완성될 수 있고 이를 토대로 학급 계획을 세울 수 있기 때문에 교육과정 완성에 박차를 가했다. 수업 시수를 이리 빼고 저리 빼서 단축 및 보충 수업 계획안들을 작성하는 것이 여간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결국 완성했다.(눈물)


시키는 일이라면 적당히 자르지 못하고 모두 받아들이는 어리숙한(?) 부장교사가 되었다.


 정신없는 3월이 다가왔다. 그래도 교육 과정 완성이라는 큰 일(?)을 해 낸 나는 자신감을 가지고 학교 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나 처음 하는 일인지라 관리자가 시키는 일이라면 적당히 자르지 못하고 모두 받아들이는 어리숙한(?) 부장교사가 되었다. 우리 학년은 1년 단위의 큰 사업을 진행하게 되었고 이로 인해 주변 선생님들은 힘들어하셨다.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는 내가 자초한 일이므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저렇게 겨우 겨우 일에 적응해가던 때, 나의 몸에 뜻밖의 이상 신호가 찾아왔다. 사람 일은 알다가도 모를 일이라더니 그때까지만 해도 이 일로 인해 나의 미래가 180도 바뀔 것이라 예상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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