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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윤 Aug 11. 2019

제4장. 올바른 관계를 위한 다섯 번째 법칙

마음을 열어라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이유 없이 ‘거리감’이 느껴지는 사람들을 만나곤 한다. 그들은 특별히 나에게 잘못하는 것도, 폐를 끼치는 것도 없지만 왠지 모르게 다가가기 힘들다. 그런 사람들은 성향 자체가 그럴 수도 있지만 대부분은 타인에 대해 경계를 늦추지 않고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의도적으로 노력하는 사람들이다. 진심이 없으면 결국에는 상대도 그 사실을 알아차린다. 관계도 거기까지다. 나는 관계로 힘들어하는 독자와 온라인으로 컨설팅을 진행하던 중 다음과 같은 메일을 받게 되었다.

 인간관계가 너무 힘드네요. 역시 거리를 유지하는 게 맞나 봐요. 너무 친해지면 서로 못 볼 꼴 다 보고, 힘들어지기만 하네요. 저도 이젠 제 실속 차리면서 남들과 거리 좀 유지하며 살아야겠어요.


 한 때 ‘차도녀’, ‘차도남’과 같은 말들이 유행한 적이 있었다. 일명 차가운 도시 여자와 도시 남자라는 뜻을 가진 이 용어들은 자신의 속은 다 드러내지 않으면서 실속을 차리는 현대인들의 각박함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처럼 관계에서 남들과 적당히 거리를 유지하며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지내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관계로 상처 받는 세상에서 자신을 지키기 위한 방어적 태도로 나온 말인 ‘거리 유지하기’ 또한 최근 들어 많은 사람들로부터 언급되고 있다. 그런데 종종 타인과 거리를 두라는 이 말을 왜곡해서 받아들이는 경우가 있다. 인터넷에서 돌아다니는 ‘거리 유지’라는 조언을 ‘마음의 벽을 쌓고 자신을 드러내지 말아야 하는 것’으로 잘못 해석하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나는 거리 유지하기에 대해 회의적인 입장이다. 거리 유지하기의 궁극적 의미는 적당히 거리를 유지함으로써 서로에 대한 예를 지키라는 뜻이다. 그러나 보통의 사람들은 말을 뜻을 오해하여 결국에는 ‘벽 쌓기’로 행동이 변질된다. 컨설팅 의뢰자도 마찬가지이다. 위와 같이 마음을 먹고 타인과 거리를 유지한다면 과연 자신의 상처를 극복하고 관계를 개선해나갈 수 있을까.

      

 얼마 전, 교육을 받으며 알게 된 친구 J가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내가 원래 성격은 이렇진 않은데 이런저런 경험을 하다 보니 나를 드러내지 않고 숨기게 되는 것이 습관이 되었어. 사람들에게 나를 드러내면 상대방이 거부를 하는 경우가 있더라고. 그래서 나는 어느 정도 나를 숨겨.


 나는 친구의 말을 듣고, 안타까움을 느꼈다. 나도 친구 J처럼 생각하던 때가 있었기 때문이다. 오래전, 나 자신을 드러냈다가 다른 사람들로부터 좋지 않은 소리를 들은 적이 있다. 나는 남들에게 얘기해도 된다고 생각해서 한 말이 다른 사람들이 느끼기에는 ‘왜 저런 얘기까지 하는 거지?’라는 생각에 들게 했다는 것이다. 그 사실을 알고 나서 당시에는 ‘내 얘기를 많이 하거나 나 자신을 지나치게 드러내면 안 되는구나.’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종종 사람들은 타인에 대해 ‘저 사람 왜 저럴까?’라는 생각에서부터 직접 불쾌감을 표현하기까지 다양한 반응들을 보인다. 이렇듯 주변 사람들의 생각과 반응 속에 사람들은 점점 남을 의식하게 되고 스스로를 감추게 된다. 그런데 여기서 생각해야 할 점이 있다. 사람들은 모두 생각이 다르므로 타인의 행동을 보고 나오는 반응 또한 가지각색이라는 점이다. 그러므로 한 사람의 반응에 지나치게 민감하게 반응하여 일희일비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나 자신을 자신 있게 드러내고 진심을 다하면 된다.


 나와 친구는 자신을 드러내고 나서 주변 사람들의 냉담한 반응을 느꼈다. 그 후 바로 자신을 숨겨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는 관계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잘못된 생각이었다. 가끔 그들의 평가에 귀를 기울일 순 있어도 스스로 자신의 영혼에 상처를 낼 순 없다. 우리는 상대방에게 마음을 열고 진심으로 다가가면 그만이다. 자신을 드러내지 않기보다는 상황에 맞는 대화와 행동 방식으로 자신을 어필해야 하는 것이다. 나를 보여줬는데 상대방이 거절하고 거부한다면 그것은 상대방의 허용 범위가 거기까지라고 할 수 있다. 나와는 다르고 나를 받아들일 준비가 안 된 것이라 생각하면 된다. 결코 우리가 잘못된 것이 아니다.


 물론 나의 개성이라 주장하며 상대방에게 피해를 주는 행동은 옳지 않다. 예를 들면 폭력성이 자신의 성격이며 성향이라고 주장하며 타인을 괴롭히는 맹수 같은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남에게 상해를 가하거나 물질적·정신적 피해를 주는 것이 아닌 꾸밈없이 자신을 드러내는 것은 결코 잘못된 것이 아니다. 타인에게 불쾌감을 주는 것과 진심으로 다가가는 것과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우리는 물에 들어갔을 때 물과 어울리지만 물에 희석되지 않는 나만의 개성에 대해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 나만의 개성에 대해 비호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단지 나와 다르기 때문에 배척하는 것이다. 이러한 반응에 상처를 받고 내가 먼저 담을 쌓고 관계를 끊는다면 더 이상의 발전은 없다. 적당히 어울리며 그들과의 화합점을 찾으면 된다. 계속 만나야 할 사람이라면 이러한 상태로 조금씩 공통점을 찾아가며 조율할 수 있다. 세상에는 아예 나와 다른 사람도, 완벽하게 나와 일치하는 사람도 없다.      


 남과 담을 쌓으면 쌓을수록 더 힘들어지는 것이 바로 관계이다. 결국 컨설팅 의뢰자나 친구처럼 매사 거리를 유지하며 자신을 숨긴 채 관계를 이어나가는 것은 도리어 자신에게 부정적으로 다가온다. 원래 사람들과 폭넓게 교재 하면서 관계를 잘 이어나갔지만, 잠시 관계를 내려놓고 나 자신을 돌아보며 쉬고 싶은 사람이라면 모르겠다. 하지만 관계 자체가 어려워 이를 회피하기 위한 방편으로 마음의 문을 닫게 되면 이는 다시 회복하기 힘들다.


 내가 관계가 어렵고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힘들다면, 오히려 내가 상대방에 대해 닫힌 마음을 견지하고 있었던 게 아닌지 다시금 돌이켜보아야 한다. 관계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일수록 자신을 타인에게 오픈할 필요가 있다. 자신을 오픈하지 못하는 사람은 자신감이 부족한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다. 자신을 믿는다면 남들에게 진심으로 다가갈 수 있다. 먼저 자신을 보여줘야 상대방도 상대방의 마음을 보여준다. 이것이 바로 진심이다. 




 자기만의 비밀은 어느 정도 있어야 하는 것은 맞다. 사람마다 비밀의 기준과 비밀의 정도가 다른 것도 사실이다. 여기에서는 내가 밝히기 싫은 모든 비밀까지 드러내라는 뜻이 아니다. 먼저 상대방에 대해 ‘열린 마음’을 가져보라는 것이다. 내가 누군가를 만났을 때, ‘내 비밀을 들키지 말아야지.’라는 마음가짐과 ‘이 사람과 진심으로 소통해야지.’라는 마음가짐은 확연히 다른 결과를 가지고 온다. 절대적으로 후자인 마음가짐으로 만난 사람이 이후의 관계에서도 만족감이 높다.


 인간관계는 결국 내 마음이 편안함을 느끼고 이에서 행복을 찾는 것에 목적이 있다. 내 주변에는 주로 마음과 마음이 통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들의 특징은 진심이 묻어난다는 것이다. 진심으로 타인을 대하면 내 마음이 한결 편안해진다. 그러므로 일부러 나 자신을 꽁꽁 싸맬 필요가 없다. 지금은 쉽게 노출되는 소통의 시대이다. 진정한 소통이 없다면 관계는 의미가 없다.


 세상에는 아예 나와 다른 사람도, 완벽하게 나와 일치하는 사람도 없다. 겁먹을 이유가 없다. 나를 과감히 드러내고 열린 마음으로 타인과 소통해야 한다. 풍요롭고 깊은 관계는 진심이라는 재료가 있어야 만들어질 수 있다. 기억하자. 오늘부터 사람들 간의 예의와 신의를 지키며 열린 마음으로 상대를 대한다면 이전과는 다른 세상이 당신을 반길 것임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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