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에 프리패스는 없다
세상에 정말 공짜가 있을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공짜를 좋아한다. 아마 공짜를 싫어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나 역시도 공짜를 좋아한다. 그런데 ‘공짜를 좋아하면 대머리 된다’는 말이 있다. 어디에서 유래되었는지 알 수 없는 이 말은 세상의 중요한 이치를 담고 있다. 즉, 공짜를 좋아하면 대머리가 된다는 것은 공짜라는 생각이 들어도 결국에는 어떤 식으로든 돌려받음을 의미한다. 공짜라고 좋아해서는 안 된다. 진짜 공짜가 아니기 때문이다. 무조건 얻는 게 있으면 잃는 게 있는 법이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이와 마찬가지로 관계에서 또한 공짜는 없다. 흔히 사람들은 다음과 같은 말을 하곤 한다.
저 사람은 내가 필요해서 나와 사귀는 것 같아요. 그래서 불쾌합니다.
나도 살면서 위와 같은 말을 주변에서 많이 들었다. 처음에는 나도 필요에 의한 관계 형성은 다소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필요에 의한 만남은 당연한 삶의 이치임을 깨달았다. 사람이 타인과 교류하며 관계를 형성하는 이유는 관계를 통해 서로 행복해지기 위함이다. 행복해지기 위해 관계를 형성한다는 것은 자신의 필요에 의해 관계를 형성한다는 뜻이다.
타인과의 교류를 통해 이런저런 사는 얘기들을 나누고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다. 혼자 있었으면 외롭거나 심심했을지 모르는 그 시간에 사람들과 교류하면서 행복을 찾는 것이다. 이것은 분명 필요에 의한 만남이다. 또 어떤 사람들은 인맥 관리를 통해 자신의 업적이나 경력을 쌓는 데 도움을 받고, 명예를 얻음으로써 행복을 추구하기도 한다. 결국 누군가와 사귀고 만나는 것은 이유는 다르지만 개개인의 필요에 의한 것이다.
슬프지만 일방적인 사랑이란 없다. 짝사랑도 한계가 있다. 관계라고 함은 상대방이 한 번 주었으면 내가 한 번 주어야 균형을 이루게 된다. 물론 수량적으로 한 개를 주었다고 해서 두 개 말고 꼭 한 개를 주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일방적으로 헌신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다. 관계에서 정신적이든 물질적이든 상호 간의 균형이 깨지면 사이는 자연스럽게 멀어진다.
어느 날 나는 내가 자주 가는 단골 가게에 방문했다. 그곳에서 알게 된 점원 L 씨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중이었다.
“이번 주말에 뭐했어요?”
내가 묻자 그 점원은 이렇게 대답했다.
“남자 친구와 만나서 놀아요. 밥 먹고 주변 공원 산책하고 그래요. 그런데 데이트 비용을 제가 거의 부담해서 마음대로 놀러 다니고 그러진 못해요. 제 남자 친구가 아직 직장이 없어서요.”
“아, 그럼 좀 부담되시겠어요.” 내가 대답했다. 그러자 그녀는 대답을 얼버무리며 웃음만 지었다.
일방적으로 물질적인 모든 것을 부담하는 L 씨를 보며 나는 그 둘 사이가 결코 오래 가진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녀가 어느 정도까지는 남자 친구를 위해 물질적인 부분을 다 내어줄 순 있어도 관계가 오래 지속될지는 미지수다. 물론 그녀의 남자 친구가 그녀의 금전적 부담에 상응하는 진심 어린 사랑을 보여준다면 결과는 달라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뭐든지 한쪽으로 지나치게 기우는 것은 서로에게 부담이 되고 결국 관계는 소원해지게 된다.
점원 L 씨의 사례처럼 인터넷에서 연인 간 데이트 비용 지불에 대한 주제는 아주 흔한 단골 소재 중 하나이다. ‘남자는 여자를 위해 모든 데이트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VS ‘더치페이를 해야 한다.’로 갈리는 경우가 많은데 반응은 극명하게 나뉜다. 일부 여성들은 사랑하면 당연히 나를 위해 돈을 다 써야 한다고 생각한다. 반면에 남성들은 데이트 비용 모두를 부담하는 것은 솔직히 말해서 부담이 된다며 결국 만나는 횟수를 은근슬쩍 줄인다고 한다. 모두 일리가 있지만 물질적이든 정신적이든 균형을 이루는 것이 답이다.
나의 연애 초기 때, 주변 사람들은 남자가 여자를 사랑한다면 돈은 무조건 다 쓴다며 여자는 돈을 지불할 이유가 없다고 일러주었다. 그런데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해보니 버는 것은 비슷한데 상대방이 금전적 부담을 전적으로 지는 것은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데이트 통장이라는 것을 만들어 한 달에 한 번 반씩 모았고, 데이트 비용 일체를 그 통장의 돈으로 지불했다.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에 나의 방식이 100퍼센트 맞다고 주장할 순 없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한쪽만 사랑하거나 한쪽만 상대를 위하는 것은 관계를 유지하는 데 장애가 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부모님 중 자식을 매우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데 간혹 성인이 된 자녀가 결혼을 해서 자신의 기대만큼의 사랑을 주지 않으면 내심 서운한 마음이 든다. 사람은 기대하는 동물인지라 보통 내가 아낌없이 상대한테 모든 것을 내어줄 때, 자신도 모르는 사이 이후 결과에 대한 보상을 바라게 된다. 그런데 이러한 기대가 충족되지 않으면 둘 사이의 관계에 문제가 생기게 된다.
관계를 잘 형성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관계가 공짜가 아님을 기억해야 한다. 잠시 주변을 둘러보자. 내가 다른 사람으로부터 도움을 받고만 있는 것이 아닌지 말이다. 내가 받았다고 즐거워만 하고 있으면 안 된다. 내가 자꾸 받기만 하는 입장이라면 언젠가는 상대방에게 보답을 해야 한다. 꼭 물질적인 보답일 필요는 없다. 정신적인 도움, 지지도 해당한다.
지금까지 물질적인 것으로 비유를 많이 들었지만, 균형 있는 정신적 교류가 정말 중요하다. 정신적으로 서로 에너지를 주고받는 관계는 오래 유지될 수 있기 때문이다. 긍정적인 마음가짐으로 함께 성장하고 나아가려는 상생의 에너지야 말로 관계의 핵심이자 본질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물질적 또는 정신적인 도움을 받았다면 최소한 마음속 깊이 감사를 표현하고 그것을 행동으로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