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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봄여기 Dec 29. 2020

인간의 다양한 욕망을 다룬 작품들

- NETFILX 시리즈 위주로 애.보.명 TOP3

5인 집합 금지 조치가 내려졌음에도 불구하고 코로나19 확진자 추세가 감소되지 않아 거리두기 2.5단계가 내년 1월 3일까지 연장됐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연말연시 사랑하는 가족이나 친구, 연인과 함께 하는 대신 반강제적으로 집에서만 보내야 하는 사람들에겐 여간 곤혹스러운 소식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답답한 소식이지만 우리 모두가 지금 멈추지 않으면 안되기에 조금이나마 즐겁고 편안한 칩거 생활을 돕기 위해 준비해봤다. 그동안 넷플릭스를 보면서 '애정하여 두고두고 보는 명작' 애.보.명 세 편을 소개하고자 한다. 이번에 추린 세 편은 인간 욕망에 대한 테마를 주제로 했다. 인간의 욕망에 대한 다양한 해석과 특별한 소재로 재미와 작품성까지 두루 갖춘 세 편의 작품으로 연말연시 사람은 만나지 못해도 세상의 다양한 욕망을 지닌 인간들을 간접적으로 만나보는 건 어떨는지!


1. "타자의 욕망을 욕망한다" 집시 GYPSY 

GYPSY, 2017, 시즌1( 총 10화)
나는 사람들이 자신의 인생을 결정한다고 믿었다.
자신을 통제하며 미래를 만들어가고 배우자를 선택하고 직업을 고르며 삶의 여정을 만들어가는 결정에 책임을 진다고 여겼다. 
하지만 자유의지보다 더 강한 힘이 존재한다.

바로 무의식이다.

정장 아래에서 닫힌 문 뒤에서 우리는 같은 욕망의 지배를 받는다. 
그런 욕망은 날것 그대로이고 어둡고 수치스럽기도 하다. 
사람들을 지켜보며 알게 된건 그들이 자기 자신을 잘 모른다는 사실이다. 
사실 모두의 깊숙한 곳에는 늘 비밀이 감춰져 있다. 

우리는 어쩌면....다른 사람일지도 모른다.

1화 첫 시작과 함께 진(나오미왓츠)이 수많은 인파들 사이를 걸으며 했던 대사다. 정확히 저 대사에 꽂혀 10화까지 내리봤다. 나오미 왓츠가 연기도 하고 기획까지 참여한 작품으로 나오미왓츠의 연기는 언제나 옳다는 걸 다시 한번 상기시켜 준 작품이다. 

심리상담가로 일하는 진은 인간의 깊은 내면 속 날 것의 무의식을 들여다보길 원한다. 그리고 매료된다. 심리상담가라면 제일 먼저 내담자의 감정이나 생각으로부터 전이되지 않도록 훈련받고 그런 자질이 갖춰진 상태에서 상담을 진행하는 것이 원칙이겠지만 진은 그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넘나들면서 내담자의 무의식 속 욕망을 자신의 것으로 육화한다. 헤어진 연인을 못 잊어 권태와 우울을 겪는 샘을 상담하면서 샘의 연인이었던 시드니에게 접근하고, 딸과의 틀어진 사이 때문에 깊은 우울감과 절망을 느끼는 앨리스를 상담하면서 앨리스 딸의 일상에 개입해 어머니와 화해하도록 만든다. 내담자의 실질적인 삶에 깊숙이 개입하지 말라는 주변 동료의 경고와 충동을 자제하라는 남편의 조언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진은 알 수 없는 욕망에 이끌려 샘이 시드니에게 매료되었듯 이끌리고, 자신에게 불리한 상황이 펼쳐질때마다 사람들의 심리와 감정을 교묘하게 이용하며 상황을 타개해간다. 무엇이 진을 그러한 충동으로 이끄는지 그녀 자신도 모른채 깊은 무의식 자리잡은 어둠이 언제든 친근하고 편안했던 자신의 일상을 집어삼킬 수 있음에 공포를 느끼면서도 이끌리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정신분석가 라캉은 인간의 욕망은 타자의 욕망을 욕망할 때 발생한다고 하였다. 샘이 시드니를 태양처럼 빛나는 존재라고 표현할 때 진은 시드니에 대한 샘의 욕망을 욕망한다. 진은 욕망이 이끄는대로 나아가면서 날 것의 욕망이 자신이 지켜야 할 것들을 망가트리지 않도록 고군분투한다. 치열한 그녀의 욕망이 당신을 어떤 형태의 욕망으로 이끌지 기대해봐도 좋을 것이다.


2. "오로지 '너(YOU)'라는 욕망에 관하여" 너의 모든 것

YOU, 시즌1(총10화),2019


우린 너무 열심이에요
서로 많이 닮았어요
마지막 남은 진정한 낭만주의자들이죠

누군가를 이해하기 위해 혹은 사랑하기 위해 그 사람을 관찰하고 지켜보고 분석하는 것에 우리는 얼만큼의 시간을 쓰는가?  '내가 너를 잘 알지', '너는 나를 하나도 모르네.' 라는 말들을 일상에서 듣거나 혹은 타인에게 하면서 진정 우리가 한 사람을 혹은 '나'라는 존재를 완벽하게 이해한 적이 있었던가 생각해본다. 사실 많이 알고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던 당혹스러웠던 순간들, 믿었지만 거짓이었던 말들을 우리는 매순간 겪으며 살아간다. 그때마다 느끼는 것은 내가 정말 사람에 대한 이해가 없었다는 것과 나조차도 나에 대해서 아는 것이 별로 없다는 자괴감이다. 그래서 2년전부터 정신분석 강의를 들으러 다녔다. 타인을 통해서만 이해하려고 했던 '나'를 잠시 내려두고 '나'에게로 시작되는 해석에서 '너'에게로 가고 싶었다. 그는 왜 그랬을까, 왜 나를 떠났을까라는 질문에서 나는 왜 그랬을까, 나는 왜 떠났을까로 바뀌니 마음이 편안했다. 분노대신 이해가 찾아왔고 그즈음 이 작품을 만났다. 오로지 'YOU' 라는 타자를 통해서만 살아가는 조, 조를 만난 것이다. 

서점 매니저로 일하는 조는 서점의 손님으로 온 벡에게 첫 눈에 반한다. 벡의 첫 등장으로부터 시작된 조의 나레이션은 온통 벡을 묘사하는 문장으로 가득하다. 그녀의 옷차림, 악세서리 유무, 그녀가 기웃거리는 책장의 위치를 통해 그녀의 취향 및 성향을 분석하고, 그 데이타를 근거로 그녀에게 다가간다. 첫 만남 이후 조는 벡이 자신이 사랑해도 될 안전한 여자인지를 확인하기 위해 조에 대한 스토킹을 시작한다. 그녀의 페이스북을 통해 벡의 집 위치를 알아내고 그녀의 집에 몰래 잡입해 일상 속 벡을 훔쳐본다. 벡은 기숙사 임대료를 걱정해야 할 정도로 가난한 대학원생이라는 처지 때문에 자신에게 찝적되는 교수에게 수모를 당하기 한다. 찌질하지만 부자여서 헤어질 수 없는 남자친구가 있으며 적응하려고 애쓰는 부자친구들이 있다. 이러한 벡의 상황이 자신의 사랑에 걸림돌이 된다고 판단될 때마다 조는 벡의 뒤에서 강박에 가까운 스토킹으로 얻은 정보와 뛰어난 분석을 통해 자신의 방식대로 장애물을 제거해가면서 벡을 돕는다. 아니 돕는다라고 합리화한다. 그리고 때론 정말 벡에게 도움이 될 때가 있다. 조의 방식이 살인과 폭력이라는 점에서 동의할 순 없어도 벡에 대한 사랑과 열정은 너무도 열심이어서 작품을 볼 때마다 두 가지 마음이 든다. 상실과 이별에 대해서 배우지 못한, 그래서 받아들일 수 없는 싸이코패스의 타자에 대한 소유 욕망을 저지하고 싶으면서도 눈감아주고 싶은 모순된 마음이 동시에 드는 것이다.


3. "괴물, 욕망이라는 이름" 스위트홈

스위트홈, 시즌1(총10화), 2020


누군가 말했다. 
가장 짙은 어둠도 
가장 흐린 빛에 사라지는 것이라고. 

<스위트홈>은 네이버웹툰 ‘스위트홈’을 원작으로 하는 작품으로 넷플릭스에 공개되자마자 총 8개국에서 차트 1위에 오를만큼 작품성이나 오락성적인 측면에서 큰 반향을 일으킨 작품이다. 드라마틱한 전개와 캐릭터의 개연성, 화려한 비주얼로 웹툰을 능가한다는 평이 일색이다. 시의성도 좋고 영상미도 뛰어나서 올 한해 마지막을 장식할 가장 화제성 있는 작품이 아닐까 생각한다. 

다 쓰러져가는 그린홈으로 이사온 현수는 원인모를 교통사고로 가족들을 모두 잃고 하루 하루 자살할날만 꼽으며 살아간다. 은둔형 외톨이로 살아가던 현수는 다른 사람들보다 먼저 바이러스에 감염되지만 그린홈 사람들을 돕게 되면서 자신의 괴물화를 제어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된다. 정체불명 바이러스의 감염경로는 불확실하지만 코피와 환각,환청 등의 전조증상이 뚜렷하고 직접적인 원인은 인간의 사적인 욕망 때문이라는 정부의 발표가 이어진다. 그린홈 사람들은 각자 저마다의 욕망으로 서서히 괴물화가 진행되는데 그런 욕망에 삼켜지지 않고 인간성을 잃지 않으려 노력한다면 현수처럼 괴물화를 제어하는 감염자로 남거나 감염이 되어도 인간을 해치지 않는 괴물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현수처럼 욕망을 제어하는 데 실패하고 괴물이 된다. 욕망이 괴물의 형태와 성질을 좌우하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지점이 이 작품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이다.

인간의 욕망이 사람을 괴물로 만든다는 테마. 많은 문학작품과 대중매체에서 자극적으로 다뤄왔던 그 주제가 정말 괴물이 되어 인간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모든 재난 영화, 생존 시리즈 드라마가 그러하듯 생존자들의 삶에 대한 욕구, '살아야 한다'라는 것에 대한 당위성에 너무 치중하다보면 어느 순간 극의 흐름이 진부해지거나 신파로 흐르는 경우가 왕왕 있다.(요즘 작품으론<그린랜드>가 그랬다) 그런 의미에서 이 작품도 뒤로 흐를수록 그런 경향이 있어 아쉬웠다. 생명이 있으므로 살아야 하는 것은 맞지만 유독 나만 꼭 살아야 한다라는 욕망에 당위성이라는게 있을 수 있는가. 그런 의미에서 생존자들의 내면 심리, 절망 대신 이 작품이 좀 더 세심하게 다뤘어야 할 것은 "괴물화가 된 욕망"아닐까 생각한다.

<스위트홈>에는 다양한 모습의 괴물들이 나온다. 욕망이 괴물을 만든다면 그렇다면 괴물은 어떤 욕망 때문에 저런 모습이 되었을까? 일거리를 걱정하고 고양이의 먹을거리 조차 넉넉하지 않아 절망에 빠진 배우지망생은 무엇이든 닥치는대로 먹어 치우는 괴물이 되었다. 학교 폭력의 피해자였던 현수는 매일 밤 자신의 존재를 부정하고 쓸모없이 여기는 욕망과 싸우며 괴물화를 제어한다. 12개월된 아이를 순식간의 사고로 잃은 여자는 아이를 지키고 싶다는 욕망 때문에 괴물이 된다. 인간을 도와준 액체괴물도 있는 반면 무자비한 힘과 크기로 사람들을 위협하는 괴물도 있다. 괴물이 인간의 욕망 때문이라면 괴물이 되기 전 그 사람의 욕망은 어땠는지 좀 더 중점적으로 다룰 필요가 있었다. 괴물과의 싸움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결국 괴물이 되지 않기 위해 우리가 서로 연대하여 노력해가는 모습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학교폭력, 가정폭력, 취업난을 겪는 청년구직자, 요즈음 이슈가 되는 경비원 처우개선문제 등의 시의성 있는 서사들을 생존이라는 문제와 함께 우리 앞에 펼쳐내 보여준다. 어쩌면 저런 문제들이 우리를 괴물로 내모는 것은 아닐까. 괴물화가 되어버린 다양한 사람들의 욕망을 살펴보는덴 서툴렀지만 오락성과 시의성 모두를 갖췄다는 점에선 엄지척 하지 않을 수 없는 작품이다. 희미하고 작은 빛이 깊고 큰 어둠을 이긴다는 저 말처럼 지금의 팬데믹 현상에 지치지 말고 각자의 방식대로 끈질기게 연대하며 버텨보는 연말연시가 되시길!


 2020년 모두모두 고생하셨습니다. 2021년 우리 모두 HAPPY NEW YE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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