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T테마로 읽고 듣는 프랑수와오종의 <썸머85>
프랑소와오종의 영화를 보고 나면 모종의 불안감이 든다. 관계란 언제든 새로운 유혹의 도전 앞에 불완전하며, 아름다움은 또다른 아름다움으로 그 빛을 잃으니 이 세상에 영원한 것이란 없다는 명제에 대한 일말의 저항도 할 수 없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시니컬함이, 회의적인 시선이 싫지 않다. 불안하게 만들면서도 속절없이 그의 시선이 향하는 곳으로 알렉스가 다비드에게 이끌리듯 매료당한다. 불안함 너머, 치기어린 열정 끝에는 '모든 것에는 시작과 끝이 있고, 영원한 것은 무(無) 밖에 없다'는 성숙한 깨달음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기꺼이 매료당함을 자처한다. 다시는 안 올, 돌이킬 수 없는 첫사랑에 대한 상실감은 그래서 어쩌면 죽음과 같은 의미를 지닐지도 모른다. 사랑했던 존재의 완벽한 무(無)에 맞딱드리게 됨으로써 죽을것 같은 고통, 죽을 것 같은 상실감, 죽을 것 같은 외로움, 죽을 것 같은 슬픔으로 '존재의 죽음'을 경험한다. <썸머85>는 첫사랑이 끝남과 동시에 사랑하는 대상이 죽어버렸기 때문에 사랑의 상실감과 죽음으로 인한 존재의 무(無)가 동급의 의미로 그려진다. 관계의 종말로 인해 사랑했던 존재가 나의 공간, 시간, 일상에서 사라져 버리는 것 또한 죽음과 같다라는 맥락에서 <썸머85>는 사랑의 시작과 끝을 죽음의 은유로 말하고 있는 영화라 할 수 있다.
We are sailing, we are sailing
Home again
Cross the sea
We are sailing
Stormy waters
To be near you
To be free
Rod stewart는 노래한다. 바다를 건너, 폭풍우를 지나, 다시 당신의 곁으로, 그래서 자유로울수 있다고.
영화 <라붐>의 한 장면을 패러디하며 다비드가 알렉스에게 들려주었던 Rod stewart 의 sailing은 이 영화의 시작과 마지막을 장식하는 OST다. 노르망디의 여름 해변을 배경으로 우연히 바다에 빠진 알렉스(펠릭스 르페브르)를 다비드(벤자민 부아쟁)가 건져올리면서 두 사람의 인연이 시작된다. 바다에서 만나 사랑이 시작된 두 사람에 대한 사랑의 찬미곡으로 'Sailing'에 대한 오종의 선택은 '존재에게로의 항해'라는 의미에서 탁월해보인다.
알렉스는 다비드의 저돌적인 열정, 자유분방한 성향에 불가항력이 되어 사랑이라는 항해로 자신을 내던진다.
열렬히 탐색하고, 만지고, 웃고, 즐긴다. 두 사람의 사랑이 정점에 이르며 알렉스는 다비드라는 존재에 완벽하게 압도당하고 다비드를 통해 느끼고, 분출하고, 자유로워진다. 반면 성적 충만한 매력으로 스크린을 가득 메운 다비드는 이제 막 칼립소의 돗대를 올리고 망망대해로 출항하기를 마친 사람처럼 자유롭고 거침없다. 돛대가 향하는 어디든 닿을 준비가 되어있고, 자신을 내던질 준비가 되어있다. 'Sailing'이 다비드에게 자유에 대한 욕망의 노래라면 알렉스에게는 함께함에 대한 사랑의 노래다. 그의 터질듯한 자유에 대한 열망은 '고정된 ' 네게로가 아니라 '새로운' 너에게로의 갈망으로 알렉스의 '자유'와 다른 지점을 향해 뻗어나간다. 알렉스가 잡을 수 없는 영역으로, 알렉스가 잡으려고 하면 할 수록 더 멀리 달아날 것이니 알렉스가 겪게 될 상실은 예견된 것이었다.
This heat has got right out of hand
It's a cruel, cruel summer
Leaving me here on my own
It's a cruel, cruel summer
Now you're gone
한 여름의 열기처럼 두사람에게 갑자기 나타난 케이트의 등장으로 알렉스는 뜨겁고 찬란했던 사랑의 열기가 자신의 손에서 빠져나가는 것을 느낀다. 두 사람을 서툴게 뒤따르는 그 길에서, 자신의 존재가 부담스럽다고 말하는 다비드의 말에서 알렉스는 이 여름이 끝나가고 있음을 고통스럽게 인지한다.
6주도 채 안되는 여름방학이 빨리 지나가버리듯 여름은 언제나 그렇게 짧고 강렬하게 우리를 지나쳐간다. 이글거리는 태양빛은 느슨해지고, 뜨거운 열기는 선선한 바람으로 식혀진다. 우리가 원하듯 원하지 않듯 여름이 지나야 가을이 오고,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고, 생명이 있으면 죽음이 온다. 한 시대의 여름을 풍미하며 많은 사람들을 춤추게 만들었던 바나나라마의 'Cruel Summer'는 그래서 알렉스에게 더욱 잔인한 이별노래다.
케이트와 둘이 사라져버린 다비드를 잡지 못했으면서 시위를 떠난 질투의 화살은 다비드를 더욱 몰아세운다. 더 사랑하는 마음이 덜 사랑하는 마음에게 왜 나를 더 사랑하지 않느냐고 추궁한다. 여름이 저무는 것에 왜이냐고 물을 수 없듯이 덜 사랑하는 마음은 더 사랑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서 말 하기 어렵다. 다비드에게는 그저 관계의 신의, 책임 보다 순간에 충실한 열정, 욕망, 자유가 먼저였을뿐이라고, 알렉스에 대한 사랑이 변했다기보다는 자신이 느끼는 사랑에 애초에 '종속'이라는 개념이 없었을 뿐이라고 알렉스에게 설명하지 못한다. 다비드에게 온전히 자신을 내던짐으로써 다비드를 사랑한다고 생각했던 알렉스에게 다비드의 행동은 사랑일 수 없고, 알렉스를 사랑하지만 자신의 욕망과 자유를 포기할 수 없는 다비드에게 알렉스는 부담스러운 존재이니, 사랑의 모양이 다른 두 사람은 파국을 향해 치닫는다. 종속성이 사랑의 본질 중에 하나라면 종속을 원하는 사람이 종속을 거부하는 사람에게 할 수 있는 단 하나의 권력 행사는 상대에게 내어준 자신을 거둬들임으로써 상대에게 이별을 선포하는 방법 뿐이다.
그렇게 알렉스는 떠났고, 다비드는 남겨진다. 잔인한 여름이 그들을 통과한다.
Come back to me
And I know I was wrong
When I said it was true
That it couldn't be me and be her
In between without you
Without you
알렉스의 담담한 독백으로 시작하는 영화의 첫 장면에서 알 수 있듯이 알렉스는 죽음에 관심이 많다. 죽음에 관한 글을 쓰고 이미 지나가 버린 시간들 속에서 죽음의 흔적을 쫓는다. 알렉스의 이러한 죽음에 대한 관심은 아버지의 죽음을 통해 부재로 먼저 경험한 다비드와는 조금 다르다. 알렉스가 죽음을 하나의 현상으로, 생의 충동으로 인식하는 반면 다비드는 철저한 그리움과 존재의 부재를 알리는 죽음을 비웃으며 넘어서야 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약속한다. 둘 중에 하나가 먼저 죽으면 그 사람의 무덤 위에서 보란듯이 춤을 추기로. 다른 이유 없이 오로지 너를 위해서 말이다.
여름은 지나고, 사랑했던 존재는 더이상 나의 곁에 없다. 사랑만이 끝난 것이 아니다. 한때는 친밀했던 존재가 시체가 되어 존재의 부재를 알린다. 사랑하는 존재의 부재 앞에 놓인 주인공의 무기력과 상실감에 대한 테마는 오종의 전작 <프란츠>를 떠오르게 한다. 사랑하는 연인을 전쟁으로 잃고, 그 연인의 친구행세를 하는 남자를 통해 삶의 허상과 실체를 마주한 안나가 마네의 그림 <자살>(1877~81) 앞에서 생의 의지에 압도되고야 마는 그 장면은 여러모로 지금도 곱씹고 애정하는 장면 중에 하나다. <프란츠>가 좀 더 서늘하고 무거운 느낌의 생의 의지라면 <썸머85>는 십대의 첫사랑과 상실에 대한 테마 답게 따듯하고 가벼운 생의 의지를 알린다.
다비드의 무덤 위에서 'Sailing'에 맞춰 구애인지 몸부림인지 모를 춤을 추고, 칼립소에 새로운 남자를 태우고 바다로 나아가는 알렉스의 미소는 그의 엔딩 독백처럼 결국 죽음 앞에서도 우리는 나아갈 수밖에 없음을 시사한다. The cure의 In between days 가 영화의 엔딩곡으로 흐르며 이제는 존재하지 않는 너와 지나가버린 어느 시절의 시간, 돌이킬 수 없는 첫사랑 속의 나를 소환한다. 당신의 부재 앞에서 나는 더이상 나일 수 없으니 다시 돌아와 달라는 애절한 가사에도 불구하고 명랑한 멜로디가 알렉스를 추동한다. 네가 없이도 이 바보같은 삶은 계속 될 수밖에 없기에 과거를 지나 앞으로 나아가라고 말이다. 우리는 그렇게 아이에서 어른이 된다. 과거를 지나 앞으로 나아가는 수많은 시행착오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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