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를 수 없지만, 부르고 싶은 이름
나에게 엄마라는 존재는 방파제 같다. 혼자서 여기저기 표류하다 지치면 찾게 되는 안전하고 포근한 그곳. 내 딸에게는 그런 엄마라는 존재가 없었다. 나에게 엄마가 있다는 이유로 내 딸에게 엄마가 없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살았다. 나에게 아내가 없다는 사실은 인지하고 있었지만, 아이에게 엄마가 없다는 사실은 생각하지 못했다. 오늘 문득 엄마라는 존재가 생각이 났다. 그리고는 내 딸에게 엄마라는 존재는 무엇을 의미할까 생각하게 되었다.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부르고 싶어도 부르지 못하는 존재. 누구나 다 있지만, 하물며 아빠도 있지만 자신에게는 없는 엄마라는 존재. 그 사실에 대한 공허함을 전혀 알지 못했다. 느껴지지 않을 만큼 주변에서 사랑을 많이 준 것인지, 아니면 그저 아빠가 마음 아파할까 봐 티를 내지 않은 것인지 내가 알 길은 없다. 내가 만약 내 딸이라면 엄마라는 의미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여자 친구 H에게 아이는 어느 날부터인가 엄마라고 부른다. 그리고 어리광이 늘었다. 지금까지 이렇게 어리광을 부리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그래서 낯설기도 했고 왠지 싫지만은 않았다. 나는 그저 내 딸이 어리광이 없는 아이라 생각을 했다. 그런데 참았던 것이다. 아무도 받아주지 않았으니 그저 참았던 게 아닐까? 삼촌도 할머니도 그리고 아빠도 어리광을 받아주지 못했다. 이 조그만 아이는 바쁜 어른들을 위해 스스로 어리광을 포기했었나 보다. 우리 딸은 아빠의 선택으로 많은 것을 포기하고 살았던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
가끔 아빠에게도 옆에서 자겠다고 하는 날은 있었다. 그때마다 조금 불편했지만 흔쾌히 받아주었다. 그런데 H에게는 항상 같이 있을 때마다 옆에서 자겠다고 한다. 그리고 같이 자고 일어나면 꼭 하는 말이 있다.
"엄마 옆에서 자니깐 너무 좋아"
아이의 표정은 크리스마스날 선물을 받은 것보다 더 밝고 행복해 보였다. 아마도 아이에게 엄마라는 존재는 그저 동경의 대상이 아니었을까? 친구들의 이야기를 통해 상상으로만 어림잡아 느끼는 존재. 마치 우리가 어린 시절 상상 속 동물을 머릿속에 그리며 동경하듯, 내 딸은 엄마라는 존재를 상상으로만 만들어가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진짜 엄마가 아니라는 사실을 아이도 충분히 인지를 한다. 혹시라도 나 때문에 억지로 좋아하는 척을 하는 건 아닌지 하는 걱정에 조심스럽게 물었다.
"엄마한테 혼나면 기분이 어때? 싫어?"
"아니. 엄마가 나를 정말 사랑해서 혼내는 거 알아. 그래서 하나도 안 싫어. 그런데 엄마 화나면 무서워"
"왜? 어떤 점이 무서워?"
"엄마가 나를 싫어할 거 같아서 무서워"
"엄마가 왜 너를 싫어할 거라 생각해?"
"내가 잘못했으니까"
"그런 걱정은 안 해도 괜찮아"
생각지 못한 답변이다. 10살짜리 꼬마에게서 나올 말도 생각도 아니라 느꼈다. 요즘 아이들이 빠르다고는 하지만 정말 생각지도 못했다. 어쩌면 우리 딸은 엄마에게 꾸중을 듣고 온 친구들의 푸념이 부러웠을지도 모른다. 아빠, 할머니와는 다른 무엇인가가 있다고 생각했겠지? 그리고 그 생각이 맞았을 것이다. 내가 봐도 할머니와 아빠에게 듣는 꾸중과는 다른 무엇인가가 있다. 분위기와 잘못을 가르친 후 다독여주는 모습 등 무엇인가 다른 느낌을 나도 받았다.
이런 생각들을 하면서 마음이 뭉클해짐을 느꼈다. 어쩌면 괜한 생각일지도 모른다. 다 틀렸을지도 모르고, 아이는 전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을 수도 있다. 다만 나는 이혼의 고통은 나에게만 찾아오고 나만 이겨내면 된다고 생각했다. 큰 착각이었다. 이혼은 우리 딸에게도 고통이 함께 왔었다. 다만 그 고통의 종류만 다를 뿐이었다.
엄마가 없어도 행복하게 자라고 있다고 생각했다. 아니 앞서 말한 거처럼 아이에게 엄마의 부재를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어쩌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머릿속에는 '우리 딸에게는 엄마는 없어도 잘 자랄 수 있는 존재야'라는 무의식이 존재했는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우리 딸은 상상 속에 엄마라는 존재와 함께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마음이 저려왔다. 더 마음 아픈 것은 아빠가 엄마의 자리까지 다 충족시켜주지는 못한다는 사실을 너무 잘 알기 때문이다. 엄마가 필요했고 지금도 필요하고 앞으로도 필요하겠지만, 난 그 사실을 너무 잊어버리고 살았나 보다. 과거 엄마가 필요했던 시기를 지나치면서도 딸은 그런 내색을 전혀 하지 않았다. 그저 할머니가 좋다고 했고, 아빠가 좋다고 했다. 셋이서 평생 살고 싶다고 했던 딸이다. 그런데 갑자기 나타난 엄마라는 호칭은 그런 할머니와 아빠를 밀어냈다. 그만큼 우리 딸은 엄마가 부르고 싶었나 보다. 이제는 아빠랑 엄마랑만 살고 싶다고 한다. 그래서 요즘 할머니는 기분 좋은 푸념을 자주 하신다.
"실컷 키웠더니 아무짝에 쓸모없구먼!"
아무튼 오늘은 아빠가 아빠여서 미안하고, 아빠가 알아주지 못해서 미안한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