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고해성사를 할뻔했다.
모든 부모는 아마도 잊지 못하는 어떤 순간이 있을 것이다. 나도 많은 순간들 중에서 유독 잊히지 않는 순간이 있다. 2011년 11월 25일 딸이 태어났다. 나의 신생아 때 사진과 너무나도 똑같아서 감동보다는 놀람의 감정이 더 크게 다가왔던 순간이었다. 그러고 며칠 뒤 주먹을 꽉 지고 있는 아이의 손 사이로 조심스레 새끼손가락을 잡혀보았다. 따뜻했다. 그리고 힘차게 내 손가락을 쥐었다.
아이가 걸어 다닐 무렵부터 나는 안아주기보다는 손을 잡고 걷는 것을 좋아했다. 아빠의 욕심으로 내 딸은 나와 손을 잡고 많이 걸었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지만 걸을 때면 아이는 내 손가락을 쥐고 걸었다. 손을 잡기에는 내 손이 너무 크고 불편해서 그런지 몰라도 처음에는 새끼손가락을, 조금 커서는 두 번째 손가락을 잡고 걸었다.
뭔가 다른 느낌이 들었다. 나쁘지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서로 불편하지 않았다. 나는 아이 손이 빠질까 고쳐 잡지 않아서 편했고, 아이는 억지로 아빠의 큰 손을 잡지 않기 때문에 편했다. 부녀지간에 무언의 합의가 이루어졌다.
초등학교 3학년 이제 제법 손이 커졌다. 전처럼 손가락을 잡지 않아도 된다. 한동안 손을 잡고 걸었다. 그런데 얼마 전 잠깐 슈퍼에 가는 길에 아이가 나를 보며 씩 웃으며 손가락을 잡았다. 알 수 없는 따뜻함이 몸속으로 퍼졌다. 그리고 왠지 모르게 뭉클함도 느껴졌다.
손가락을 잡고 걷던 그 어린 날들을 잊고 살았던 모양이다. 그런데 아이가 다시 내 손가락을 잡는 순간 아이의 어린 시절이 떠올랐나 보다. 그리고 그 어린 시절에 옆에 있지 않음이 내 가슴을 마구 찌르고 있었다.
'아빠랑 손잡고 걷고 싶었겠지?'
내 글을 읽어본 분들은 잘 아실 거다. 나는 나쁜 아빠였다. 아니 사실 아빠라는 호칭이 과분할 정도로 아무것도 하지 않은 '사람'이었다. 결혼을 아직 하지 않은 삼촌보다 못한 아빠였다. 적어도 옆에 있어주는 것은 해줄 수 있었는데 해주지 못했고, 엄마도 없는 아이에게서 아빠가 아빠마저 뺏었다. 그런 나도 아빠라고 내 딸은 나를 그 오랜 시간 기다렸나 보다. 이제 10살인 아이에게 4년이란 시간은 일생의 절반에 가깝다. 그 기간 동안 나는 아이 옆에 있어주지 못했다. 아마 죽어서 천국에 가지는 못할 듯하다.
손가락을 잡고 걸었던 그 짧지만 따뜻했던 길이 나에게는 너무 죄스러운 길이 되었다. 후회와 반성의 길이 되었다. 그 사소함에 행복해하고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많이 아프다. 어느 아이나 아빠 혹은 엄마와 과자 사러 슈퍼에 가는 모습은 일상일 텐데 우리 딸은 그렇지 못했다. 그런 생각에 아이가 슈퍼에 간다고 하면 은근히 슬 적 따라나선다. 감정표현을 잘 못하는 아빠이기에 부끄러워 말은 하지 못하고 괜한 담배를 핑곗거리로 삼는다.
"아빠 담배 사러 갈 거야 같이 가"
"아싸~ 아빠 나 그럼 500원짜리 하나만 살게!"
"더 비싼 거 사도 괜찮아"
아빠를 무시하는 건 아니겠지만, 이 세상에 우리 딸만큼 아빠의 경제력을 과소평가하는 아이도 없을 것이다. 벌써부터 가격을 보고 물건을 고르는 모습을 보면 기특하면서도, 과거 가난한 아빠였던 내가 밉다.
"갖고 싶은 거 하나만 골라 아빠가 다 사줄게"
"응!! 고마워!!"
마트에서 장난감을 사주려고 던진 말에도 아이는 장난감을 보면서 '이건 너무 비싸서 안될 거 같아'라는 혼잣말에 냉큼 집어서 카트에 넣어버린 적이 몇 번 있다.
나의 과거로 인해 아이는 사소한 행복을 알아버렸다. 하지만 그만큼 행복이라는 것에 결핍이 있었다는 증거이다. 나는 내 행복을 찾으려고 떠났지만, 결국 우리 부녀는 모두 행복을 잃었던 것이다. 딸이 내 손을 잡았을 때 이 부족하고 철없는 아빠는 알게 되었다. 꼭 셋이 있어야 행복한 것이 아니라, 둘만 있어도 행복했었다.
아무리 열악한 환경이라도 그 속에서 행복은 충분히 존재하고 있다. 얼마짜리 과자인지 그 가격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저 아빠가 사주는 과자라는 사실이 아이에게는 중요했던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