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천 화재를 지켜본 뒤
대학에서 사회과학을 공부했던, 민족의 딸인 나는 아이들을 키우고 살림을 하는 와중에도 세상돌아가는 일에 여전히 관심이 많다. 민주주의의 꽃이라는 선거에도 적극적이며 정치인의 책무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다. 덧붙여 언론의 역할도 매우 중요하다고 여기는데 이런 관심을 딸들과 종종 나눈다. 딸들 역시 세상을 보는 눈을 길러서 이 사회를 올바른 방향으로 이끄는 데에 일조를 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어느덧 엄마보다 훌쩍 커버린 큰 아이는 글을 읽고 쓰는 것을 즐기는 탓에 저절로 '언론'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덕분에 큰 아이에게 기레기와 기자의 차이, 왜 언론이 바로 서야 하는지, 언론에 의해 세뇌된 국민이 얼마나 어리석은 선택을 하게 되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나눌 수 있다.
얼마전 제천에 큰 화재가 일어났다. 화재로 인한 피해와 유족의 슬픔에 안타까워 하고 슬퍼할 겨를도주지 않고 소방관의 대처가 적절치 않았다는 원색적 비난의 기사가 넘쳐났다. 사실관계가 명확히 파악되었는지도 분명치 않은 기사들이 우후죽순마냥 양산되는 것을 보자니 사실관계가 무엇인지 궁금증이 생기는 한편, 열악한 환경과 처우에도 국민의 목숨과 재산을 지키기 위해 몸과 마음을 다하는 소방관들의 노고가 떠올라 가슴이 아팠다.
그간 소방관에 대한 처우문제는 끊임없이 거론된 이야기다. 이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없이 특정 사건의 책임을 한쪽으로만 몰아간다면, 더구나 사실관계가 명확하게 파악되지 않은 추측성 기사라면 이는 기레기가 양산한 쓰레기라 생각했다. 큰 아이와 제천 화재 사건과 언론의 보도 행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뒤의 어느날 이야기다.
아이는 편지를 보내려면 어떤 절차를 밟아야 하는지 물어왔다. 얼핏 보면 다 자란 어른의 모습이지만 제 손으로 우편물을 보내 본 적 없는, 특히나 한국의 체신절차에 대해서는 완벽하게 무지한 딸아이는 정성스레 쓴 편지 한 통을 내밀며 제천소방서에 보내고 싶다고 했다. 아이는 엄마의 인도하에 가까운 우편취급소에 방문하였고 용돈으로 우표를 사 붙인 뒤 수줍게 편지를 보냈다.
편지를 보낼 방법을 몰라 몇날 몇일 가지고만 있었는데 편지 보내는 것이 이렇게 간단한지 몰랐다며 밝게 웃는다.
밝게 웃는 아이의 미소만큼 제천 소방서의 소방관들에게도 따스함이 전해졌으면 좋겠다. 화재현장에서 혹여 미흡한 대처가 있었을 수도 있고 실수가 있었을 지도 모르는 일이다. 하지만 그분들은 그분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제 한 몸의 안위보다 국민의 안전을 우선으로 여기며 사투를 벌였을 것이라 나는 믿는다. 우리 나라에서 소방관을 업으로 한다는 것은 그런 사명감없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닌 까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