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 인터폰이 울려 잠을 깼다.
아.....차빼야 겠다...
대부분 한 가구 당 두 대 이상 차를 보유하고 있지만 복잡한 서울 한 복판 아파트에서는 주차공간이 넉넉하지 않아 주차를 하려면 매번 전쟁을 겪어야 한다. 상상이상으로 퇴근이 늦은 남편, 열시가 넘어야 귀가하는 한국의 학생이 되버린 딸로 인해 오늘은 차를 댈 수 있을까 하는 스트레스가 만만치 않다. 어젯밤도 단지 몇 바퀴를 돌고 돌았지만 주차를 할 수 없었고 어쩔 수 없이 분리수거장 부근 작은 공터에 주차를 했다.
밤새도록 차를 몰고 다닐 수도 없는 노릇이고 지정 주차공간 외에 일렬주차까지 빼곡하게 되어 있는 좁은 길을 어두운 밤에 돌다 보면 접촉사고의 위험성이 높기 때문에 새벽에 일어나 차를 뺄 각오를 하고 주차를 한 것이다.
차키를 챙겨 나갔더니 아버지뻘 되는 경비아저씨께서 이른 시각에 인터폰을 했다며 연신 사과를 하신다. 경비아저씨 잘못도 아닌데 이 새벽에 일을 하시면서 딸같은 내게 머리를 조아리시는 것이 안타까워서 이곳에 차를 대서 죄송하다고 사과를 했다. 저만치에는, 내 차가 자리를 비켜주면 남은 일을 마무리하려 바삐 움직이시는 환경미화원 어르신들이 보였다. 어쩔 수 없었다지만 청소차를 정차시킨 뒤 일해야 할 장소에 차를 댄 사람은 나인데 그런 내게 미안한듯 인사를 하시고는 이내 시선을 피하신다.
왜 이분들은 저 연세에, 이 시각에 일을 하시면서 들켜서는 안될 존재처럼 시선을 피하고 숨으시는 것일까...청소차는 왜 새벽에 사람들이 활동하지 않는 시각에 움직이고 일하는 것일까
노인복지도 문제이고 일의 귀천을 심하게 따지는 풍토도 문제인 것 같다
아이들을 등교시키고 차를 돌리다 보면 학교의 쓰레기장이나 인근 아파트의 공용쓰레기장에는 커다란 청소차가 서있는 경우가 많았다. 그 바람에 청소차가 쓰레기를 치우고 떠날 때까지 잠시나마 기다렸다가 귀가하는 일도 잦았다. 청소차는 아이들이 등교하고 활동할 때, 사람들이 일하고 움직이는 시각에 움직였고 비록 내가 지나는 길이 막혀 잠시 기다려야 한다 해도 청소차는 일이 마무리될 때까지 제 일을 하면 그만이었다.
그리고 세월의 무게조차 버거워 보이는 어르신들이 아니라, 무거운 쓰레기를 처리하기 적당한 신체건장한 젊은 남성들이 청소차 주변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식당이 많은 동네에서는 배출되는 음식물쓰레기만도 엄청나다고 들었다. 업소용 쓰레기봉투에 담긴 쓰레기는 상당히 무겁다고도 했다. 가정집 쓰레기라 해도 많은 가구의 쓰레기를 처리하려면 힘 좀 쓸 줄 알아야 수월할 것임은 분명하다.
왜 우리 나라에서는 새벽에 청소차가 다니는 것일까? 내 집 옆에 별도로 마련되어 있던 넓디 넓은 개인차고보다 밝은 날 운행되단 청소차가 더욱 그립다. 형광색 작업복을 입고 일하던 젊은 미화원들의 커다란 어깨가 오늘 새벽 차를 옮기며 슬쩍 본 미화원어르신의 둥글게 굽은 등뒤로 겹쳐 보이면서 왠지 마음이 짠하다.
환경미화원 아버지께서 일을 하시다가 쓰레기에 섞인 깨진 유리에 다치시는 일이 많다며 이런 쓰레기를 버릴 때는 치우시는 분들이 다치시지 않도록 주의해서 버려달라는 글이 인터넷에 올라와 있었다. 마침 오늘 아침, 글을 읽은 나는 내가 함부로 버린 그릇이나 유리컵때문에 다치신 분이 있었을까 미안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