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튜디오 지브리, 미야자키 하야오
덕후가 아닌 일반 사람들에게도 익숙한 이름이다. 혹시라도 이 이름이 생소하다면
토토로는 아시나요?
다소 우수꽝스럽게 걸음을 옮기던 하울의 성은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요?
빗자루 타고 다니던 마녀배달부는 기억하세요?
포뇨포뇨포뇨~~~~ 노랫말 기억하시죠?
하나하나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로 오랜 기간 우리에게 만화의 대명사처럼 자리잡았던 스튜디오 지브리의 작품들이다. 세상의 흐름에 따라 역사의 뒤안길로 물러섰지만 이제부터는 전설로 기억될 터이다.
세종문화회관 미술관에서 스튜디오 지브리 전시회가 한창이다.
토요일 오후여서인지 입장권을 구매하려는 줄이 제법 길다. 역시 지브리구나 싶은 생각에 고민없이 그 대열에 합류했다.
데스크에 다가갈수록 긴 줄의 까닭이 분명해졌다. 지브리의 명성과 인기때문이 아니라 발권시스템이 문제였다. 발권을 할 수 있는 자리와 장비는 네 군데 정도인데 발권을 하는 직원은 단 한 명, 앳되 보이는 여자분이 발권을 하느라 애를 먹고 줄은 좀처럼 줄어들지 않는 동안 주변을 어슬렁거리는 남자분 둘, 대리급, 과장급 정도의 연배로 추정된다. 그리고 바로 옆에 표를 확인하겠다는 청년 둘이 서 있다. 표를 사자마자 청년들에게 표를 보여주고 그들을 지나쳐 두어발자욱 가면 젊은 여자분이 또 덩그러니 앉아있다.
인원은 넘쳐나는데 줄은 길고 발권하는 사람만 애를 애를 쓴다. 내가 담당자라면, 줄이 길어 불편을 겪고 있는 상황이 지속되도록 두지 않고 덩그러니 앉아있는 여자분이나 표를 보겠다고 서있는 청년을 활용해 발권인원을 늘리겠다.그들은 그들의 일만 해야 한다고 매우 엄격한 규정이 존재한다면 대리고 과장이고 부장이고 간에 내가라도 발권을 하겠다.
한 명만 더 투입해도 두배의 속도로 줄이 줄어들텐데 어슬렁거리기만 하는 그분들은 도대체 무얼 위해 어슬렁거리고 있는지 모르겠다. 발권과 입장사이에 거리는 도보 대여섯발자욱. 발권과 티켓검사 사이의 거리는 한 두 발자욱.
뻔히 눈앞에서 표를 산 사람에게 표를 봅시다 하기 위해 두 사람이 서있는 것도 우습고 여러모로 합리적이지 못해 보였다. 무슨 그들만의 사연이 있으려니 이해해 보기로 한다.
들어서자 마자 벽면에는 스튜디오 지브리라고 적혀 있고 몇몇 사람들은 이 벽과 티켓을 찍으며 인증을 하려는 모양이다. 덩그러니 앉아만 있던 여자분의 역할을 그제야 알게 되었다.
여기서부터 사진찍으시면 안됩니다!
이게 뭐라고, 이것도 못찍게 하나 싶지만 그래도 아무일도 안하고 앉아 있는 사람이 아니란 것을 알았으니 만족하기로
토토로가 카페의 bar너머에서 귀여움을 발산하고 있다. 사진 못찍는다. 만져서도 안된다. 곁에 가서도 안된다. 멀리서 바라만 봐야 하는 먼 그대 토토로
규칙은 규칙이니지켜야지, 그저 바라보며 아쉬움 가득 안고 발길을 돌린다. 아이는 너무나 아쉬운지 자꾸 뒤를 돌아본다.
엄마폰은 찍어도 소리안나는데 몰래 찍어줄까?
미국에서 구매한 나의 폰은 아무 소리없이 사진촬영이 가능하다. 바로 옆은 아니지만 아이뒤로 카페안 귀여운 토토로를 두고 찍어주는 것 정도는 걸리지 않고 해줄 수 있다. 아이가 거절할 것이라는 것을 알고 부러 한 번 해 본 소리지만 아이가 찍겠다고 했으면 몰래 찍어주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만큼 아이의 눈에는 아쉬움이 가득 차 있었으므로
다행스럽게도 아이는 규칙을 지키자고 촬영을 거부했다. 고맙다, 딸. 엄마는 나쁜 사람이야
포스터와 기사들 각종 자료가 벽면에 전시되어 있다. 연대라던가 작품의 설명 등을 안내해는 자료가 매우 부실하고 부족하다. 아마 방문한 모두가 지브리의 덕후라고 생각한 모양이다.
하릴없는 발걸음은 이층으로 향하고 이제부터는 사진을 찍을 수 있다는 것에 안도한다.
사진을 찍을 수 있다는 사실이 기뻐서 그리고 이층은 좀더 나를 격렬하게 흥분시킬 것이라고 최면을 걸며 인증샷을 남긴다.
덩그러니, 영상이 흐른다. 전시의 컨셉은 덩그러니인가보다.
다른거 다 별로여도 이거 하나 건지면 생각했는데 좁아터진 공간에 구겨넣어서인지 웅장함과 멋짐을 느낄 수는 없었다. 이걸 왜 이런 식으로 매달았지 의문만 가득 안고 또 발길을 돌린다.
다른 사람들이 사진찍는 것을 방해하면 안된다고 곁으로 돌아가 사진을 찍는 딸을 보며 유년기의 질서교육이 얼마나 중요한지 생각해 보았다. 다 큰 어른들도 누군가가 보고 있거나 말거나 사진을 찍는 중이거나 말고나 내가 좀 보겠다고 내 새끼 좀 보여주겠다고 야단법석인 것을 보면서 말이다. 어차피 볼 것이 많지도 않아서 하나하나 외우며 볼 기세가 아니라면 삼십분안에도 충분히 관람한데 다들 너무 급하다
짜증의 절정 고양이...
이게 뭐라고 줄이 길다. 2분마다 15명씩 들여보내고 2분동안 자유롭게(?) 사진을 찍고 2분만에 나가라는 시스템이다. 누구랄 것 없이 선착순 구호품을 위해 달리듯 뛰쳐들어간다. 그간 서있던 줄은 왜있는지도 모르겠고 누구 하나 온전한 사진을 건지지 못한 체 십여명의 사람이 배경으로 버티고 있는 고양이와 사진을 찍는다. 차라리 일행마다 사진찍고 나가면 다음 일행이 사진을 온전히 찍고 나가는 것이 나아 보인다.
딸아이는 우르르 달려가 경쟁적으로 서로의 사진을 방행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아 다른 사람이 사진을 찍으니 방해되지 않게 기다리겠다며 근 이분을 서서 기다렸다. 주어진 이분이 다 되어가니 그나마 사진을 찍을 수 있는 몇 안되는 전시품을 놓치려나 싶어 아이처럼 유년시절의 질서교육을 받지 못한 엄마는 슬슬 짜증이 난다.
너도 그냥 옆에 가서 서 봐
참지 못하고 한 마디했는데 눈치가 없는것인지 아이는 여전히 서서 기다린다. 난리통을 방불케 하는 고양이주변의 사람들과 그저 서서 기다리는 아이의 간극만큼 짜증이 치밀어 기어이 아이에게 짜증을 내고 말았다.
네가 여기서 기다린다고
어느 누구도 너를 위해
시간을 내어주거나 배려하지는 않아!
아이가 살아왔던 방식, 교육받았던 방식과 다른 이곳의 방식을 강요하게 되는 내가 싫어지는 순간이었다.
엉성한 전시기획도 싫고 합리적이지 못한 운영도 싫고 가르쳐온 방식과 다른 방식으로 약게 굴라고 강요해야 하는 것도 싫다.
사람많은 곳에 가기 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