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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ary 8th

선택 , 그리고 선택의 결과

by Someone

내가 홀로 피렌체를 향한 것은 아마도 “냉정과 열정사이”, 준셰이와 아오이의 엇갈린 사랑, 엇갈릴 수밖에 없었던 그들의 사정과 최고일 수 없지만 최선이었던 선택의 결과로 그들이 그렇게 먼 길을 나서야 했다는 것, 그리고 그 선택과 걸음은 그들 인생에서 언제라도 먹먹하고묵직하게 존재한다는 것에 너무도 깊은 공감을 했기 때문이다.

사람은 자신의 경험과 감정을 비추어 연상되는 무언가가 있을 때 공감하게 되고 그 경험과 감정이 진할수록 깊은 공감을 하게 된다. 나 역시 누구나 하나쯤 품고 있을 그런 사람이 있었다.


언제부터일까, 처음 본 순간부터는 아니었던 것은 기억난다. 그리고도 한동안은 몰랐다. 해장해야 한다고 아침마다 짬뽕사달라며 나를 찾던 때부터였을까, 술에 취하면 늦은 밤에도 내게 전화를 하던 그때부터였을까, 핸드폰도 없던 그 시절에 한밤중에 울리는 전화벨, 우리 아버지는 예의없는 놈이라 늘 화를 내시곤 했다.그래도 근본이 예의바르고 반듯한 이라 “안녕하세요. 00 친구 000 입니다. 00 랑 통화할 수 있을까요”


매우 언짢은 표정으로 아버지는 나를 불렀다. 가시방석에 앉은 듯 아버지 눈치를 보며 전화를 받곤 했다. 단 한번도 특별한 용무는 없었다.


도서관에서 공부하던 내가 에어컨바람에 추워보였는지 말없이 점퍼를 덮어주고 돌아간 그때였을까, 매일 저녁 전화기를 붙들고 평생무료 무제한 요금제를 뼛속까지 우려먹을 기세로 밤새 통화하던 그때였을까, 눈앞에서든 어디 다른 곳에서든 술에 취해 있는 나를 구하러 달려와주던 그때였을까, 우리집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밤을 세우던 그때였을까.


너무나 긴 시간, 너무나 많은 일들을 함께 해서 언제부터인지 도저히 알 수 없지만 그때도 지금도 분명하게 느낄 수 있는 것은 우정이상이었다는 사실이다. 자기 자신의 감정이 사랑인지 몰랐고 상대의 감정이 사랑인지는 더더군다나 몰랐기때문에 우정이라고 가두었다. 우정마저 잃고 싶지 않다는 두려움에 우정의 이름은 더욱 견고해졌다. 그렇게 십년쯤 되었을 때 견고할 것만 같았던 그 이름이 흔들렸다.


그 방식이 그의 용기였을지 모른다는 것을 아주 오랜 시간이 흘러서야 알게 되었다. 더 큰 용기를 낼 수 없는 이유가 그에게 있었다는 것도 아주 오랜 뒤에서야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가 낸 용기를 알아채지 못하고 오해한 나를 보며 그는 거절이라고 받아들였다는 사실도 함께 알게 되었다.내가 너무 보고싶어서 우리집이 어디인지도 모르면서 내가 타고 집에 가던 버스에 무작정 오르기도 했다는 걸 그가 버스에 오른 후 삼십여년이 지나서야 알았다. 내가 그의 이상형이었다고, 무척이나예뻐서 반했었다는 것도 너무 늦게 알았다.


거절은 아니었다. 우정이 사랑으로 이름을 바꾸려면 무언가 확실한 정의가 필요했지만 정의를 해주지 않고 다가오는 그를 이해하기 어려웠을 뿐이다. 거절이라 여긴그는 나를 내려놓기 시작했던 것 같다.


그즈음 나는 정의없이도 이어지는 관계를 찾아나섰다. 그와의 지지부진한 이 늪에서 벗어나겠다고 결심했던 것 같다. 평생 무료로 사용할 수 있던 핸드폰을 돌려 주고 그의 차에 가득한 내가 즐겨듣던 음악CD를 쇼핑백에 꾹꾹 눌러담아 챙겨왔다. 그는 날 잡지 않았다. 용기를 내지 못한 것과 같은 이유였을 것이다.


나는 빠르게 결혼을 준비했다. 너무 빠른 진행으로 아무도 나의 결혼을 알 수 없었다. 결혼을 하고 나면 모든 것이 정리되고 행복한 날들이 나를 기다릴 거라 생각했다. 그 사이 그는 여전히 친구로 있으면서도 무의식중에 손을 내밀었다. 결혼할 사이라고 손잡고 같이 누군가를 만나달라고 여러 번 얘기했지만 그저 농담이라고만 생각했다. 결국 그는 같이 만나 달라 한 그녀와 나와 같은 해에 결혼했다. 그 사이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그또한 나중에 알게 되었다.


하지만 그렇게 각자의 길을 걸으며 그 안에서 최선을 다했다. 내가 그랬듯 그도 그랬을 것이다. 오래 겪어 잘 알고 있는 한 인간에 대한 신뢰고 믿음이다. 그리고 그는 그런 사람이다.


몇해 전, 그런 그가 멀고 먼 길을 돌아 그는 이제사 모든것들을 쏟아냈다. 그는 그의 고백을 후회하지 않는다 했가. 하지만 그 고백들이 나를 이렇게 힘들게 만들거라면 끝까지 참고 묻었어야 했던 것 같다고 아파했다.나 역시 사랑하는 내 가족이 소중하기에 그의 고백은 아무 것도 바꿀 수 없기에 나는 힘들었다. 차라리 영원히 몰랐으면 좋았을 거란 생각도 들었다.


그럼 이런 마음을 겪지 않아도 되었을텐데.. 그가 이렇게 비겁한 줄 모른 채 살아갈 수 있었을텐데, 한없이 따뜻하고 다정했던 그로 기억할 수 있었을텐데…


지금도 생각한다. 친구로 지냈던 십년 중 단 한 번이라도 우리가 서로의 마음을 확인했더라면 어땠을까, 아니그가 용기냈을 때 내가 그를 받아들였다면 어땠을까, 그가 내미는 마지막 손을 잡았더라면 어땠을까 우리는 아픔을 겪지 않았을까, 어쩌면 그때 다 아프고 지금은 단단한 딱지가 생겼을 것 같기도 하다.


무의미한 질문과 가정을 수없이 하고 있다. 그가 한참을 돌아돌아 내앞에 서서 당시의 그가 어떤 마음이었는지 고백한 순간부터 지금까지 수없이 되묻고 그때의 내선택이 옳았는지, 그게 최고의 선택이었는지 반문하고 후회하곤 했다.


내가 그때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

어떤식으로든 달리 살아가고 았을 것이며

이런 일을 겪지 않았을텐데…………….

그래서 이렇게 가슴에 구멍이 뚫린 것마냥 아프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고 그에게 실망하는 일도 없었을 텐데


결국 또 후회를 한다.

더 큰 문제를 막기 위해 이런 아픔과 실망을 택했다. 최고는 아니지만 최선의 선택이었다. 나에게도 그에게도 최선이다.


하지만 구멍난 나의 가슴이 다시 어떻게 채워질 수 있을지 방법을 모르겠다.


채워지기는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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