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화 막막함에 지지 말자.

그날 난 뭐라도 해야 했다.

by Aeree Baik 애리백


막막하고 답답했다. 모아 놓은 돈도 없었고, 계획도 없었고, 장기적 비전도 없었다. 앞으로 나는 무엇을 긍정하며, 무엇을 목표하며 살 수 있을까.

약아빠지지 못해서 꼭 바닥을 보고야 만다. 사회생활은 자아를 깎아내리는 양상의 연속이었다. 쌓아가는 삶이 아니라 날려버리는 인생이다. 그때 생각했다. 지금 나는 스스로를 착취당하도록 내버려 두고 있는가, 나는 절대적으로 유일하다. 재생도 되지 않는다. 난 몇 년째 스스로를 파 먹고 있다.. 이건 나를 소멸시키는 길이다.


이러한 의구심이 들었을 때 나는 극심하게 변화를 갈망했다.


그때 서랍을 열어 깊숙이 넣어 두었던 여권 첫 장을 펼쳐 여권 만료일을 확인했다. 이때 즈음이었단 걸 무의식은 어렴풋이 기억하고 있었던 것일까.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일주일 앞으로 다가와 있는 여권 만료를 갱신하러 마포구청에 갔다. 방금 찍은 여권 사진을 손에 들고서. 이 모든 것이 단 하루에 이루어졌다.

앞으로의 일을 감당할 현실 감각도 없어서, 현재의 나를 갱신하기는 힘들었다. 수많은 조건과 스펙이라 불리는 숫자들에 도저히 나의 능력은 따라주지 않았다. 엄두가 나지 않는 걸 어쩌란 말인가. 하지만 난 일단 무언가를 해야 했다.


자그마치 11년이 지난 지금, 내가 가장 첫 번째로 잘한 것이 그날 여권을 갱신한 일이다.


일을 하면서 틈틈이 유학원 상담을 받았다. 어학원을 등록해 영어 작문 연습을 했다. 곧이어 비행기표를 구입하겠다 마음을 먹는다. 나는 마음이 급했다. 시간을 허비할수록 나이가 많아지고 있다. 나이 많은 여자는 어느 직장에서나 부담스러워한다고. 여유를 갖고 완벽한 계획을 도모하며 차분하게 시간을 보낼 만큼 난 더 이상 어리지 않다고. 그 시간에도 난 나이 들고 있다고. 마구 조바심이 났다. 나는 겨우 20대 중반이었지만 사회생활을 하며 받게 된 나이 강박이 강했다. 사회생활의 아이러니는 나이에서 시작되는 듯했다. 어리면 어리다고 몹시 함부로 대했으니.

가장 저렴한 표를 찾기 위해 여행사 사이트를 샅샅이 훑었다. 가격 산출에도 흐름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여행 성수기에서 비수기로 전환이 되는 날이 정해져 있다는 걸, 그 날짜가 정확히 언제인지 찾게 되었다. 겨울 방학이 끝나고 여행 시즌이 마무리되는 그날로 날짜를 선택해 긴장되는 마음으로 발권을 했다. 정확히 2월 2일, 비행기표는 바로 전날보다 수십만 원이나 저렴했다.

선택한 비행기표는 편도였다. 돌아오겠다고 정해둔 날짜가 없어서 왕복으로 끊을 수가 없었다. 처음부터 이 계획의 불확실성을 늘 염두에 두고 있었다. 여정의 끝이 6개월이 될지, 1년이 될지, 알 수 없었다. 은행 잔고가 바닥나는 날이 될지, 혹은 그 이후 어느 날이 될지 나는 지금의 출발지로 돌아올 날을 도저히 가늠할 수 없었다. 혹은 그 이상을 갈망한 내 안의 ‘배수의 진’이었달까. 지금 생각해보면 그렇다. 이상하게도 그것이 내게 불안감을 주기보다는 일종의 쾌감을 주었다. 이상한 심리로 약간의 호기를 부렸다. 될 대로 될 것이다. 그러니 한계를 정해놓지 말고 가는 데까지 가보자.

인천 국제공항(ICN)에서 미국 로스앤젤레스 국제공항(LAX)으로 가는 편도 비행기를 타고 출발했다. 가족에게도 정확히 몇 월의 어느 날 내가 이 공항으로 다시 돌아오겠다고 기약할 수가 없었다. 친구들은 응원해주면서도 많이들 아쉬워했다. 가족들은 오히려 담담했다. 짐은 단출했다. 바퀴 달린 여행 가방 딱 하나였다.


이후 계속되었다. 다시 편도 비행기를 타고 내륙과 대륙을 오갔다. 한 달 후엔 LA에서 샌프란시스코로, 석 달 후엔 또 뉴욕으로 편도 비행기 편을 끊어 이동했다. 난 매우 빠른 속도로 새로운 환경을 익혔고 즉흥성을 즐겼다. 내 앞에 무엇이 나타나든 떠나 있는 동안 한국은 돌아보지 않았다. 속독으로 문제지를 풀듯이 하나씩 해결했다. 혹은 그 이외의 선택의 여지가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어느 날 나는 가족들에게 이메일을 적는다.


“10월 5일 저녁 6시 30분 비행기 탑니다.
출발지는 뉴욕, 목적지는 스위스 제네바입니다.”


다음날 나는 계획대로 제네바 공항에 도착한다. 스위스 제네바에 위치한 국제 NGO 본부 근무를 시작하러. 한국을 떠난 지 8개월 만의 일이다.


그때까지만 해도 전혀 상상하지 못했다. 내가 앞으로 국제기구에서 근무하게 될 것이며, 유럽연합의 모든 국가를 수차례 여행하고 영역을 차츰 늘려 중동과 남미, 아프리카로 여정을 넓히게 될 줄은. 그날 마포구청에 가서 갱신한 그 여권으로 말이다.


난 갈망한 것뿐이다. 이게 끝일 수는 없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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