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화 증명해야 한다. 모든 경계를 넘어가는 걸음마다.

그것을 체득하기까지 조금 피곤할뿐

by Aeree Baik 애리백

제네바 도착 3일 뒤, 내 이름으로 발급된 체류증을 찾아오기 위해 이민국에 가야했다. 기관의 명칭은 Office cantonal de la population et des migrations (OCP)이다. 해외 거주 혹은 유학 등의 이유로 외국에서 체류를 하게 된다면 그 첫번째 관문이 체류 허가증 발급이다.


체류증을 보유하고 있지 않다면 불법 체류자가 된다. 애석하게도 이 세계는 한 뭉텅이가 아니다. 각 국가는 점령선이 정해진 국경이 결정되어 있고 눈으로 볼 수 없는 그 경계를 넘나 들려면 국가 공증 여권이 필요하다. 내 국적이 아닌 지역에 장기 거주를 하려면 그 나라의 허락이 다시 필요한 것이다.


오만가지 서류가 모두 구비되어야 그 나라에서 겨우 자리를 잡고 기거할 수가 있다. 경계에 걸쳐 있는 삶이 그렇게 시작된다.


체류증이 없으면 월세를 구할 수도 은행 계좌를 개통할 수도 없다. 장기 체류증이 없는 시민은 이름 없는 거주자로 존재한다.

이후 국제 기구에 근무하며 우리팀에서 3개월 기한 인턴을 선발했던 적이 있다. 영국에서 석사 학위를 방금 마친 나이지리아인이었다. 우리와 일하는 3개월 인턴 계약 기간도중 영국 체류 비자가 만료된다고 했다, 그치만 본인은 이제 석사 학위 보유자이기 때문에 하등 걱정 없다고.


이 사실을 알게 된 옆팀 같은 나이지리아 국적 동료가 그 인턴을 불러다 강하게 주의를 주었다. ‘비자 문제 우습게 보지 마라. 스위스 체류 중에 영국 비자 만료되면 넌 여기 인턴 마치고 다시 영국으로 입국하지 못 할 수도 있어.’ 그 친구는 한달만에 인턴십을 종료하고 급히 영국으로 돌아갔다.

내가 길을 잘못 들어 아찔했던 순간도 있었다. LA에서 일본인 친구들과 함께 차를 렌트해 샌디에고를 다녀오던 중이었다. 운전하던 내가 고속도로를 하행선으로 잘못 진입하는 바람에 곡절을 겪으며 당도한 곳이 있었다. 톨게이트였다. 국제 경계선 International border라 커다란 표지판이 적혀있었고 수백대의 차가 빽빽하게 줄지어 서 있었다. Border? border라는 단어의 뜻을 몰랐다. 거긴 멕시코 국경이었던 것이다. 우리는 일제히 창문을 내려 창밖으로 마구 손짓을 해대며 비상등을 켜고 유턴해 겨우 차를 돌렸다. 여권도 학생 비자도 없이 미국-멕시코 국경을 넘으면 우리는 바로 국제 미아가 된다.

내 국적이 아닌 영역을 밟고 지나 가려면 모든 족적을 증빙해야 한다. 외국인으로 살다보면 현재의 나를 둘러싼 많은 것들을 증명해가며 생활해야 한다는 것을 이제 나는 무겁게 받아들인다. 가능한 모든 법적 서류를 동원해 스스로의 존재를 입증해가며 산다는 일은 결코 가볍지 않다. 그간의 경험으로 체득했다.

몇해 전, 집으로 배달된 소포가 우편함에서 도난당하는 바람에 난 보험사 제출용 서류를 받으러 동네 파출소에 가게 된다. 그곳에서 주소지 정보를 열람하게 되었는데, 경악스러웠던 그 순간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경찰 신원조사에서 내 이름 옆에 적혀 있는 국적란, 그곳에 Corée du Nord라고 기록되어 있었다. 대체 몇년동안 ‘북한 인민’으로 기입되어 있었단 말인가.. 세상에, 스위스 경찰과 함께 기록을 수정하며 가슴을 쓸어 내렸다. 도난당한 소포가 심지어 고맙기까지 했다.

내가 제네바에 오기 몇달 전, NGO 합격 소식을 연락 받고도 여러 달이 지났지만 스위스 체류증 발행이 지연되어 마음을 졸였다. 뉴욕에 있을 당시 스위스 워킹 퍼밋 발급을 대기 하는 기간이 실재했었다. NGO와 약속된 예정 계약 기간이 이미 시작되었어야 할 시기였다. 제네바에 오기 전의 일이다. 입국이 근 한달이 지연되었다. 선임자들이 모두 8월 말일에 스위스에 입국하여 9월 첫주 근무를 시작했는데 내 경우 8월엔 감감무소식, 9월이 되자 슬슬 걱정이 되었다. ‘혹시 합격 취소가 되는 건 아니겠지? 맡을 프로젝트는 이미 일정이 정해져 있는 일인데 나 때문에 준비가 미뤄지고 있다니. 큰일이다.’

이를 위해 뉴욕에 있을 당시 여러가지 서류를 한국에서 공수했어야 했다. 가령 경찰청에서 발급 받아야 했던 이름도 무시무시한 <범죄 경력 증명서>.


회사 생활을 하며 <경력 증명서>는 요청한 적이 있어도 ‘범죄 경력’을 스스로 증명하라니 이건 대체 무슨 의도인가 말인가!


국제 우편을 통해 여러 편의 서류 봉투가 오갔다. 내가 빈 라덴도 아닌데 이렇게 긴장될 수가 없었다. 몹시 초조했다, 설마..


이상하게도 <범죄 경력 증명서> 발급이 지연됐다. 대체 왜! 내가 설마 범죄 경력이 있었던가, 스스로를 의아하게 돌아보며 동네 교회에 찾아가 잠시 기도를 드렸다. 주여, 저의 은밀한 범죄는 주님만이 아십니다.. 결코 큰 건은 없었어요.

경찰청에 국제 전화로 수소문한 결과 내 문의에 대한 대답이 나왔다. 서류를 보낼 주소지와 우표가 수취인 부담이었던 것이 원인이었다. 내가 뉴욕에서 보낸 서류 신청서 봉투엔 내가 분명히 꼼꼼히 챙겨 첨부해 넣어 놓은 국제 우표가 있었을텐데, 한국 경찰청에서는 이게 뭔지 판명이 나지 않은 모양이다. 영어와 불어로 적혀있던 규격 엽서 크기의 국제 표준 우표는 내가 봐도 생소한 종이 조각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서류가 도착했다. 다행히 나는 범죄 경력이 깨끗했다, 휴우...

그사이 전임자인 제임스에게서 연락이 왔다. 스위스 이민국 확인서와 입국 비자를 위한 서류를 발송했으니 그 서류를 들고 스위스 영사관에서 입국 비자를 받으라는 소식이었다. 하지만 기다리고 또 기다려도 서류는 도착하지 않았다. 재촉 메일을 NGO에 보냈다. 제네바에서 보낸 해외특급배송 UPS가 이미 네 주소지로 도착했다는데 왜 서류를 받지 못했느냐는 답변이 왔을 뿐이다.

원인은 내게 있었다. LA에서 한달반을 체류하는동안 NGO 지원 서류를 스위스로 발송했고, 샌프란시스코에 2개월을 머무는동안 합격 소식을 받았으며 현재의 나는 뉴욕에 머무르고 있었던 것이다. 거처를 계속 바꾸고 있으니 이전 주소지로 서류가 도착했을 줄은 꿈에도 몰랐던 것이다. 한참 뒤에 LA 거주 당시 함께 지냈던 홈스테이 가족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UPS로 우편물이 도착했다는 소식이었다.

이쯤되니 나의 본성이 깨어나 NGO에 협상 카드를 내어 놓기 시작했다. 한국인이 유럽 입국 시 별도의 비자가 굳이 필요하지 않다, 관광 무비자 협약이 있기 때문이다. 나만 믿어라! 일단 무비자로 스위스에 입국 하겠다. 원래 이런 방식도 무방하다. 이후에 체류증을 받으면 되지 않겠는가. 충분히 괜찮을 수 있다. 사무실에서 단번에 대답이 왔다, 단칼 거절.


당신은 근로의 목적으로 유럽에 오는 것이니 관광 비자/무비자로 입국하면 반칙이다, 적법한 절차로 서류를 구비하여 올 것.


그러던 어느날, 뉴욕에 놀러온 선배와 거리를 쏘다니던 중 휴대폰 메시지를 확인하게 되었다. 당신의 서류가 모두 구비되어 심사를 마쳤다. 스위스 이민국에서 LA 영사관에 보냈던 서류는 현재 뉴욕 스위스 영사관에 송부했다. 당신은 뉴욕 스위스 영사관에 가서 스위스 입국 비자를 받으면 된다.

그 다음날 나는 뉴욕 브로드웨이에 위치한 스위스 영사관을 들러 입국 비자를 여권에 부착했다. 그리고는 당일날 저녁, 제일 저렴한 비행기표를 검색해 스위스 제네바행 비행기표를 발권한다. 런던을 거쳐 제네바에 도착하는 브리티시 에어라인이었다.

제네바 도착 그로부터 3일 뒤, 나는 체류증을 찾아오기 위해 이민국에 갔다. 기한이 정해져 있는 L permit, 1년이 채 되지 않은 단기 거주증이었다. 365일에서 단 이틀이 모자라는 거주증, 이제 난 명실상부 ‘외국인 근로자’다.


L permit이라는 스위스 단기 거주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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