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화 내 집은 어디인가

어차피 선택지는 없다, 어서 적응하는 수밖에

by Aeree Baik 애리백

막연한 미래를 생각하며 불안감과 초조함을 느끼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오늘밤 잘 곳이 정해져 있다는 것에 안도하고 깨끗한 물에 발을 씻을 수 있다는 사실이 어느 순간엔 큰 위안이 된다. 5년 뒤, 10년 뒤를 바라보는 것은 고사하고 말이다. 당장 1년 전에는 내가 현재 이 시점에 어느 자리에 어떻게 서 있을지 가늠하기가 불가능 하지 않았나. 하물며 무슨 재주로 10년 뒤를 분간 하겠는가. 나는 그랬다. 1년 뒤의 모습을 그려보았겠지만 차마 그것에 확신하지는 못했다. 그저 마음은 조급했다.

하지만 다행인 점도 있다. 많은 일들은 수많은 돌발 상황을 겪으며 단련이 되어 가는 것 같았다.

나는 나의 여정이 방랑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순례라고 여겼달까. 이유가 있겠지, 답이 있을 거야. 당장 알지 못할뿐.


여행을 하고 낯선 곳을 떠돌면서 나는 오늘 내가 머무는 곳이 내 집이다 생각하기로 마음 먹었는지도 모르겠다.


한국을 떠나 LA에서 1개월반, 샌프란시스코에서 2개월, 그리고 뉴욕에서 5개월을 보냈다. 남의 나라에서 계절이 바뀌는 것을 체험하는 것은 무척 흥미로운 사건이다. 그것은 곧 신나는 일이 펼쳐질 거라는 기대감이 부풀어 오르는 일이다. 신문을 펼치면 새 계절의 여행 프로그램이 소개되어 있고, 뉴욕의 전광판은 매번 화려하게 바뀌었다. 한여름 밤 브라이언트 파크에선 야외 영화 상영이 매일같이 있었고 난 그 옆 뉴욕 라이브러리에서 매일 책을 읽었다. 그사이 패션위크가 끝나자 링컨 센터의 오페라는 새 시즌이 시작되었다. 새 계절엔 생각지 못했던 축제가 폭죽 터지듯 펑펑 떠오른다. 난 그 설레임을 만끽했다. 재즈와 뮤지컬 공연을 관람하며 새 친구가 생기는 게 좋았다. 단지 한 가지, 그곳이 내 집이 아니라는 안타까운 명제는 남아 내 마음을 꾸준히 흐트려 놓았다.


남의 나라에서 계절이 바뀔 때까지 시간을 보낸다는 것은 축적해 놓은 경비가 솜사탕이 증발하듯 없어진다는 뜻이기도 하다. 세상에는 소모되기만 하고 재생되지 않는 존재들이 있다. 시간과 돈이다.

시간이 가면 머리카락이 자라고, 먹고 싶은 것이 생긴다. 계절이 바뀌어 가며 아침 저녁으로 온도차가 달라질 때, 덥고 추운 날씨를 지탱하려면 옷을 사야 한다. 추우면 추운대로 더우면 더운대로 옷을 사야한다. 즉, 돈이 나간다. 옷과 신발을 좋아하는 내가 ‘나의 옷장’이 없이 남의 나라에서 장기간의 체류를 해왔다는 것은 꽤나 심화한 득도의 과정이나 다름 없는 일이다.



세일하는 GAP에서 구석구석을 뒤져 10불짜리 옷을 사입었다. 내가 옷 고르는 안목이 좀 있지. 그리고 계절이 바뀌면 중고샵에 죄다 내다 팔았다.



계절이 지나니 여름 샌들은 어디에서도 받아주지 않았다. 속상한 일이었다. 교통비를 아끼느라 골목골목 뉴욕의 거리를 하도 걸어 다녀서 결국 샌들 밑창은 떨어져 나갔다. 개운한 마음으로 쓰레기통에 버리고 왔다.

제네바에 도착한 첫날이었다. 토요일 장을 함께 봐준 제임스가 나를 기숙사까지 데려다 주고 갔다. 방문을 열고 들어오니 세면대 옆에는 아까 부려놓은 여행 가방이 그득하다. 방 안을 천천히 다시 둘러본다. 깨끗하게 정돈 된 방 한 칸, 잘 다려진 이불보가 반가웠다.

기숙사 방은 참으로 아담했다. 큰 걸음으로 세 걸음이 가로 너비, 다시 큰 걸음으로 다섯 걸음 걸으니 세로 너비였다. 방 안에 책상과 책장, 작은 스탠드와 옷장이 있고 큰 창문 밖으로는 아담한 테라스도 있었다.


회사 동료인 영국인 캐롤이 내 기숙사 방에 쪽지를 남겨놓았다.
“Aeree, the water in the tab is safe to drink.”



수돗물을 마셔도 될만큼 깨끗하다고 적혀있었다. 과연 프랑스 에비앙 옆동네라 할만하다. 여행 가방을 열어 옷장을 차곡차곡 채우기 시작했다. 곡간을 채우듯. 자, 이제 여기가 내 집이라 할만하구나! 앞으로 1년은 여기가 내 공간이다.
그렇다, NGO와의 계약은 정확히 11개월을 한정하고 있었다. 11개월동안 맡은 일을 잘 해내고 나는 다시 떠나야 한다. 심경이 복잡했지만 일단은 오늘 장기 비행으로 피곤한 하루를 보냈으니 훗날의 일은 나중에 생각하기로 하자.

그날 저녁 기숙사 공동 주방은 번잡했다. 온갖 인종이 모여 각각 다른 이유로 이곳에서 삶을 꾸려가는 청년들은 꽤나 할 말이 많았다. 불어로. 물론 나는 전혀 알아듣지 못했다.


우리층엔 동양인 여자가 딱 한 명이었다, 바로 나.


기숙사 Foyer George Williams의 방과 기숙생들이 공동으로 사용하는 라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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