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화 20대 여성에게 주어진 가혹한 시절

사람들의 시선은 참 세밀하고 집요했다

by Aeree Baik 애리백

첫 직장에서 크게 혼이 난 기억이 있다. 다 같이 점심 식사를 하러 나간 참이었다. 식당에 자리를 잡고 주문을 마쳤을 무렵, 한 선배가 별안간 테이블을 내리치더니 큰 소리로 나를 나무랐다. “넌 막내가 수저도 안 놓니?” 모두들 일제히 나를 쳐다봤다.
우리 팀에서 가장 어린 22살, 나는 팀 전체의 수저 세팅을 해야 하는 것이었다. 큰 문화 충격이었다. 그들은 내게 ‘어린애가 뻣뻣하다’고 했다.


20대는 곤란한 시절이다. 나이가 적지도 많지도 않고, 어른 대접도 받지만 그렇다고 청소년도 아니다. 어린이나 대는 미성년으로서 사회적 보호 장치가 작동하지만 20대는 명백히 성인이기에 본인의 인생을 책임져야 한다. 하지만 권한은 주지 않았다. 인생을 스스로 구동하려고 누군가 슬며시 나타나 타이어의 바람을 뺐다. ‘너에게는 발언권이 없다.’

바람 빠진 타이어로 없이 달리는 결코 흥겨운 일이 아니다. 치열하게 커리어를 추구하는 20대의 여성 앞에 부비 트랩은 도처에 깔려 있었다. 수가 없다. 사고가 나지 않도록 살펴가며 전진하는 수밖에..


20대의 나는 빚쟁이처럼 늘 쫓겼다.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오늘도 하루치의 나이를 먹고 있는 현실이, 뒤쳐지고 있는 상황이, 느리기만 한 나 자신의 속도가 견딜 수 없이 힘이 들었다. 주변인들은 차곡차곡 계단을 잘만 올라가며 무언가를 성취하는데 나는 그들을 무력한 눈빛으로 올려다보고 있는 나날들이었다. 입사 3년 차 경력을 쌓아 진급해야 할 때에 나는 허리 디스크로 몸져누워 퇴사를 해야 했다. 다시 구직 시장에 나오니 누군가는 내게 나이가 너무 어리다고 했고, 누군가는 내게 나이가 너무 많다고 했다. 그들이 꺼내놓는 이토록 무신경한 발언들이 나를 처참하게 괴롭혔다. 혼란케하고 고민하게 했다. 나이를 조정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첫 직장을 그만두고 20대 중반이었다. 열등감이 마음속으로 타들어갔다. 번듯한 직장이 없이 프리랜서로 일한다는 것이, 내 기반을 만들지 못했다는 것이 가슴을 내리쳤다. 부모님은 주말마다 또 어떤 누군가의 결혼식에 꼬박꼬박 축의금을 전달하러 다녔다. 나는 상황이 달랐다. 같은표준적인생 코스와 동떨어져 있기에 더욱 빨리 증명해 보여야 했다. 누군가를 막연하게 안심시켜야 했다. 비혼이며 단단한 경제 기반이 없는 20 여성은 존재 자체로 문제아 취급을 받는다.

내가 무슨 피해라도 끼쳤단 말인가.

꾸준히 사람들과 네트워킹을 하며 일을 해나갔다. 신문사 문화센터의 강의도 여러 차례 듣고, 운동도 시작했으며, NGO 활동을 했고, 대학원을 다녔고, 치유 글쓰기 워크숍 조교 활동을 하고, 춤추는 동호회에 가입해 좋은 친구들을 사귀었다. 하지만 그런 나의 현실은 이상한 방향으로 액자에 담겨 있었다. 큰 사고를 친 전적이 전혀 없는데도 누군가에게 ‘걱정을 끼치는 존재’가 되어있었을까. 왜 나의 허락도 없이 걱정을 하는지 되묻고 싶었다.


‘여자 나이가 26살이면 더 이상 어린 게 아니야.’ 20대 여성은 나이에 대한 코멘트를 가장 많이 듣는다. 누군가 추적을 해 오는 듯 사방에서 나를 흔들었다. 원치 않는 품평과 조언들을 쏟아냈다. 나는 그들에게 발언권을 준 적이 없는데 그들은 함부로 내 모습에 대해 견적을 냈다.


20대 여성에게 주어지는 시선은 다소 그로테스크하다. 젊은 20대 여성은 적당한 소녀성을 겸비해야 하며 싹싹해야 하고, 그렇다고 경험이 많거나 노련해 보이면 큰일 나는, 아이러니한 집단의 잔인한 시선을 견뎌야 한다.


너무 몰라도 놀림을 받고 너무 잘 알아도 구설수의 대상이 된다. 손쉽게 가십거리가 되고 돌팔매를 맞는다.

20 초반, 20 중반, 20 후반을 차곡차곡 거치는 여성들에게 사회와 사람들의 시선은 세밀하고 집요했다. 해가 바뀌면 한 살을 더 먹었기 때문에 매년 무슨 일이 크게 벌어지는 듯 호들갑을 떨었다. 유독 20대의 여성에게만 그랬다, 끈질기고 고집스럽게. 왜 사람을 중무장을 시켜서 방어하게 만드는가.
회사에서 만나는 거래처 사람들에게 내 나이를 7살씩 올려서 말하기 시작했다. 목소리톤을 저음으로 낮추어 통화를 했다. 업계에서 만나 파트너로 협력하는 사람들끼리 나이를 왜 따지는지 이해 못 할 노릇이다. 나는 얼른 30대가 되었으면 하고 바랐다. 대등하게 대접받기 위해.

어느 날 회사 선배는 내게 이런 조언을 했다. “넌 너무 많은 일에 관심을 쏟더라. 관심사를 좀 줄여. 그런 말이 있잖아, 선택과 집중.”
그는 남의 인생에 대해, 남의 현실에 대해 걸핏하면 이런저런 조언을 해주고 싶어 했다. 제법 관찰을 많이 했네, 하지만 정작 뭐가 필요한지, 뭘 하고 싶은지, 왜 묻지도 않지? 내가 구하지도 않은 조언들을 몇 시간씩 들으며 생각했다.
‘내 인생은 너보다 내가 더 잘 알겠죠.’

대꾸하고 싶지만 참아야 한다.. 참아야 한다.. 세상의 많은 어른들은 그따위 말대꾸를 매우 노여워하시기 때문에 묵묵히 들어야 한다. 그는 나와는 하등 상관없는 말뿐인 조언과 본인의 개똥철학을 풀어놓았다. 입사 시험을 일찍 준비해서 공채 합격한 것 이외에는 대단한 선택도 없어 보였는데, 여기저기 살을 붙이고 연결고리조차 발견할 수 없는 충고를 쏟아놓고는 참으로 뿌듯해하더라. 자기 위안을 이런 방식으로 하는구나, 생각이 뒤늦게 들었다. 수많은 목소리들을 흘려 넘기며 내 안의 여유를 유지하겠다 마음먹었지만 가끔씩은 중심이 심각하게 무너질 때가 있었다. ‘왜 그렇게 흔들어?’

이따금씩 위기가 왔다. 안 그래도 위태로운 흔들 다리를 건너는 기분이었다. 앞뒤로 흔들어댔다. 네가 네 인생에 대해 불만족하는 것은 네 탓이고, 네가 일이 안 풀리는 건 네 탓이다. 이따위 하나마나한 조언들을 상대에게 쏟아내도 무방하다는 생각을 어디서 얻게 되었는지 궁금할 지경이다. 대신 한 가지 방법을 고안해냈다. 그의 ‘조언’이 끝날 때쯤 나는 선수를 친다.
“선배, 사주세요.”
당연히 이 시점에서 그는 거절을 못 한다. 그가 스스로의 인생에 뿌듯한 찬사를 쏟아놓을 때 내가 성심껏 감정노동을 해주었으니 책 한 권은 그 값으로 받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내 책장엔 책이 한 권씩 늘어갔다.

돌아보니 30대 여자 선배도 비슷한 흔들 다리를 건너고 있는 장면이 보였다. 당시 20대 중반이던 나는 ‘나이가 어려서 뭘 이해하겠냐.’는 평을 들었고, 동시에 여성 선배는 ‘나이가 많아서 감이 떨어진다.’는 비난을 받았다. 그녀는 나보다 겨우 13살이 많았다. 아직 30대인 그녀가 ‘나이가 많아’ 문제가 되는 것이 나는 억울했다. 어딜 가나 나이가 원흉이었다. 커리어를 유지하는 여성에겐 나이가 어려도 흠이고, 나이가 많아도 흉이고 그저 뭉개진 고무 찰흙처럼 손쉽게 가져다 붙일 핑계가 된다.

그런데 말이다.

거짓말같이 감쪽같은 일이었다. 한국을 떠난 뒤, 정말 순식간에 나이에 대한 압박에서 벗어났다. 왜 그랬을까? 나조차 의아했다. 스스로도 나 자신을 평가하길, 느리고 더디고 가야 할 길이 한참이나 남았다 여겼는데, 별안간 족쇄가 스르르 풀렸다. 나이가 더 이상 구속이 되지 않았다. 왜지? 그물에 걸려있는 존재처럼 이리저리 끌려다니며 괴로웠던 나날들이 한순간에 끝이 났다. 왜지? 한국을 떠난 지 단 몇 달 만에. 곰곰이 생각해보니 지난 몇 달간 그 누구도 내게 나이를 묻지 않은 것이다. 질문을 받지 않았다는 그 사실만으로 한결 자유로워졌다. 그리고는 곧 나이를 의식하지 않게 되었다. 그 몇 달이 곧이어 몇 년이 되었다. 몇 년 동안 나는 ‘나이가 몇 살이에요?’라는 질문을 받지 않았다. 혹여 질문을 받더라도 피드백은 ‘한창이네, 좋을 나이다!’ 이런 대답이었다.


여러 해가 지나고 또 지나도 내게 이들은 ‘좋은 나이야!’하고 화답을 했다. 고마워서 눈물이 나는 일이었다.


나이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는 해방감은 꽤 컸다. 스스로에게 더욱 집중할 수 있었고, 내가 좋아하는 것 잘하는 것, 취향에 대해 탐구할 수 있는 시간을 허락했다. 나이를 의식한다면, 그에 걸맞은 행동과 태도를 염두에 두느라 시도하지 않았을 많은 일들이 있었다. 혼자 밤기차를 타고 이탈리아 여행을 했고, 스코틀랜드 할아버지들과 선술집에서 토론을 했다. 해변에 나가 낮잠을 자는 게 이렇게 달콤할 수가 없었다. 좋아하는 일들을 즐기니 관심사는 더 풍성해졌다. 관심사를 줄이라던 회사 선배의 조언과는 정반대로 가고 있었다.

마음이 가벼워지니 쉬워졌다. ‘가보자!’하고 출발하면 그만이었다. 참을 수 없는 일들이 더욱 선명해졌고 싫은 일을 견디느라 시간을 허비하지 않았다. 나이와는 상관없이 자신의 아름다움을 긍정하는 기쁨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당신이 속한 사회가 당신을 응원해 주지 않는다면, 거길 벗어나길.


주변을 돌아보니 70세에 결혼을 하는 러시아 할머니가 있었고, 정년 퇴임을 하고 평생 처음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프랑스 화가가 있었다. 십 대에 대륙을 횡단해 여행을 하고 홀로 유학을 떠나온 핀란드 동료를 만났고 자해와 퇴학을 반복하다가 변호사가 된 스위스 친구가 가까이에 있었다.

창문 밖의 풍경이 달라 보이는 이유는 내 마음이 바뀌어서가 아니라 환경을 바꾸었기 때문이라고 말하겠다. 함께 어울리는 사람들의 지지와 격려가 미세하게 뿌리를 내리면서 내게 자신감을 더해주었다.

한국의 친구들이 내게 물었다. 외국에서 살며 가장 좋은 점이 뭐냐고. 첫 번째 대답이 바로 이거다. ‘나이에서 자유로울 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한국에서 20대 여성이 그 가혹한 시절을 무사히 잘 통과했다면 ‘분명 당신은 저력을 갖추었다’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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