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스토리 안으로 들어온 사람들
여행이 시작되었다. 스위스 제네바에서 내게 주어진 11개월의 기간을 가장 의미 있고 뿌듯하게 만들 수 있는 하나의 ‘업적’으로서 ‘유럽 여행’과 ‘불어 공부’를 결심한 터였다. 공부는 시간이 걸린다. 하지만 여행은 출발하면 그만이다. 출발!
어두운 새벽에 잠바를 꽁꽁 싸매어 입고 제네바 기차역 꼬나방 Cornavin을 출발해 이탈리아 밀라노로 당일치기 기차 여행을 떠났다. 고딕 양식의 성당은 과연 대단한 위용을 뿜어내고 있었다. 동화책에 나올 법한 장면이었다. 옆의 거리로 발걸음을 옮겨 코너를 돌며 생각했다. ‘내가 지금 동화책 속에 와 있나?’ 한 페이지를 넘겨 다음 장면으로 넘어가고 있는 듯한 낭만적인 풍경에 한층 도취되었다. 사진을 수백 장 찍었다. 거대한 철문에 박혀 있던 조각상들, 대리석 기둥의 문양, 천장 벽화에 그려져 있던 예수의 제자 베드로의 열쇠까지도 음영이 잘 드러나도록 사진에 모두 담았다. 배터리가 곧 소진되었다.
곧이어 스위스 취리히를 다녀왔다. 단 두 시간 기차를 탔을 뿐인데 언어가 이탈리아어로 바뀌고 또 독일어로 바뀌었다. 당일치기이니 차 한 잔을 할 시간이 아까워서 서서 마셨다.
‘아, 시간이 부족하다!’
하루 만에 여행을 끝내려면 별 수 없었다. 여행지에서 1박을 하면 숙박비가 들고 예산을 조정해야 하고 마음이 느슨해진다.
이렇게 제네바에서 새벽에 출발하는 기차를 타고 하루를 꼬박 걷다가 아픈 다리를 겨우 이끌고 다시 제네바로 돌아오는 기차를 탔다. 자정을 훌쩍 넘어 파김치가 되어 기숙사에 엉금엉금 기어 들어왔다. 신발 밑창이 떨어져 나갔다. 동료들은 내게 저가 항공을 타고 여행을 다니면 수월하다고 귀띔을 해주었다. 다시 인터넷으로 저가 항공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맙소사! 이거 너무 괜찮잖아! 이지젯 easyjet을 보니 기차표보다 더 저렴했다. 제네바-파리 왕복 80프랑, 불과 10만 원이 되는 금액이었다. 곧이어 나의 주말은 여행 계획으로 꽉 찼다.
기숙사에는 근처 국가에서 온 친구들이 허다했다. 대부분 교환학생으로 왔다가 눌러앉은 친구들이다. 바르셀로나에서 온 안젤라는 세계노동기구(ILO)에서 인턴십을 하고 있었다. 내가 두 달 뒤 스페인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고 이야기를 꺼내니 흔쾌히 본인 부모님 댁에서 잠을 자라고 소개를 해 주었다. 안젤라의 부모님은 내게 하몽을 잔뜩 주셨다. 이렇게 친구들의 부모님을 만나는 일이 많아졌다. 월급을 꼬박꼬박 아껴 여행 경비로 모아두었다.
주말마다 유럽의 수많은 도시들을 모두 다녀오려면 시간을 쪼개야 했다. 최대한 걷고 또 걷고 도시 전체를, 골목골목을 쏘다녔다. 마치 이곳을 샅샅이 점령해 버리겠다는 듯, 내가 언제 또 유럽의 이 도시를 걸어 다닐 수 있을 것인가. 과연 미지수 아닌가. 주말을 꽉 채워 여행을 다녔다. 유럽은 교통비가 비싸다. 차비가 아까워 어지간한 거리는 무조건 걸어 다녔다. 흔한 관광 책에는 거론되지 않는 골목들을 필사적으로 발견해나갔다. 그곳의 사람들은 저마다 여유 있는 표정으로 샹그리아를 마시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네모칸을 X표로 표시하며 빙고 게임을 하듯 유럽의 주요 도시를 하나씩 지워나가며 꾸역꾸역 여행을 다니던 나를 멈춰 세운 한 사건이 여기서 발생한다.
그리스 여행 중에 크레타 섬에서 만난 60대 할머니 여행자가 있었다. 유스호스텔에서 나와 같은 방을 썼다. 장기 투숙을 하는 모양인지 스태프들과 매우 친밀해 보였다. 그분은 내가 크레타섬에 도착하고 유스호스텔 숙박 첫날부터 슬며시 골치를 안겨 주었다. 추운 겨울이었음에도 창문을 열고 자야 한다고 한사코 우기는 거다. 방 안의 공기가 순환해야 한다며 주장하는 바람에 나랑 약간의 실랑이를 했었다. 황소고집에 밀린 나는 큰 소리로 푸념을 했다.
“겨울이라서 춥다고요.”
나는 연말 아테네-이스탄불-다시 아테네-산토리니-크레타로 이어지는 대규모 여정을 진행하던 중이었다. 피곤이 몰려와 언쟁을 포기한 나는 뚱한 표정으로 휘리릭 씻고 곧바로 누웠다. 아, 이상한 일이다. 창문 열린 거 맞나? 상체를 들어 창문 쪽을 슬쩍 확인했다. 창문이 열려있는 방에 막상 자려고 누우니 의외로 춥지 않았다. 12월 그리스 바다의 밤이었다.
다음날 오전, 개운한 얼굴로 나는 레팀논 섬 자락을 돌아보았다. 구석구석 베네치아 왕국의 흔적이 보였다. 근처 시장을 둘러보고 보니 점심시간이 다 되어있었다. 취사 시설이 있는 유스호스텔 주방에 들러 점심을 간단히 해 먹기로 했다. 계란 프라이와 토스트를 바삭하게 구워 먹으며 불 앞에서 무언가 근사한 요리를 하고 있는 룸메이트 할머니와 한참 수다를 나누었다. 물기 없는 내 점심이 퍽퍽해 보였는지 내 접시에 야채를 몇 조각 떨구어 주었다. 구운 당근이 달콤했다.
47년생 할머니 앤은 프로 여행자였다. 여행지가 1백 개 국가 이상 넘어가던 해부터 더 이상 여행한 나라를 세어보기를 포기했다고 했다. 100개국이든 101개국이든 세어보는 게 크게 의미가 없어진 것이다. 앤은 나와 얘기를 하던 도중에 어제 산에 갔다가 벌레한테 물렸다며 레몬 귀퉁이를 잘라 얼굴에 마구 발랐다. 으아, 보기만 해도 따끔거렸다.
1백 개국 이상을 여행했다니.. “여행 경비는요?” 하고 묻는 내게 그가 벽에 기대어 놓은 이젤을 가리켰다. “저거 열어봐.” 천으로 가려놓은 판이 있는 것 같았다. 덮어 놓은 천을 걷어보니 그 안엔 귀걸이며, 목걸이, 손으로 만든 비즈 액세서리들이 가득 전시되어 있었다.
여행을 하다 경비가 떨어지면 비즈를 꿰어 목걸이를 만들고, 그 반짝이는 액세서리들을 관광지에서 여행객들에게 내다 팔아 그 돈으로 또 어딘가 여행을 떠난다는 것이다! 진정 놀라운 보헤미안 인생의 모양새였다.
하던 이야기가 무르익어 내 토스트를 말끔히 모두 다 먹어 치우고 테이블에 흘린 빵가루를 모아 냅킨으로 닦아내고 있는 시점이었다. 까치집마냥 머리카락이 위로 한껏 뻗친 키가 큰 청년이 2층에서 내려왔다. 어제 체크인 당시 인사를 한 옆방 청년이었다. 캐나다 소니 뮤직에서 일하고 있는 롭이다.
“세상에, 이제 일어난 거예요? 지금 열두 시 반이에요! 어제 낮에도 책을 읽으며 계속 숙소에 있지 않았어요? 그러다 크레타섬은 대체 언제 돌아보려고요!”
진심 놀란 표정으로 잔소리를 하는 내게 그는 여유가 가득한 대답을 했다.
“난 휴가 온 거예요. 푹 쉬고 푹 자고 충분히 즐기는 게 내 휴가예요. 햇볕이 이렇게 좋으니 테라스에서 커피 한 잔 하기 딱 좋겠네.”
그는 긴 다리를 테라스 난간에 걸쳐 놓으며 등받이 의자에 상체를 푹 담갔다. 밖에 나갈 생각은 아예 없어 보였다. 프로 여행자 할머니는 그새 리모컨을 눌러가며 그리스 요리 TV 프로그램을 찾고 있었다. 유스호스텔 총무는 TV 채널을 바꾸지 말라며 할머니와 언쟁을 했다. 아무래도 놀라운 인간들이 모인 곳이었다.
사람들이 여럿 모이니 나도 모르게 하소연이 나왔다.
“오늘 레팀논 시장에 다녀왔는데요, 아니 글쎄 아테네 중앙 시장에 유명한 가죽 공방에서 팔던 가방이 여기에도 있더라고요. 거기서는 3대째 장인이 일궈온 수제 브랜드라며! 가격을 깎아주지도 않았는데! 한 푼도! 있죠, 아테네 올림픽 성화 봉송할 때 신었던 그 가죽 샌들 브랜드라고 했단 말입니다. 가죽 가방이 예뻐서 도저히 딱 하나만 고를 수가 없어서 난 글쎄 가방을 두 개나 샀다고요! 그런데 레팀논 시장에서 똑같은 걸 더 싸게 팔 줄이야! 이런 된장!”
분개하며 으르렁대는 나를 향해 머리가 뻗친 롭이 웃으며 대답했다. “뭐가 걱정이죠? 그래서 이렇게 멋진 가방을 두 개나 갖게 됐잖아요.”
“오, 맞아요.. 이거, 진짜 잘 골랐죠? 너무 마음에 들어요.” 메고 있던 가방을 내려다보며 난 금세 마음이 풀어졌다.
두고두고 기억이 나는 여행의 한 조각, 이 날 이 시간의 장면이다. 나의 여행 패턴은 크레타섬을 다녀온 전과 후로 판이하게 바뀌어버린다. 필사적으로 가성비와 시간을 계산하며 구석구석을 놓치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조바심을 내며 샅샅이 돌아다니던 여행 방식이 전폭적으로 재구성되었다. 조금 더 천천히 눈에 담아 나의 스토리로 만들어 내는 여정으로.. 사람들을 그 스토리 안으로 담아내는 순간을 소중하게 여기는 시간으로.. 내 여행이 기존의 모습을 송두리째 바꾸었다. 사람들이 스며들고 풍경은 아름다운 ‘배경’이 되었다.
시원한 바람이 얼굴을 쓸어 담던 크레타섬의 그 겨울밤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리고 몇 년 뒤 어느 날 나는 면접 자리에서 이런 질문을 받는다. ‘국제기구는 여러 문화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모인 곳입니다. 본인은 이러한 근무 환경을 어떻게 유연히 받아들일 것인가요? 어려움은 없을까요?’
“저는 지금껏 무수히 많은 나라들을 여행 다녔습니다. 문화와 언어와 종교가 판이하게 다른 유럽, 아프리카, 아랍 국가들을 여행하며 다양한 사람들을 사귀고 그들이 사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시장에서, 거리에서 사람들을 만나며 그들이 이방인을 대하는 환대를 경험했고 피부색이 다른 저를 존중하는 방식을 오히려 그들에게서 배웠습니다. 저의 여행 경험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언어가 통하지 않아도 서로의 진심은 통했거든요. 서로를 이해하기 원하는 그 ‘자세’ 말입니다. 이 부분이 제 장점으로 작용할 거라 믿습니다.”
정말 그러했다. 여행을 하며 오만하던 나의 태도가 어느덧 정돈이 되었고 또한 알지 못하던 스스로의 장점이 한껏 발휘되어 큰 강점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보잘것없는 지식과 초라한 인격에 크게 상심을 하고 서서히 반성의 계기로 삼았다.
결과적으로 여행을 하면서 경험하는 ‘나 자신에 대한 발견’을 즐기게 되었다. 내가 몹시 좋아하는 것은 뭔지, 소스라치게 놀라 절대 다시는 반복하고 싶지 않은 선택은 뭐였는지, 다음 일정을 포기할 정도로 매료되었던 것은 대체 무엇이었는지, 스스로를 발견하고 탐구하며 나만의 취향을 누적해 갔다. 재능과 순발력을 확인하게 되고 무모한 결정에 발등을 찍으면서 내겐 스토리가 쌓이고 다음 여행에 대한 기대감이 커졌다. ‘나’라는 인간의 성장을 바라보며 한없이 부끄럽기도 한없이 뿌듯하기도 하다. 그러면서 주변을 보고, 또한 사람을 만나 탐구하게 되었다.
여행으로 인한 발견은 꾸준히 내게 즐거움을 선사한다. 어느 시골집 옥상에서 들려오던 할아버지의 노랫소리가 여전히 귀에 선하다. 그리하여 오늘도 나는 여행 계획을 세운다. 언제든 떠날 준비를 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