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가 리더십이 있는 줄 알았다. 리더십은 개뿔...
Ivar 이바는 몇주째 답변이 없다. 기별 없이 무려 3주가 지났다. 소식은 영영 없고 나는 마음이 답답해진지 오래다. 이메일을 보내고 어느새 슬며시 사흘이 지났는데 답변의 기미가 없으니 의구심이 들기 시작했다. ‘이거 뭔가 이상한데..’ 다시 추가적인 사안을 보태고 일전에 보낸 메일을 더 구체적으로 정리한 내용의 이메일들을 몇편 더 보냈다. 이번에는 기획단 전체를 수신 참조로 포함했다. 여전히 답은 없다. ‘이메일을 보긴 본 건가....?’
이제 겨우 팀을 조직했는데 벌써부터 커뮤니케이션이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생각에 불안했다. 물리적으로 각각 흩어져 있는 구성원들의 커뮤니케이션이 한번 막혀 버리면 결정을 미뤄야 하는 사안들 때문에 병목 현상이 생긴다. 나는 현재 스위스 제네바에 있고 덴마크 오후스 Aarhus의 조직위 책임자 이바의 답변을 오매불망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Ivar 이바, 대체 뭐가 문제인가요?’
우리쪽 본부에서 확정한 컨퍼런스 기획단과 덴마크 현지 조직위원회가 구성이 되고 조직도가 완성이 되었을 때 나는 참 다행이다 생각했다. 덴마크 조직위원회의 단장 Chairman이 우리 NGO의 청소년 대표 자리를 맡았던 로즈 달스가드 Rose Dalsgaard의 아버지 이바 달스가드 Ivar Dalsgaard라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기 때문이다. 가족 구성원이 모두 다년간 NGO 활동을 해왔다는 뜻이고 NGO의 구성과 활동을 면밀히 알고 있을 거란 기대를 했다. 로즈는 우리 NGO의 프로그램 펀딩을 받아 일본으로 유학도 다녀온 중추적 인물이다.
맡은 역할이 얼마나 중책인지 이해하고 있겠지? 긍정적인 전망에 마음이 놓였다. 그런데 일은 예상대로 흘러가주지 않았다. 이러한 변수는 애초에 예측하지 못했다. 커뮤니케이션의 단절.. 나는 사무총장 롤란도에게 그간의 업무 보고를 틈틈이 하며 동시에 염려를 표시했다. 롤란도의 개입이 필요한 시점이 곧 올 것이라 생각하며. NGO 안에서의 내 권한으로는 할 수 있는게 없다는 생각에 답답해졌다. ‘겨우 이메일을 보내고 얌전히 기다려야만 한다니. 아무리 그래도 내가 컨퍼런스 기획단 책임자인데 말이다!’
‘Ivar는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컨퍼런스 기획을 하게 되면 개최국 조직위에서 먼저 결정을 해줘야 기획단에서도 사안을 하나씩 확정해 나가며 진행할 수 있는 여러 제반 조건들이 있다.
컨퍼런스 기획단 멤버들의 숙소 문제라던지 참가자들의 교통편 제공이라든지, 내가 제작해야 하는 NGO 뉴스 레터에 넣어야 할 현지 상세 정보, 예산 지출이 필요한 프로그램들, 비자 지원 공문 등 진행할 사안들이 많았다. 조금씩 염려가 되었다. 이메일 답장이 단 한 통도 없는 호스트 국가의 현지 조직위원회가 웬말이냐! 감감무소식인 조직위가 자신의 역할을 과연 숙지하고 있는지 의문이 들기까지 이르렀다. 이쯤되니 나도 성질이 나기 시작했다. ‘이럴거면 일을 왜 맡았대? 똑바로 하면 좀 좋아?’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나는 컨퍼런스 기획자이지만 이제 마침 일을 킥오프했고 NGO 본부에서 아직 적응기간이라 대단한 권한도 없다. 그런데 벌써부터 삐그덕대면 어쩌란 말인가! 메일함을 열어 내가 Ivar에게 마지막에 보낸 이메일을 천천히 다시 읽어보았다. 약간의 읍소와 신경질이 다소 들어가 있었다..
감정을 완벽히 숨길 수가 없었다. 본인이 지연시키고 있는 현재의 상황을 빨리 알아채주기를 바라며 편지를 썼기 때문이다.
사무총장 롤란도의 지혜를 빌리기 위해 그에게 면담을 신청했다. 조직위와 연락이 원할하지 않아 답답하다, 어쩌면 좋을까. 하소연을 한참 했다. 나는 유능한데 일이 이토록 정체된 것은 저들 탓이라고 말하고 싶었다. (말 안 할 수가 없어서 꾹 참다가 기어코 말 했다. 그럼 그렇지.)
롤란도는 곧바로 여러 방법을 제시했다. ‘청소년 대표였던 Ivar의 딸 Rose는 매우 적극적인 활동가이다. 현재 그린란드에 위치한 단체에서 일을 한다고 들었다. 그를 통해 상황을 일단 알아보자. 그리고 조직위에서 커뮤니케이션 가교 역할을 할만한 사람이 있는지도 파악해보라.’
이 시간들을 지나오며 나로서는 발을 동동 구를 수밖에 없었다. 호스트 국가의 조직위원회가 움직여줘야 해결 가능한 일들이 머릿속을 가득 훑고 지나갔다. 일단 200명 규모의 컨퍼런스 참가자들 중에는 덴마크 입국 비자가 필요한 참가국 출신들이 많다. 이들이 덴마크 대사관을 방문해 비자를 받아와야 한다. 행정 절차상 주최측의 도움이 필수적이다.
그로부터 7개월 뒤, 나는 예상치 못했던 상황을 만나게 된다. 컨퍼런스 5일 전 한명씩 세계 각지에서 도착하는 기획단을 이끌고 현지에 당도했을 때 우리팀 전체와 조직위와 간단한 회의가 있었다. 이어서 현장 답사를 했다. 이제 본행사를 겨우 4일 앞두고 있으니 오만가지 상황들을 모두 해결하고 다니느라 난 신경이 곤두서 있었다. 케냐에서 온 한 명의 참가자는 아직 컨퍼런스 시작 전인데도 며칠이나 미리 도착해서 우리에게 숙소를 내놓으라고 하는 마당이었다. 조직위에서도 동분서주하고 있었다. 이같은 변수들 때문에 한껏 날카로워진 상태로 그날 현장 답사를 하며 컨퍼런스홀의 시설 등을 체크하고 있었다.
우루루 팀을 이끌고 다니며 행사 동선을 체크하며 빈틈 없이 각자의 역할을 다시 한번 확인하던 중이었다. 제임스가 앞에서 코치를 하고 나는 컨퍼런스홀의 관객석 맨끝에서 음향이 제대로 작동이 되는지 점검하던 중이었다. “무선 마이크가 몇개죠?” 컨퍼런스홀의 엔지니어들을 향해 묻던 차였다.
개최국인 덴마크 facilitator이자 우리 기획단 팀원인 라스무스 Rasmus가 무심하게 한 마디 했다. 스트레스가 최고조로 올라가 있는 나를 바라보며.
“걱정마, 너의 파티를 우리가 망치지 않을게.”
순간 머리를 얻어 맞은 것 같았다.. 당황해서 표정관리를 할 수가 없었다. 말문이 막힌 나머지 잠시 심호흡을 했다. ‘너의 파티’라니.. 대체 나는 지금껏 어떤 리더였는가.. 저런 매서운 말을 하다니, 우리는 한팀이지 않은가.
첫 직장인 잡지출판사에서 우리는 매년 사회운동성을 강하게 지닌 문화공연 이벤트를 개최했다. 대학 공연장을 대여할만큼 관객 구성이 대중적이었고 광고주의 규모도 다양했다. 미디어의 관심도 지대했고, 예매를 하지 못한 현장 관객이 넘쳐나서 입석 티켓을 발급해야 할 정도였다. 매년 치열하게 토론을 하여 새로운 주제로 테마를 정하고 공연자들이 주인공이 되는 무대를 구성하기 위해 사람들을 모았다.
당시 나는 편집부에서 공연 홍보 담당으로 차출이 되었다. 총기획자인 선배가 문화기획자를 만나 자문을 구하는 자리에 나를 데려갔다. 그날, 그곳에서 만난 젊은 문화기획자 안이영노는 우리에게 이런 이야기를 해주었다. '공연을 만들어 가는 과정 자체가 구성원들에게 이미 '축제'가 되어야 한다.'
준비 과정 안에서 공연 기획단이 신이 나서 스스로 즐기고 열정을 쏟아붓는 놀이의 장이 되는 것이 이러한 문화 공연의 핵심이라는 이야기. 그의 조언을 들으며 큰 자극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이후에도 이 한마디는 내게 영감이 되어주었다.
그랬던 내가 컨퍼런스 총기획자가 되고 보니 상황이 전혀 달랐다. 구성원의 한 명으로부터 '너의 파티를 망치지 않을게.'라는 매우 절제되고 신사적인 비아냥을 듣는 처지가 되어 있다..
이날밤 나는 심란한 고민에 빠져 선잠을 잤다. 나는 이들에게 어떤 리더였던가. 덴마크의 여름은 밤이 너무나도 짧았다. 백야인가, 곧 날이 밝았다.
추진력으로 강하게 밀고 가는 방식의 리더십, 나는 리더십을 잘못 배웠나보다. 손발이 맞아야 일이 진행된다고 굳게 믿고 구성원들을 드라이브했다. 나의 관심사는 오직 한가지에만 집중되어 있었다. 주변을 돌볼 겨를이, 마음의 여유가 없다. 재촉한다고 모든 일이 올바로 성사되는 게 아니었을텐데 이때는 업무를 동력하는 힘의 핵심이 추진력이라고 믿었다. 많은 경우 유능함은 속도로 증명된다고! 이건 맞잖아?
그당시 나는 덴마크의 백야 아닌 백야를 뜬눈으로 보내며 7개월 전 그때를 생각했다. 그랬다. 커뮤니케이션이 막혀 화가 난 마음으로 초조하게 기다리던 Ivar의 답장, 그를 위해 롤란도의 조언대로 나는 상황 파악을 하느라 로즈에게 이메일을 보냈었다. 곧이어 도착한 로즈의 답장에 내게 보내는 한 가지의 메시지가 분명히 있었다는 점을 깨달았다.
당시의 나는 자신감과 사명감으로 똘똘 뭉쳐있었다. 마치 설익은 땡감처럼 말이다. 내가 놓친 부분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일면 놀랐으면서도 속으로 생각했다. ‘나는 아직 배고프다.’ 그린란드에서 보내온 로즈의 이메일을 받고도 왜 나는 금방 정신을 차리지 못했을까. Dear Aeree..
그래, 나는 자명한 실수를 했다.